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30일 언론에 공개된 충남 서산시 갈산동 176-4 봉화산 교통호 현장의 한국전쟁 시기 부역혐의 희생자 유해들. 진실화해위 제공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보고서 50여건이 작성 완료됐지만, 희생자 중 ‘부역자’를 가려내겠다는 이유로 최종 진상규명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내부 증언이 나왔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에 대한 진실규명이 과거보다 더 어려워지고 더디게 진행될 전망이다.
2일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한국전쟁 사건을 다루는 조사1국(조사1~4과)의 조사관들이 전국 각 지역의 신청자들과 참고인의 진술, 각종 기록을 확인해 작성을 완료한 50여건 이상의 민간인 학살 조사보고서가 2개월 넘게 소위 안건으로 올라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진실화해위의 한 관계자는 “1소위 위원장인 이옥남 상임위원이 부역자 처리지침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조사보고서를 묵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조사관이 완료한 조사보고서는 팀장-과장-국장(현재 공석)을 거쳐 상임위원에게 보고되고, 2주에 한번 위원장이 주재하는 전체위원회에서 진실규명 여부가 확정된다. 그 뒤 신청자들에게 진실규명 여부를 통지한다.
김광동 위원장과 이옥남 상임위원은 지난 5월25일 진실화해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부역 혐의 희생자 중 부역자를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부역 혐의자’는 즉결처분 당한 희생자를, ‘부역자’는 법원 재판을 통해 부역 혐의가 확정된 주민을 가리킨다. 희생자 중 ‘부역자’를 가리겠다는 건 당시 재판도 받지 못하고 즉결처분 당한 ‘부역 혐의자’ 중 누가 ‘부역자’인지 진실화해위가 판정하겠다는 뜻이다.
근거는 당시 경찰의 사찰 기록물이다. 진실화해위는 이 기록물에 ‘인민군이나 좌익세력에 협조해 폭력·살인행위에 가담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을 경우, 이들을 ‘부역자’로 판단해 희생자 명단에서 배제하겠다는 입장이다. 재판도 받지 못한 채 군경에 학살된 민간인들을, 신뢰할 수 없는 당시 경찰 사찰 기록물을 바탕으로 재단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경찰 기록물에 기재된 처형자의 직책과 처형 사유는 뒷받침할 만한 설명이나 근거가 전혀 없이 사후에 작성되거나, 작성 시점에 따라 내용이 다른 경우가 많아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경찰 기록에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민간인을 죽였다는 사실 뿐”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경찰 기록물에 ‘암살대원’으로 적혔더라도 누구를 암살했는지 아무런 기록이 없다. 재판 받은 기록도 없다.
진실화해위가 부역자를 가려내 희생자 지위를 분류하는 건 법적 근거도 빈약하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정리법)은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실규명 범위에 대해 “1945년 8월15일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사망·상해·실종사건”이라고 규정한다. 희생자의 부역 여부를 판단하거나 기준을 정해 희생자 지위를 박탈하는 조항이 없다.
1기 진실화해위는 부역 혐의 희생 사건에 대해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부터 1951년 4월 사이 부역 혐의자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적법절차 없이 군경에 의해 즉결처분당한 사건으로, 이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생명권, 적법절차 원칙 및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부역자 처리지침이 기본적으로 황당한 것을 잘 알지만, 조사관들은 어떻게 해서든 상임위원을 이해 또는 설득시켜 한명이라도 더 진실규명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 내부에서는 “조사1국장에 내정된 국정원 대공수사팀 3급 출신 인사가 청와대 검증을 거쳐 9월께 임명되면 이러한 부역자 처리지침이 구체화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겨레>는 2일 이옥남 상임위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접촉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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