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5·31 광주시장 후보 인터뷰] 박광태 민주당
박광태 민주당 광주시장 후보는 “경제시장으로서 2010년까지 일자리 13만4천개를 만들겠다”며 출마 다짐과 재선 구상을 설명했다.
-재선에 도전하는 이유는?
=광주는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다. 우리는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시절 광주는 경제적으로는 너무나 어려웠다. 민선 3기 들어 처음으로 소비도시의 멍에를 벗고 생산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부자 광주’ ‘1등 광주’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보겠다.
-당의 공천 경선이 없어져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은데.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강운태, 전갑길 두 동지가 양보를 했다. 이 뜻을 받들어 정책선거, 클린선거, 시민참여선거를 실천하겠다.
-공천헌금 파문으로 당지지도가 떨어졌지만 후보 지지도는 여전히 높은데.
=이제는 정당보다 인물보고 찍는다. 지난 4년 동안 지역경제를 살리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삼성을 비롯해 288개 기업을 유치했고, 제조업 생산증가율과 수출 증가율에서 2년 연속 전국 1위를 했다. 지난해 수출은 72억달러로 경제규모가 4배가 큰 부산의 68억 달러를 앞질렀다. 이런 성과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1등 광주라는 구호에 거부감이 적지 않은데.
=감옥에 있으면서 어떻게 광주를 살릴까 고민했다. 그러다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세계와 당당히 경쟁하는 광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1등 시민이 1등 도시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이 삐걱거리는데. =광주는 문화분야의 인적 자원이 풍부해 물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행정의 몫이다. 아시아 문화전당의 건축에 광주를 대표할 만한 랜드마크를 추가해야 한다. 이는 시민의 뜻이다. 여러 통로로 설계에 반영하도록 요구 중이다. 문화산업단지도 100만~200만평 규모로 조성할 수 없다면 특정구역을 설정해 문화로 밥벌이를 하는 근거지로 만들어야 한다. -지하철 2호선은 건설할 것인가? =장기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지하철은 대중교통망 투자인 만큼 눈앞의 경제논리만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 시민 70%는 2·3호선 추가건설을 바란다. 안관옥 기자
‘유신 반대’로 옥고…‘현대서 금품’ 무죄 판결 박 후보는 문태고와 조선대 상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야당인 신민당에 들어가 71년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유세를 도왔다. 74년 유신반대 활동을 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1년여 동안 옥고를 치렀다. 12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낙선했고, 13대 때 평민당 공천에서도 탈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14~16대 때 광주 북갑에서 3선하며 정치적으로 도약했다. 2000~2002년 국회 산업자원위원장을 맡아 경제와 무역 분야의 경험을 쌓았다. 2002년 민주당 광주시장 공천후보가 부정경선 시비에 휘말리자 대타로 나서 당선하는 뚝심을 보였다. 2004년 현대건설에서 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1심 재판을 받다 법정 구속됐지만, 대법원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감옥에 있으면서 어떻게 광주를 살릴까 고민했다. 그러다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세계와 당당히 경쟁하는 광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1등 시민이 1등 도시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이 삐걱거리는데. =광주는 문화분야의 인적 자원이 풍부해 물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행정의 몫이다. 아시아 문화전당의 건축에 광주를 대표할 만한 랜드마크를 추가해야 한다. 이는 시민의 뜻이다. 여러 통로로 설계에 반영하도록 요구 중이다. 문화산업단지도 100만~200만평 규모로 조성할 수 없다면 특정구역을 설정해 문화로 밥벌이를 하는 근거지로 만들어야 한다. -지하철 2호선은 건설할 것인가? =장기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지하철은 대중교통망 투자인 만큼 눈앞의 경제논리만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 시민 70%는 2·3호선 추가건설을 바란다. 안관옥 기자
‘유신 반대’로 옥고…‘현대서 금품’ 무죄 판결 박 후보는 문태고와 조선대 상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야당인 신민당에 들어가 71년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유세를 도왔다. 74년 유신반대 활동을 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1년여 동안 옥고를 치렀다. 12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낙선했고, 13대 때 평민당 공천에서도 탈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14~16대 때 광주 북갑에서 3선하며 정치적으로 도약했다. 2000~2002년 국회 산업자원위원장을 맡아 경제와 무역 분야의 경험을 쌓았다. 2002년 민주당 광주시장 공천후보가 부정경선 시비에 휘말리자 대타로 나서 당선하는 뚝심을 보였다. 2004년 현대건설에서 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1심 재판을 받다 법정 구속됐지만, 대법원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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