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사의를 표명하고자 합니다.”
이용관(67)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이 지난 15일 오후 1시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 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직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이사장의 사의표명은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영화인과 부산시민들의 관심을 영화제로 쏠리게 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비영화인들 사이에서 폭넓게 주목을 끈 것은 세월호 승객 구조·수색과정의 의문점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다이빙벨>을 두고 홍역을 치렀던 2014년 9월 이후 8년여 만이다.
1996년 스타트를 끊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10월 28회 영화제를 연다. 예산이 첫해 22억원에서 올해 152억3천만원으로 7배가량 늘어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물론 2014년 9월 <다이빙벨> 상영 논란으로 부산시와 갈등을 빚는 등 고비를 맞기도 했다. 당시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부산시의 상영 중단 요청을 거부하고 상영을 강행했다. 이후 부산시가 2015년 1월 이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으나 이 집행위원장은 거부했다.
같은 해 12월 부산시가 이용관 집행위원장과 전·현 사무국장 등 3명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갈등은 더 커졌다. 감사원이 “부산국제영화제가 2013~2014년 6850만원의 국가 보조금을 부적정하게 사용했다”며 같은 해 9월 부산시에 고발을 권유했는데 부산시는 석달 뒤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결국 2016년 2월 서병수 부산시장은 이 집행위원장을 해촉하고 자신도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났다. 영화계가 부산국제영화제 불참 운동을 벌이는 등 저항을 계속하자 부산시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고 물러섰고, 같은 해 7월 부산국제영화제는 민간이사장 체제로 전환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2018년 1월31일 2대 이사장으로 복귀했다. 이사장 복귀 일주일 전 대법원이 “ㄹ업체가 부산국제영화제 협찬금을 유치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ㄹ업체에 중개수수료 2750만원을 지급했다”며 벌금 500만원(업무상 횡령 혐의)을 확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9일 열린 임시총회에서 이 이사장의 측근인 조종국(58) 전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이 운영위원장에 선임됐다. 집행위원장의 주요 업무인 행정·예산을 전담하는 것이어서 사실상 두 명의 집행위원장이 이끄는 모양이 됐다.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11일 사표를 제출했다.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영화계는 허 집행위원장 복귀와 이 이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15일 이 이사장이 기자간담회를 열어 사의를 표명했으나 24일 이사회는 “조종국 사퇴 권고, 허문영 복귀, 이용관은 올해 영화제 끝나고 사퇴’로 결정했다.
두번째 사태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이 이사장이 조직 쇄신을 하다가 저항을 맞았다는 견해가 있다. 한 집행위원은 “허 집행위원장의 실행력에 의문을 가졌던 이 이사장이 조 운영위원장을 영입하는 등 변화를 시도하다가 예상치 못한 저항에 직면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이빙벨> 사건 뒤 외부 간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도로 이사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정관을 개정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사회에서 이사장을 추천해서 총회에서 선출하고, 취임한 이사장이 이사를 추천해서 총회에서 선출하는 임원 선출 방식은 내부 견제와 비판을 무디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국제영화제 이사는 “<다이빙벨> 사건 때는 외부 간섭이 쟁점이었지만 이번엔 내부 갈등의 성격이 짙다. 2년 뒤 30돌을 맞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이번 내부 갈등을 계기로 더 성숙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조용히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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