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부산본부가 부산 강서구 부산신항 국제터미널 근처 삼거리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김영동 기자
“솔직하게 말해 보입시더. 화물차 운전한다고, (정부와 정치권이) 마, 우리 무시한 거 아입니꺼?”
24일 아침 부산시 강서구 부산신항 국제터미널 신항삼거리에서 만난 강아무개(70)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48년 경력의 컨테이너 트럭 운전사다. 그는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하고 적용 품목도 확대한다고 해 놓고선 결국 (정부가) 판을 뒤엎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 파업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완전히 배신 아인교(아닙니까).” 옆에 있던 최아무개(55)씨도 거들고 나섰다. 최씨는 안전운임제 효과를 강조했다. 그는 “안전운임제 덕분에 과속, 과적도 하지 않고 하루 12시간가량만 일하면 다달이 순수 300만~350만원을 가져갈 수 있다. 도로 안전, 노동조건 개선 등 긍정적 효과를 체감한다”고 말했다.
이날 부산신항 삼거리에서 화물연대 부산본부가 연 총파업 출정식에는 1000여명의 조합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장에는 수백여대의 대형트럭이 도로에 줄지어 서 있었으며, 조합원들은 두 개 차선 도로에서 “안전운임 개악 저지”“차종·품목 확대”란 구호를 쉼 없이 외쳤다. 송천석 화물연대 부산본부장은 “전국에 있는 42만여대의 화물차 가운데 6.2%만 안전운임제 적용을 받는다. 국민의힘 일몰제 폐지 3년 연장 발의안은 화주 처벌규정을 없앤 꼼수 내기 갈라치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출정식을 마친 조합원들은 부산신항 부두로 발걸음을 옮겨 선전전을 펼쳤다.
24일 경기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주변 도로에 세워진 컨테이너 차량에 ‘사업용 차량 차고지 외 밤샘주차’를 알리는 경고장과 함께 적발보고서가 꽂혀 있다. 이정하 기자
화물연대의 파업 출정식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수도권 최대 물류 거점인 경기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 1·2터미널 근처 도로에도 ‘안전운임제 확대, 가자 총파업으로’라는 현수막이 걸린 대형 컨테이너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다. 세워진 차량 앞유리마다 의왕시가 발부한 ‘사업용 차량 차고지 외 밤샘주차’를 알리는 경고장과 함께 적발보고서 여러 장이 붙어 있었다. 조합원 1000여명은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우리가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 등 구호를 외치며 결의를 다졌다. 이봉주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화물차 사고로 1년에 700명 가까이 사망하고 있다. 한 달 내내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하고 겨우 생활비를 가져가는 화물노동자는 더는 죽음과 고통을 연료 삼아 화물차를 움직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출정식은 2시간여 만에 마무리됐다.
화물연대 전북지역본부 조합원들은 오전 10시 전북 군산시 소룡동 군산항 5부두에서 출정식을 열었다. 출정식 단상과 부두 인근 도로 등에는 운송을 멈춘 화물차와 트럭 등이 대열을 이뤄 늘어섰다. 노조원들은 “일몰제를 폐지하라”, “차종과 품목을 확대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김명섭 화물연대 전북본부장은 “안전운임제는 화물차 운전자의 적정 임금을 보장해 과로와 과적, 과속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정부는 무력화하려고 한다. 안전운임제가 영구화할 때까지 파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인천과 충남, 전남(광양) 등 모두 전국 16개 곳에서 동시다발 출정식이 열렸다. 정부는 화물연대 조합원 9600여명이 총파업 출정식에 참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출정식에서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경찰은 이번 파업과 관련해 불법행위가 발생하면 현장 검거를 원칙으로 삼아 사법처리와 행정처분 병행 등 엄정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화물연대 충남본부가 총파업 출정식을 한 24일 오전 충남 당진 현대제철 정문 앞 도로에 파업에 참가한 화물차들이 줄지어 멈춰 서있다.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제공
파업에 따라 운송 차질도 나타나고 있다. 강원도 설명을 종합하면, 화물연대 파업으로 화물차를 통한 육로 수송이 막히자, 바닷길과 철길을 이용한 수송만 이뤄지고 있다. 강원에선 하루 평균 시멘트 7만5천톤이 출하됐지만, 이 중 철도·해운으로 5만1천톤(68%)을 소화했으나 육로 2만4천톤은 발이 묶였다. 강릉 한라시멘트는 하루 1만6천톤을 출하했지만 이날 해상으로 1만3천톤을 출하했고, 강원 삼척 삼표시멘트도 2만7천톤 가운데 2만5천톤만 해운 출하했다. 동해 쌍용시멘트는 8천톤 가운데 4천톤, 영월 쌍용시멘트는 1만톤 가운데 4천톤, 영월 한일현대시멘트는 1만4천톤 가운데 5천톤만 철도로 출하했다.
이재형 강원도 교통과 주무관은 “화물연대 파업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시·군에 파업 기간중엔 8톤 이상 자가용 화물차의 유상 임시 운송을 허가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파업 참가 차량의 밤샘주차, 불법 주정차 단속을 병행해 파업에 따른 집회 참여 자제도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원도는 이날 동해, 강릉, 영월 등 4곳에 화물연대 소속 노동자 100여명이 집회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했다.
충북 제천·단양지역 시멘트 운송도 차질을 빚고 있다. 제천 아세아시멘트는 하루 1만1천톤에서 5천톤으로, 단양 한일시멘트는 2만2천톤에서 6400톤으로, 단양 성신양회 2만8천톤에서 5천톤으로 급감했다. 단양 한일현대 시멘트는 평소 하루 4천톤이 출하됐지만, 이날 출하가 모두 막혔다. 충북도 등은 이들 시멘트 업체 등을 대상으로 출하 현황 등을 파악하고 있다.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기아 오토랜드 광주는 완성차를 쌓아둘 수 있도록 평동산단 출하장과 장성 물류센터 등에 추가 적치장을 마련했다. 차량을 외부로 운송하지 못해 공장 안에 차량이 쌓이면 운영에 차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은 당진 등 전국에서 물량을 출하하지 못해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천·울산·당진 등 전국에서 하루 약 5만톤의 물량 출하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철근·강판·냉연·특수강 등 품목마다 시세가 실시간으로 달라져서 피해액을 환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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