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및 경찰 관계자 등이 현장감식을 위해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사고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핼러윈데이로 13만명 안팎의 인파가 모이기 보름 전인 지난 15~16일 이틀간 이태원에선 약 100만명이 모이는 ‘이태원 지구촌축제’가 열렸다. 더 많은 인원이 모였으나 두드러진 안전사고는 없었다. 1천여명에 이르는 구청 직원을 비롯해 다수 경찰이 투입돼 질서·안전 유지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진 덕택이다. 참사가 발생한 핼러윈데이 때와 양상이 달랐던 건, 지구촌축제는 용산구가 주관하는 공식 행사였기 때문이다.
31일 <한겨레>가 입수한 ‘지구촌축제 위탁용역 제안요청서’를 보면, 지구촌축제는 기획 단계부터 안전은 최우선 고려 대상이었다. ‘행사 기본방향’에는 ‘행사장 안전사고 예방을 최우선으로 하는 축제’라 적혀 있다. 행사 위탁업체가 수행해야 할 사업범위 항목에도 안전관리가 ‘최우선 평점 사항’으로 명시돼 있다. 이틀간 동원된 구청 직원 1078명은 노점 관리, 무대 보조, 보건·위생 업무 외에도 교통 통제와 질서유지 등의 역할도 맡았다. 경찰 협조는 물론 안전 전문 업체도 투입됐다. 용산구 문화체육과 담당자는 “공식 행사라 예산 확보 등 사전 계획을 세웠다. 경찰과도 질서유지와 통제 등 협업하고, 안전 관련 전문가도 불렀다”고 말했다.
핼러윈데이 기간 동안인 지난 27∼29일 3일간 구청 직원 150명이 28개조로 편성돼 비상근무에 투입됐다. 안전관리 요원은 배치되지 않았다. 서울시와 경찰, 소방에 협조 요청도 없었다. 핼러윈데이는 용산구가 주최하는 행사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이태원역·녹사평역·한강진역이 혼잡해 낙상 등의 사고 위험이 있다고 보고, 지난 27일 서울교통공사에 안내요원 추가 배치를 요청했을 뿐이다.
용산구 재난안전과 담당자는 “(용산구가) 주최 혹은 후원하지 않는 행사에 지역안전위원회 소집 등의 절차를 진행할 법적 근거가 없다. 핼러윈데이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즐기는 행사”라고 말했다. 용산구가 생산한 내부 문서 목록을 살펴봐도 핼러윈과 지구촌축제는 차이가 크다. 한달 기준으로 핼러윈 관련 문서는 코로나19 방역, 청소 중심으로 총 14건 작성된 반면, 지구촌축제 관련 문서는 4배인 64건에 이른다.
이는 ‘이태원 참사’의 원인이 행정력의 절대적 부족에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력이나 예산이 모자라 참사가 빚어진 건 아니라는 뜻이다. 함은구 한국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안전학과 교수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안전 관련 대응을 해야 한다. 이태원에 모인 시민들을 보호할 궁극적인 의무는 국가, 서울시, 용산구 모두에 있다”며 “적정 인원을 벗어나면 지자체나 경찰 현장 지휘자들이 의사결정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시민 불편이나 통제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손지민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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