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일하는 톰멩체치크(왼쪽부터), 샴스야 쿠리예바, 저프리 칼리마그가 4일 한 자리에 모여 한글과 한국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우리말 배우는 외국인들의 ‘한글 수다’
“한글이요? 처음엔 글자 생김새가 이상했는데 배워보니 쉽네요. 그런데 영어의 ‘F’나 ‘V’, ‘G’ 발음을 표기할 문자가 없어 아쉬워요.” 한국말을 배운 지 2~7년차에 접어든 외국인 3명이 한글에 대해 느끼는 바는 비슷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샴스야 쿠리예바(36), 몽골인 톰멩체치크(25), 필리핀 사람 저프리 칼리마그(28),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상담일을 하고 있는 이들 3명을 지난 4일 만나 한글과 한국말에 대해 들어봤다.
쿠리예바는 2004년에 한국에서 온 친구들에게서 처음 한국말을 배웠는데 영어보다는 배우기 쉬웠다고 한다. 울란바토르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다 광운대에 편입해 올해 졸업한 톰멩체치크도 “일본말도 배워보려다 그만뒀어요. 히라가나, 가타카나에 한자까지 배우려니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라며 기본 24자만 배우면 글생활을 할 수 있는 한글이 편리하다고 했다.
외국말을 배우는 데 따른 고충도 이내 쏟아졌다. 세 사람 모두 우리말의 자음동화나 존댓말 등은 익히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쿠리예바는 “우리말은 글자가 다 발음이 있는데 한국은 조금 다르다”며 처음에는 초성에 놓인 자음 ‘ㅇ’을 ‘응’ 발음으로 읽는 줄 알았다면서 웃었다. 톰멩체치크도 우리말 ‘밟아’를 실제로 ‘발바’로 소리내듯 쌍받침 발음에 적응하기 쉽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칼리마그는 “한국말이 처음엔 쉬웠는데 조금씩 하다보니 문법 등 모든 게 다 어려운 것 같다”며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다. 어릴 적 오스트로네시아어에 속하는 필리핀 방언과 인도유럽어에 속하는 영어를 배운 그는 같은 우랄알타이어 계열의 쿠리예바나 톰멩체치크보다 더 어려움이 따르는 듯했다.
한글에 대한 불만도 없지 않다. 영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이 쓰지만 한국말에는 없는 ‘F’, ‘X’, ‘G’와 같은 소리를 표기할 문자가 없다는 게 이들 외국인의 지적이다. 칼리마그는 “언젠가 비행기표를 예매할 때 전화로 ‘저프리’라는 이름 철자를 불러줬는데 그쪽에서 ‘F’를 ‘S’로 잘못 이해하는 바람에 여권하고 표의 이름이 달라 고생했다”며 한국인이 ‘F’ 발음에 취약한 탓에 생긴 일화를 소개했다.
한국 사람에게는 터무니없게 들릴지 몰라도 그들로서는 합리적인 주장이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 사람들이 ‘F’와 ‘G’가 없으면 어떻게 세계와 함께 가요?” 쿠리예바가 물었다. 동시에 답도 내놨다. “세종대왕 같은 분이 또 있으면 될텐데….”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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