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냅이란 :
새로운 뉴스 ‘한스냅’(
Han’s nap)을 시작합니다. <한겨레> 스냅뉴스의 줄임말로, 낮잠(nap)처럼 가볍고 말랑한 소재를, 스냅(snap) 사진 중심으로 부담없이 보고 읽게 구성합니다.
대한민국은 아주 크지 않지만 지역간 차이, 즉 생활양식·관습·제도·삶의 질 따위 차이가 없지 않습니다. 서울은 부산이 아니고, 부산은 광주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대한민국에 살지요.
한스냅은 지역간 나쁜 격차는 해소하고, 좋은 차이는 이해 존중함을 기치로 우리의 소소한 차이들을 낚아채겠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한겨레> 지역기자들이 총출동해 전국을 누비는 한스냅, 바로 출발해보겠습니다.
1회 밥심으로 뛴다, 우리 도시 공무원
최근 중앙정부 공무원에 대한 비판보도가 많았습니다. 복지부동, 탁상공론, 시민의 삶과 유리된 정책 추진 등이 주요 논점이었습니다. 지방정부 공무원은 정책을 수립하는 동시에 대민업무도 하기에 중앙정부보단 주민들의 요구를 상대적으로 빨리 읽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중앙정부에 억눌리고 통제되는 경우가 많지요.
지방정부엔 중앙정부에 견줘 7급 아래 직급의 공무원이 많습니다. 누군가는 역량차이를 지적합니다만, 이들 역시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왔다는 사실을 새겨야합니다. 정책기획에, 민원처리에, 심지어 겨울철 눈치우는 일까지 이 도시가 이들에게 기대는 바는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스냅 첫회로, 그들은 무엇을 먹고 힘을 내는지 취재해보았습니다.
8월29일, 전국 16개 광역시·도(경기도 제외)와 100만 인구 도시 2곳(경기 성남·고양)의 자치단체 본청 구내식당을 한겨레 기자들이 일제히 훑었습니다.
한주의 시작을 여는 월요일,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사먹고 사진에 담고, 밥을 떠넣는 그들을 만났습니다.
일단 사진부터 보시죠. 가격 순으로 정렬했습니다.
가장 저렴한 곳은 강원도청, 전북도청, 울산시청인데요. 단돈, 2500원입니다. 여기서 ‘김영란법’을 어기려면 한번에 12끼 넘게 ‘접대’받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김영란법 어기기가 여간 쉽지 않단 걸 아시겠죠?
강원도(2500원). 잡곡밥. 건새우아욱국, 돈육꽈리고추조림, 오징어채소무침, 가지양념구이, 배추김치
전북도(2500원). 잡곡밥, 호박잎들깨 된장국, 닭가슴살 카레, 콩나물무침, 꽁치구이와 겨자장, 야쿠르트, 나박김치(깍두기 일종)
울산시(2500원). 현미잡곡밥, 청국장찌개, 돈육야채볶음, 늙은호박전, 오징어.브로콜리&초고추장, 배추김치(24일 중식)
강원도라 하여 감자만 나올 거라 상상하셨다면, 편견이고 오해라고요! 강원도 직원들은 춘천에서 생산되는 ‘솔바우농부쌀’을 먹습니다. 이 가격에 가끔
닭갈비, 막국수도 배식된다는 사실 알고 계세요?
그럼 가장 비싼 곳은 어디일까요. 다름아닌 제주도청입니다.
제주도(4500원). 흑미밥, 호박잎국, 제육볶음, 호박채무침, 큰멸치무침, 쌈, 고추, 김치, 찐감자
한가득 제육을 ‘녹화’시키는 호박잎국, 고추, 쌈, 호박채무침까지 상당한 건강식이죠? 제주도 담당 허호준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 와! 대박인데요. 왜 이렇게 비싼거죠?
= 우리가 제일 비싼가요? 허허. 아무래도 이용하는 직원이 적어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요.
