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화물연대 파업 14일째를 맞은 7일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성신양회 단양공장 앞에 집결해 총파업 선전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화물연대 파업 당시 정부가 내린 업무개시명령은 노동 3권 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진정이 제기됐지만, 인권위는 해당 사안에 대한 의견표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임명된 상임위원 2명이 반대하면서다. 상임위원 4명 중 3명 이상이 찬성해야 인권위 안건이 가결되는 구조라, 앞으로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노동·소수자 인권 이슈에 대한 인권위 내 의견차도 뚜렷해질 전망이다.
인권위는 30일 열린 상임위원회에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상 업무개시명령 조항을 삭제하고, 국회 계류 중인 관련 개정안이 입법되도록 권고 및 의견표명해야 한다는 안건을 부결했다. 인권위 운영규칙상 송두환 위원장 포함 상임위원 4명 중 3명 이상이 찬성해야 안건이 가결되는데,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각각 지명한 김용원·이충상 위원이 모두 반대 의견을 내면서 ‘2대2’로 결과가 나오면서다.
앞서 지난해 11월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지만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발동으로 파업을 철회했다. 한달 뒤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 10명은 업무개시명령을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화물연대도 인권위가 헌법상 기본권과 국제기구 협약을 침해하진 않았는지 살펴달라며 진정을 냈다. 현행법은 화물차주가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할 수 없고, 거부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되도록 했다. 노동계는 여기서 ‘정당한 사유’의 기준이 모호하고, 헌법상 강제노역금지, 일반적 행동자유권과 노동 3권이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부결 의견을 낸 두 위원은 야당에서 나온 개정안에 인권위가 ‘힘 실어주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며 정부 대응을 옹호했다. 이충상 위원은 “정의당 의원 중심으로 10명이 이 개정안을 제안했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이 법률안을 인권위가 찬성하면 민주당보다 더 앞장서서 민주노총을 지지하는 인권위가 될 것”이라며 “화물차주는 노동자가 아닌 개인운송사업자”이기 때문에 법 개정 없이 업무개시명령 삭제만 할 순 없다고 주장했다.
김용원 위원도 “국회의원 불과 10명이 제출한 (개정안) 안건에 하루빨리 힘 실어주자는 의도로 안건을 결정할 건 아니다. 헌법과 국제노동기준에 따라 (사무처가) 검토 보고서를 써 놨는데 거의 수필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화물연대 파업이 국가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 건 국민 대다수가 절감했을 것이다. 경제계와 관계 부처 등 의견도 들어야 한다”며 유보적인 의견을 냈다.
이에 위원회를 주재한 송두환 위원장은 “특정 정당 또는 단체를 옹호하기 위한 안건이 아니다. 인권위의 유일한 판단기준은 헌법과 노동관계법률, 국제법”이라며 인권위의 권고 필요성을 밝혔다. 송 위원장은 “운송사업자라는 외양을 갖더라도 종속적 노동자 지위에서 노임을 받으면 노동자로 이해해야 한다. 이들도 단체를 조직해 집단 행동으로 의사를 표시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화물연대 조합원 대부분은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지만 위탁계약 등으로 노무를 받아 노동자와 자영업자 성격을 모두 갖는 ‘특수고용노동자’인데, 정부·경제계는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남규선 위원도 “화물운송업의 후진국형 노동시장 구조를 더 간과해선 안 된다. 도로 위 안전은 모든 사람의 문제”라며 가결 의견을 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인권위원 구성이 바뀌면서 민감한 노동·소수자 인권 이슈에 대한 의견차도 더욱 확연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인권위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처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고 독립성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용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은 “화물운송 영역에서 안전운임제는 최저임금제도와 같은 안전 장치로 작동하는데, 기업이나 정부·여당을 대변하는 것이 인권위원의 역할은 아니다”라며 “독립적 신분에서 사안을 바라봐야 하는데 정당과 당론 이야기를 하는 건 부적절해 보인다”고 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