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3시 경북 포항 북구 흥해읍 마산리 대성아파트 E동 입구 앞에 주민들의 살림살이가 가득 쌓여있다.
“짐 빼러 왔습니다.”
18일 오후 3시 경북 포항 북구 흥해읍 마산리 대성아파트 E동 입구. 한 주민이 1t 트럭을 몰고 와 이렇게 말했다. 경찰관 2명이 붉은색 폴리스라인을 내려줬다. 빈 트럭이 덜컹대며 E동으로 들어갔다. 빈 트럭이 들어가자마자 살림살이를 가득 실은 1t 트럭 한대가 빠져나갔다. 대성아파트는 붕괴 위험이 있어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지난 15일 지진으로 E동이 북쪽으로 기우는 등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6개 동에 260가구가 사는 대성아파트(5층)는 1987년 지어져 내진설계가 되어있지 않다.
“큰 것 부터 가져와요.”
E동 앞 주차장에는 살림살이가 실린 트럭들이 가득했다. 추운 날씨 속에 주민 20여명이 아파트 계단을 오가며 집 안에 있던 물건을 밖으로 옮기고 있었다. E동 앞 주차장에는 세탁기, 선풍기, 텔리비전, 옷걸이, 의자, 침대, 소파 등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급하게 담은 듯 대야에는 그릇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테이프를 붙이지도 않은 종이박스 안으로 자그마한 물건들이 보였다. 쓰레기봉투 안에는 과일과 채소 등 먹다 남은 음식이 들어 있었다.
18일 오후 3시 경북 포항 북구 흥해읍 마산리 대성아파트 E동이 북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주말이라 시간이 있어 그냥 짐 빼는 거에요.”
주민들은 아파트가 언제 무너질지 불안해하며 집 안 물건을 가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을 살피는 공무원이나 전문가는 보이지 않았다. 해병대 군인 10여명만 나와 주민들의 ‘피난’을 도왔다. “아저씨 기자 맞죠? 주민센터 가서 내 전화번호를 남겼는데 지금까지 문자 한통 없어요. 집 안 물건은 언제 빼라는 설명이 있어야지 지금 주민들이 붕괴 위험 있는 집에 들어가 각자 알아서 물건을 빼고 있잖아요. 이런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기사 좀 써주세요. 정말 엉망이고 화가나요.” E동 3층에 사는 어머니 집 물건을 옮기던 딸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지진으로 인해 전기공급이 중지되어 있습니다.’
E동 출입문에는 이렇게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E동의 출입문 6곳 중 몇곳은 유리창이 박살이 나 있었다. 어떤 출입문은 승용차가 들이 받은 것 처럼 안쪽으로 구부러져 있었다. E동으로 들어가 계단으로 5층까지 올라가자 집 현관문은 모두 열려있었다. 집 안을 들여다보니 휑했다. 최근 모두 이사를 간 것 같았다. 집 안 장롱과 책상 서랍도 모두 열려있었다.
18일 오후 3시 경북 포항 북구 흥해읍 마산리 대성아파트 E동 입구 앞에서 주민이 집 안의 물건을 종이가방에 넣어 옮기고 있다.
“오늘 다 못하겠어. 내일 마저 해야지.”
E동 301호에 사는 노기양(70)씨가 힘든 몸을 끌고 3층에 있는 집에서 이불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이불을 둘둘 감아 자신의 1t 트럭 조수석에 이불을 넣었다. 그의 트럭 뒤에는 물건이 가득 찬 종이박스 하나만 달랑 실려있었다. 노씨는 얼마 안 되는 이 짐을 우선 근처에 있는 자신의 컨테이너에 가져다 놓고 흥해실내체육관에 가서 잘 생각이라고 했다. 이날 주민들의 ‘피난’을 유일하게 돕던 군인들은 오후 4시께 “복귀해야 한다”며 모두 철수했다. 하지만 몇명의 주민들은 남아 계속 물건을 옮겼다.
이날 밤 11시 기준으로, 포항시는 대성아파트 등 7개 건물이 붕괴 위험이 있다며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또 이번 지진으로 모두 76명이 다쳤고, 17명(중상 5명·경상 12명)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포항시는 흥해실내체육관(730명), 기쁨의 교회(100명), 항구초등학교(90명) 등 11곳에 모두 1044명이 대피해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포항시는 이날 “저녁 7시30분 기준으로 피해액이 396억5200만원”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포항/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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