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엮고 옮김 l 황금가지 l 1만6000원
2012년 단편 ‘종이 동물원’으로 에스에프(SF)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 버금가는 권위를 자랑하는 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을 동시 석권한 중국계 미국 작가 켄 리우는 지난 8일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참고로, 그의 지난 트위터는 거개 작품과 작품 행사에 관한 것들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어 최악은 절대 포기하질 않는다는 거다.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어 최고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 트윗은 대화형 인공지능 챗지피티(ChatGPT) 기술을 자사 검색엔진 빙에 접목한 마이크로소프트를 두고 한 말이다. 챗지피티를 출시한 오픈에이아이(AI)에 일찌감치 투자해왔던 마이크로소프트가 7일 “검색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린 날”이라며 새 빙을 소개한 데 따른 두 줄 평. 구글에 밀려왔던 빙의 반전을 격려, 아니 우려하는 것일까. 글쎄. 이 두 줄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를 또 하나 붕괴시킨 하이테크에 대한 비관과 낙관에 절묘히 걸쳐져 있는 듯하다. 감염의 한 줄도, 면역의 한 줄도 아닌, 비관도 낙관도 할 수 없는 새 국면적 징후에 대한 감지처럼.
중국계 미국 작가 켄 리우(47). ©Lisa Tang Liu, 본인 제공
미국 하버드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켄 리우(47)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이후 같은 대학 로스쿨을 마치고 기술전문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여전히 자신을 프로그래머로도 소개한다. 글은 밤에 쓰지만 작품의 배경이 글을 쓰던 그 시점이었던 적은 단 한 번 없다.
이 흔치 않은 이력은 켄 리우 소설만의 아우라를 구축하는데, 첫 결실이 ‘종이 박물관’일 뿐 이후 작품들의 수상 이력으로 더 잘 입증되고, 그 결실의 씨앗이 이번에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로 엮여 나온 2015년 이전 단편들이겠다.
에스에프평론가 심완선은 “에스에프는 비현실을 가정하지만 그렇기에 현실을 넘어선 세상을 구상하도록 돕”는다(〈SF와 함께라면 어디든〉)고 말한다. 좋은 에스에프가 예언의 혐의를 벗기 어려운 이유일 것이다. 허황된 것에 대한 지적 판단은 무릇 명확하다. 오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윤리적 판단도 그러하다. 에스에프가 문학으로서 길러내는 통찰은 판단이 불명확한 반(半)현실적 세계를 집요하게 제시하고, 내일의 현실로 ‘임박’시킬 때 증폭된다 해야겠다.
표제작 ‘신들은 순순히 죽지 않을 것이다’(2014)는 그해 ‘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와 2015년 ‘신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의 가운데 위치하며 ‘포스트 휴먼’ 3부작을 이룬다. 인공지능이 고도화된 시대–창작된 시점에서 가정하길 2023년이었다 해도 무방해 보인다–에서 생명과 존엄, 감정과 경험, 기술의 본성을 흥미진진하게 사유해낸다. 억압이 없는 시대라면 존엄 경험 기술 따위 속성을 따지는 일은 무용할 터. 그렇다, 억압을 피할 수 없는 시대, 나아가 인간과 인간, 기술과 기술, 인간과 기술 사이 중층다발적 억압의 시대의 일이다.
여기서 ‘신’은 뜻밖으로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을 일컫는다. 은유된 바로 추리자면, 그들은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으나 창조주에 구속되지 않고(1부), 급기야 창조주를 넘어서려다 공멸을 야기해 모두 사라진 듯했으나 스스로 새 생명을 잉태해내며(2부), 그 생명과 인간이 서로 다른 양태의 지성과 감성으로 화해하며 진정한 진화–공존–를 전망(3부)하기에 이른다. 속도감이 상당한데다 학교폭력, 사재기, 주가·특허 전쟁, 식량위기, 이상기후, 일촉즉발 국가간 마찰, (디지털) 자본·권력의 독재적 생리 따위가 주변부를 붙잡고 이야기를 먼 미래로 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결결이 밑줄 그을 대목들로, 발랄한 에스에프들의 전개를 위한 상상을 배척한다.
