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녕군 이방면 합천창녕보 상류 250m 지점의 낙동강 본류 둑이 9일 새벽 터져서, 관계 당국이 긴급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낙동강, 왼쪽은 침수된 들판이다. 사진 오른쪽 위에 합천창녕보가 보인다. 최상원 기자
“4대강 사업을 하면서 보를 만들어 낙동강 물을 막을 때부터 내 언젠가는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어.”
9일 아침 8시께 경남 창녕군 이방면 장천리 토박이 노인이 누런 황토물로 채워진 들판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함께 있던 다른 노인도 “지금까지 살면서 낙동강 둑에서 물이 새는 것은 봤어도, 둑이 터지는 것은 처음 봤다”며 맞장구를 쳤다.
부산에 사는 강아무개(32)씨는 고향인 이방면 우산마을에서 마늘농사를 짓는 부모님이 걱정돼 이날 아침 일찍 고향에 왔지만, 수확한 마늘을 보관한 창고까지 이미 물에 잠긴 상태였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마늘을 부모와 함께 건지던 강씨는 “어차피 상품으로 팔 수는 없지만, 나중에 보상을 받을 때 피해 증거라도 될까 싶어서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말했다.
경남 창녕군 이방면 합천창녕보 상류 250m 지점의 낙동강 본류 둑이 불어난 강물의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9일 새벽 4시께 터졌다. 둑이 무너진 곳은 장천배수장 진영2배수문이 있는 곳으로, 콘크리트 구조물인 배수문만 남기고 폭 30m가량의 흙둑이 칼로 벤 듯 툭 잘려서 강 바깥 들판으로 떠내려갔다.
9일 새벽 경남 창녕군 이방면 합천창녕보 상류 250m 지점의 낙동강 본류 둑이 붕괴됐다. 임채현 창녕군 농업기반계장 제공
강물이 둑 넘어 들판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관계 당국은 이날 아침부터 바윗덩이와 흙을 부어 붕괴된 부분을 메우는 긴급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장천리·송곡리·거남리 등 이방면 일대 마을이 물에 잠겼고, 국도 67호선과 지방도 1032호선 등 도로가 끊기면서 옥야리 등 여러 마을이 고립됐다. 창녕군은 물에 잠긴 마을 주민 160여명을 이방초등학교 등으로 대피시켰다. 119구조대는 고무보트를 타고 여러 마을을 다니며 고립된 주민들을 구조했다. 이채현 창녕군 농업기반계장은 “새벽 4시께 낙동강 둑이 터졌다는 연락을 받고 현장에 나왔을 때는 이미 강물이 둑 너머로 쏟아져 들어와 들판이 물에 잠긴 상태였다”고 말했다.
낙동강 본류 둑이 터진 가장 큰 이유는 4대강 사업으로 건설한 보가 물 흐름을 방해하는 바람에, 강물 수위가 높아지면서 강둑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수압이 올라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보를 관리하는 한국수자원공사의 관측자료를 보면, 지난 8일 합천창녕보의 강물 유입량은 초당 8283t, 방류량은 초당 7660t으로 방류량보다 유입량이 많았다. 이 때문에 강물 수위가 계속 올라가, 둑이 터진 9일 새벽 4시에는 해발 17.56m까지 물이 차면서 보 상한수위인 11m를 6.56m나 넘겼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교수(토목공학과)는 “합천창녕보에 막혀 낙동강 물 흐름이 느려진 것이 둑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이다. 불어난 물을 빼내기 위해 보 수문을 완전히 열었지만, 보 시설 자체가 물 흐름에 지장을 줬다. 결국 낙동강 본류의 둑이 높아진 수압을 견디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두번째 원인은 ‘파이핑 현상’ 때문이다. 낙동강 둑이 터진 지점은 배수문이 있는 곳이다. 콘크리트 구조물과 흙 구조물이 결합한 가장 약한 부분에 물이 스며들어 구멍을 내면서 결국 터진 것이다. 평소 배수문을 철저히 관리하지 않아 둑 붕괴를 막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119구조대가 고무보트를 타고 다니며 낙동강 본류 둑 붕괴로 물에 잠긴 마을 주민을 구조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낙동강권역 환경단체들의 모임인 낙동강네트워크의 임희자 집행위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으로 보를 건설하며 첫번째로 내세운 효과가 홍수 예방이다. 하지만 이번 낙동강 본류 둑 붕괴사고를 통해 홍수 예방은커녕 홍수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 증명됐다. 4대강에 건설한 보를 모두 철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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