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3시 경북 포항 북구 흥해읍 마산리 대성아파트 E동 입구 앞에 주민들의 살림살이가 가득 쌓여있다.
“우리들을 왜 원숭이 보듯이 쳐다보는 거예요?”
19일 오후 5시께 경북 포항 북구 흥해읍 남산초등학교 체육관. 1층에 있던 한 주민이 2층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이렇게 소리쳤다. 주변에 있던 자원봉사자들이 달려와 화를 내는 주민을 말렸다. 2층에 있던 10여명 중 절반이 놀라 1층으로 내려왔다. “지금 피난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재민들 상당수가 감정적으로 예민한 상태예요. 이제 언론 인터뷰도 잘 안 하려고 해요.” 옆에 있던 다른 주민이 귀띔해줬다.
지진 피해를 입은 포항시민들이 추위, 장기화, 아이들 걱정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겨울을 앞두고 일어난 지진으로 추위에 맞서 싸워야 하는데다, 시골 지역에서 일어난 지난해 경주지진과 다르게 아파트 등 다층 건물 붕괴 우려가 있는 도시에서 피해가 발생하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가기도 힘들다. 여기에 학교건물마저 위험하고 수능도 앞두고 있어 아이들 걱정도 앞선다. 지난 15일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한 이후 19일 저녁 8시까지 56차례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어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이날 포항 시내 최저기온은 이번 겨울 처음으로 영하 1.5도까지 뚝 떨어졌다. 남산초 체육관 안에는 주민 370여명이 찬 바닥에 이불을 깔고 앉아 있었다. 일부 주민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잠이 든 사람도 있었다. 나이가 많은 주민 일부는 마스크를 쓰고 기침을 했다. 체육관에서는 자원봉사자 10여명이 라면과 물을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남산초 운동장은 주민들의 승용차로 가득 찼다.
흥해읍 ㅎ맨션에 거주하는 40대 최아무개씨는 “공간이 부족해 며칠째 체육관 바닥에 깔아놓은 담요 한장 공간에서 세 식구가 지내고 있다. 낮에는 대피소에 있고 밤에는 찜질방을 전전하기도 한다. 피난 생활이 오래가다 보니 거지도 아닌데 구걸하는 기분이 들어 서럽다. 오랫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해 피곤하다”고 말했다. 최씨는 두꺼운 이불로 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지진 이후 첫 주말 집이 많이 부서진 주민들은 다른 곳에서 겨울을 보낼 생각을 하며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말이었던 18일과 19일 대성아파트 등에 사는 주민들은 집 안에 있던 물건을 가지고 나왔다. 지난 18일 오후 4시께 흥해읍 마산리 대성아파트 E동 출입구 앞 주차장에는 세탁기, 텔레비전, 옷걸이, 침대, 소파 등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주민들은 급하다 보니 쓰레기봉투 수십장을 사서 물건을 담아 날랐다. 주차장에는 1t 트럭이 줄지어 서 있었다. 살림살이를 가득 실은 트럭과 빈 트럭이 쉴 새 없이 아파트를 오갔다.
19일 오전 경북 포항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지진 피해 이재민들이 대피소를 옮기기 위해 줄지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포항/연합뉴스
E동에 사는 손진용(69)씨는 “이불과 냄비 등 필요한 것만 우선 집에서 빼내고 있다. 임시거처인 흥해실내체육관은 너무 좁고 사생활 보호가 안 돼 아예 아내와 함께 살 아파트를 월세로 얻었다”고 말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20일 등교를 하루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 흥해고에 다니는 자녀를 둔 김아무개씨는 “내일부터 등교인데 너무 허술하게 검사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갖고 등교를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흥해고 2학년 김태호(18)군은 “지금 집도 없는 상황이라 내일부터 등교를 하면 엄청 불편할 것 같다”고 했다. 포항시는 19일 가장 많은 주민들이 대피해 있던 흥해체육관을 비우고 시설 정비에 들어갔다. 체육관에 있던 주민들은 근처 남산초와 흥해공고로 나눠 보냈다. 포항시는 건축물 정밀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지진 피해가 심해 집에서 살기 힘든 주민들을 골라 체육관 등을 장기거주시설로 사용할 계획이다. 현재 포항의 대피소 14곳에서는 모두 900여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포항시는 파악하고 있다.
포항/김일우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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