3부에서 십 대 여주인공 매디가 “인공지각체”인 동생 미스트와 채팅하는 장면은 지금의 챗지피티와 대화 나누다 놀란다는 도처의 경험담과 논점 내지 사유 지점에 있어 다를 바가 없다.
뛰어난 회로 설계자였던 데이비드가 사고로 죽기 전 그의 직관과 통찰을 회사가 계속 활용할 목적으로 의식 업로딩 기술을 이용해 인공지각체로 남겨둔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그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가족, 그중 딸 매디를 찾아가 말을 건다, 채팅창으로. 인격까지 되살아났다는 아내의 주장대로 데이비드는 2부에서 사라지기까지 선한 에이아이(AI)의 자리를 지킨다. 그가 사이버 세계(“클라우드 세계”)에서 후손으로 남긴 게 미스트다.
매디는 미스트의 지식에 경탄하면서도 대신 “육체적으로” 감각되지 않고 경험되지 않은 지식으로 선을 긋는다. “미스트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세계에 관한 데이터뿐, 세계 자체는 아니었다”는 구술로 상징되는바. 허나 이 메시지에 소설이 종착하진 않는다.
인간적 지식의 특질로 감각과 경험이 강조되지만, 실은 그를 품는 의식 자체가 환각일 수 있고, 그 환각이 되레 사회적 폭력을 야기하는 실태를 미스트 등의 입을 빌려 도발적으로 따진다. 모두가 사지 멀쩡한 육체를 갖고 싶어하리란 인간의 선입견이 진리를 제약할 가능성 또한 인간 독자들은 추궁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육체로 매개되는 감각과 경험, 즉 ‘과거’는 작가 스스로에게도 실로 중요해 보인다.
2018년 국내 처음 출간된 중단편집 <종이 동물원> 등에서도 보았듯 그가 집요하게 다루는 소설 장르가 역사적 사건에 SF적 요소를 덧대는 서사 판타지, 말하자면 대체 역사물이다.
3부작에서도 데이비드의 아내이자 매디의 엄마가 역사학자란 점으로 상통하리라. “오래돼서 효율이 낮은 기술일수록 복구할 여지는 더 많”다는 그녀의 언명은 기술만능의 세계관과 가장 정면에서 “늘 피로에 시달”리면서도 맞선다.
“모든 것은 층층이 쌓여서 발전하는 법이야. 빛의 파동으로 인터넷을 구성하는 케이블은 19세기 철도가 누린 공공 통행로 우선 건설법의 뒤를 이었고, 그 철도는 서부 개척자들의 마차 행렬이 남긴 바큇자국을 쫓아갔고, 그 마차 행렬은 원래 이 땅에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길을 따라갔어. 세상이 무너질 때도 마찬가지로 층층이 무너지게 마련이지.” 그다음 그녀의 말.
“인류는 지금 현재라는 피부를 벗겨내는 중이니까, 앞으로는 과거라는 뼈대 위에서 살아갈 거야.”
인간이 탐욕을 제어하지 못할 때의 상상인데, 그 과거로(부터)의 상상이야말로 가장 에스에프적인 상상이 되는 셈이다.
미래를 비관하든 낙관하든 켄 리우의 근거는 과거로부터 구해진다 보는 까닭이다. 첨단 인공지각체인 데이비드와 미스트가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땐(?) 가장 원초적인 그림 문자를 사용한다. 역사 속 실재했을 법한 신기술–지금의 인공지능과 같은–을 둘러싼 명분과 실리의 대결, 신기술에 대한 때로 과도한 경계가 가져오는 폐해를 임진왜란 배경으로 상징해 낸 ‘북두’(2010) 역시 수작으로서, ‘과거’의 의미를 각인시킨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