- 식단은 제일 풍성해보여요
= 평소도 직원들한테 인기가 좋아요.
- 아무리 그래도 다금바리가 나오는 건 아니죠?
= ㅍㅎㅎ(푸하하)
이날 제주도 구내식당 점심은 직원 200명이 이용했고, 이를 위해 쌀 24㎏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다음 저렴한 곳으로 가볼까요. 인천시청(2600원), 경남도청(2700원)입니다.
경남도(2700원) 차조밥, 북어해장국, 찰순대, 양파겨자냉채, 부추생채, 가자미구이, 배추김치
월요일 점심으로 북어해장국을 준비해주는 경남도의 센스가 엿보입니다. 인천시는 구내식당 리모델링 공사로 아쉽지만 사진에 담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주 월요일은 을지훈련이라며 주먹밥이 나왔다고 해요. 또한 사진에 담지 못했습니다.
광주광역시와 대구시, 고양시는 3000원에 끼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광주는 반찬만 8가지네요. 제주도와 함께 가짓수에서 ‘넘버1’입니다.
광주광역시(3000원). 차조밥, 고구마순된장국, 돈육김치볶음, 두부찜, 꽈리고추알감자조림, 고등어구이, 부추겉절이, 미숫가루, 포기김치
고양시(3000원). 현미밥/특미밥, 감자수제비국, 갈치조림, 유부채부추볶음, 오이생채, 토마토그린샐러드, 포기김치
경기북부 담당 박경만 기자가 보란듯 사진에 담았지만, 포기김치는 대접째 배식된 건 아닙니다.
나머지 관청은 식사값이 모두 3500원입니다. 그가운데 직원수가 가장 많은 서울시 공무원들은 무엇을 먹고 힘을 얻을까요?
서울시(3500원). 완투콩밥/쌀밥, 흰떡미역국, 순대야채볶음, 콩나물무침, 포기김치, 고구마사과샐러드
‘애걔~’ 하셨어요? 3500원식입니다. 2500원식에 견줘, 두드러지는 특징이 없어보이죠? 직접 제가 먹어봤는데, 날을 잘못 잡은 건지, 여느 때보다 맛도 별로 없었습니다. (영양사님, 죄송) 흰떡미역국 속 떡가래가 2조각(아놔~)이라서 반감이 좀 생긴 모양입니다.
하지만 평소 식단은 꽤 만족스럽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업무추진비를 가장 많이 사용한 곳이 구내식당이란 사실도 그래서 가능할 겁니다. 아, 박 시장이 구내식당 ‘사업자’이니 제 가게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게 이상할 리 없는데, 좀 이상하죠?
서울시는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직원수가 늘 1000명(본청 직원 2200명)을 넘습니다. 이날 이용자수는 1392명. 충남 당진에서 거둔 쌀(상록수) 140㎏이 들어갔습니다.
이날 점심 이용자수가 가장 많은 곳은 경북도청이었습니다. 1400명.
경북도(3500원) 잡곡밥, 알탕, 오이생채, 고추잡채, 포기김치, 감자, 꽃빵
알탕이 나오다니요. 점심먹다 반주 한잔 생각난 경북도 직원분들 없으셨을까요?
그다음은 부산시청입니다. 1175명이 120㎏의 쌀을 소화했습니다. 이달 월요일 평균 이용자수(1120명)보단 훨씬 많았는데 왜죠? 귀신처럼 달콤콘슬로우의 냄새라도 맡은 걸까요.
부산시(3500원). 흑미밥, 참치김치찌개, 닭고구마조림, 달콤콘슬로우, 둥글오이무침, 깍두기
충남도청과 대전시청은 두가지 메뉴가 제공됩니다. 골라먹을 수 있어요. 이날 충남도는 해물덮밥, 유부장국, 야채고로케, 단무지, 포기김치를 A메뉴로, 잡곡밥, 어묵국, 닭살야채볶음, 브로콜리들깨볶음, 깻잎지, 포기김치를 B메뉴로 배식했습니다.
