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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압사 사고’에 무기력한 안전 매뉴얼, 이대론 안된다

등록 2022-10-31 18:56수정 2022-11-01 02:38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헌화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헌화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3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서울 이태원의 핼러윈 참사는 압사 사고에 대비한 안전관리 매뉴얼 부재와 당국의 안이한 대응이 빚어낸 ‘예고된 재난’이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규모 인파가 뻔히 예상되는 상황이었음에도 ‘공식’ 지역축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시민의 안전이 내팽개쳐졌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사전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라는 점에서 ‘인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선 언제든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재난 관리 체계의 빈틈을 촘촘하게 메워야 한다.

이번 참사를 통해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안전관리 매뉴얼의 미비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3월 마련한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은 지역축제 주최자가 지자체, 경찰, 소방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사전에 안내요원 배치 등 안전관리 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매뉴얼은 이태원 참사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핼러윈 데이 행사가 주최자가 없고, 행안부에 신고된 축제가 아니어서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다. 보름 전 비슷한 장소에서 열린 ‘이태원 지구촌 축제’의 경우 훨씬 많은 사람이 다녀갔지만, 당시에는 행사를 후원한 용산구청이 도로 통제, 안내원 배치 등의 안전 조처를 해 사고가 없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도로 차량 통제, 보행자 동선 분리 등을 통해 공간을 충분히 확보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전관리 매뉴얼에 큰 사각지대가 있었음을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한 게 뼈아프다.

경찰과 지자체의 소극적인 대응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경찰은 참사 당일인 29일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안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관할 지자체(용산구)의 요청이 없었다는 이유를 댔다. 집회 대응에는 수천명을 투입하면서, 10만명이 넘는 젊은이들의 축제에는 고작 130여명을 배치했을 뿐이다. 그나마 80여명은 질서 유지가 아니라 마약 등을 단속하는 업무를 맡은 사복 경찰이었다. 경찰과 용산구는 참사 3일 전 이태원 상인들과 간담회를 열었지만, 쓰레기와 위생 관련 대책만 당부했을 뿐 안전 대책은 논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미온적인 대응이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된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비판이 제기되자 윤석열 대통령은 31일 “인파 사고 예방 안전관리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행안부도 “주최자가 없는 행사도 안전관리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뒷북 대응에 나서는 행태를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는가. 어이없는 참사의 재발을 막으려면 땜질이나 보여주기식이 되어선 안 된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협력과 판단이 이뤄질 수 있는 안전관리 매뉴얼이 필요하다. 시민 안전에 대한 공무원들의 책임감을 높이는 계기가 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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