대전시는 A메뉴에 잡곡밥, 팽이버섯미역국, 돈사태수육, 오징어콩나물찜, 꽈리고추곤약조림, 배추김치를, B메뉴에 잡곡밥, 부추된장국, 함박스테이크, 떡볶이, 무말랭이무침, 배추김치를 담았고요. 아, 돈사태수육이냐, 함박스테이크냐….
대전시(3500원). 잡곡밥, 팽이버섯미역국, 돈사태수육, 오징어콩나물찜, 꽈리고추곤약조림, 배추김치
충남도(3500원). 잡곡밥, 어묵국, 닭살야채볶음, 브로콜리들깨볶음, 깻잎지, 포기김치
독자들 고민되실까 싶어 간단히 A메뉴만 ‘스냅’. 실은 충남 대전 담당 송인걸 기자가 일 때문에 식사가 늦었는데, 함박스테이크는 이미 ‘완판’되었다고 합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거죠.
충북도는 메뉴 대신 식판을 선택하게 했습니다. 신기하죠? 도자기 식판과 일체형 멜라민 식판 두가지 중 골라 사용합니다.
충북도(3500원). 현미밥/쌀밥, 콩나물국, 오삼불고기, 모듬쌈, 아삭고추절임, 깍두기
충북도를 담당하는 오윤주 기자는 도자기 식판에 오삼불고기를 담았네요. 충북도는 위생 등을 고려해 청주에 연고를 둔 한국도자기에 맡겨 자체제작한 식판이라고 홍보합니다. 가히 ‘식판 자부심’.
다음은 요즘 청년배당, 무상교복 등 복지사업으로 연일 언론에 등장하는 성남시청입니다. 밥상에 내비친 직원 복지 수준도 만만치 않은 듯 합니다.
성남시(3500원). 차수수밥, 돈육김치와 온두부, 시래기 된장국, 한식잡채, 참나물 유자 초무침, 깍뚜기, 양배추 샐러드
본래 관청 구내식당은 집단급식소로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외부인에게 개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남시는 민원처리를 위한 내방인, 각종 회의실, 청사개방 시책으로 운영하고 있는 체력단련실, 어린이놀이터, 하늘북카페 등의 이용시민들이 많아 사실상 같은 값으로 상당수의 외부인도 이용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맛의 본고장 전남을 관장하는 전남도청으로 가보겠습니다.
전남도(3500원). 잡곡밥/쌀밥, 소고기미역국, 콩불고기, 오이부추무침, 맛살야채볶음, 무채부침, 배추김치
개인적으로, 18개 광역시도 본청 구내식당의 이번주 월요일 점심 가운데 가장 맘에 드는 식단입니다. 역시 전남이랄까요. 담양산 유기농 쌀 80㎏으로 밥을 지어 702명에 점심을 제공했네요.
자, 이제
한눈으로 견주시죠.
18개 광역시도 본청의 구내식당은 저녁밥도 제공하는 곳, 제공하지 않는 곳, 관청 방문객에게 같은 값으로 끼니를 판매하는 곳, 더 비싸게 판매하는 곳으로도 구분됩니다.
밥은 곧 일하는 힘이어서, 석식 이용자수는 그날 야근자수를 가늠하게도 합니다. 서울시는 700명 이상이 매일 저녁을 구내식당에서 해결합니다. 바쁘다는 중앙공무원도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업무량을 소화하기 위해서죠.
18개 광역시도 본청 구내식당만 해도 이처럼 제각각인데, 사람 사는 풍경은 얼마나 다양할까요. 한스냅은 이제 소소하게 다른 그 풍경들을 담아 여러분에게 전하겠습니다.
어딘가가 제 사는 곳과 달라 놀란 적 있으신가요. 스냅사진으로 담아 아래 메일로 보내주세요. 한스냅이 더 취재하여 널리 공유하겠습니다.
전국종합,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