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5·31 울산시장 후보 인터뷰] 노옥희 민주노동당
“울산시민들이 행복하도록 만들겠습니다.”
노옥희(47) 민주노동당 울산시장 후보는 울산이 1997년 광역시로 승격한 뒤 외형적 성장만 했고 도시성장의 실질적 주역인 노동자와 서민들은 성장의 열매에서 소외되고 삶의 질은 더 나빠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앞으로 울산 시정은 나눔과 돌봄이 중심이어야 한다며, 20년 동안 교육·노동·시민사회운동을 펼쳐온 자신이 서민들의 희망 전도사가 될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이고, 해결방안은 있는가?
=사회양극화 해소다. 자치단체 비정규직을 먼저 철폐하고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통한 청년실업 해소에 나서겠다. 노·사·시·정부·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지속가능한 울산발전위원회’를 시장 직속으로 설치해 통합과 나눔, 돌봄의 새로운 울산을 그려나가겠다. 또 주상아파트 분양 열풍과 도시 전체의 재개발 추진 등으로 투기 바람이 불어 공동체 울산이 무너지고 세입자와 영세상인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공공개발을 통한 공공임대아파트를 늘리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마련해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
-인구가 늘지 않고 있다?
=수도권 과밀화와 함께 울산의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이 없는데다가 민·관·산·학의 노력이 가시화되지 않아 울산 인구가 늘지 않고 있다. 지속가능한 울산발전위원회를 통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
-5000억원을 넘은 부채를 어떻게 할 것인가?
=대규모 개발사업 남발로 해마다 갚아야 하는 부채 이자만 300억원에 이르고 있다. 원점에서 대규모 개발사업을 재검토하고 건전재정의 원칙에서 사업의 우선순위 등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지방자치제도나 조세제도의 한계로 개별 자치단체가 지방재정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방분권이 더 속도를 내야하며 재정확충을 위한 제도적 개선도 필요하다.
-울산국립대를 어떻게 키울 생각인가? =울산국립대는 법인으로 운영된다. 정부의 예산 지원과는 별도로 자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하지만 울산시의 재정여건을 고려할 때 지속적인 예산 투입은 어렵다. 시민들의 힘으로 국립대 유치 결실을 맺은 것처럼 민관산학이 다시 한 번 뜻을 모아 정부의 지속적인 재정지원을 끌어내야 한다. 김광수 기자
노 후보는 경남 김해의 한 시골마을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이유로 대학 진학을 반대하던 부모의 뜻을 꺾고 여자로서는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과외교사 등을 하며 부산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울산 현대공고(현 현대정보과학고)에서 평범한 교사의 길을 걷던 그는 와이엠시에이(YMCA) 독서모임 등을 하면서 교육 현실에 눈을 떴다. 그는 1986년 교육민주화 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해직되면서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했다. 노동문제상담소에서 간사로 일하던 87년 노동자대투쟁 때 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99년 복직되기까지 13년 동안 교육·노동운동에 몸을 던졌던 그는 전교조 1·2대 울산지부장과 울산시교육위원을 역임하면서 고교 평준화 등 교육개혁에 힘을 쏟았다. 지난해에는 울산시교육감 선거에 나섰으나 낙선했다. 지난달 노동계의 강력한 요구로 민주노동당 울산시장 후보를 뽑는 민주노총 내부 경선에 나서 김창현 전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을 꺾었다.
-울산국립대를 어떻게 키울 생각인가? =울산국립대는 법인으로 운영된다. 정부의 예산 지원과는 별도로 자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하지만 울산시의 재정여건을 고려할 때 지속적인 예산 투입은 어렵다. 시민들의 힘으로 국립대 유치 결실을 맺은 것처럼 민관산학이 다시 한 번 뜻을 모아 정부의 지속적인 재정지원을 끌어내야 한다. 김광수 기자
노 후보는 경남 김해의 한 시골마을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이유로 대학 진학을 반대하던 부모의 뜻을 꺾고 여자로서는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과외교사 등을 하며 부산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울산 현대공고(현 현대정보과학고)에서 평범한 교사의 길을 걷던 그는 와이엠시에이(YMCA) 독서모임 등을 하면서 교육 현실에 눈을 떴다. 그는 1986년 교육민주화 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해직되면서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했다. 노동문제상담소에서 간사로 일하던 87년 노동자대투쟁 때 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99년 복직되기까지 13년 동안 교육·노동운동에 몸을 던졌던 그는 전교조 1·2대 울산지부장과 울산시교육위원을 역임하면서 고교 평준화 등 교육개혁에 힘을 쏟았다. 지난해에는 울산시교육감 선거에 나섰으나 낙선했다. 지난달 노동계의 강력한 요구로 민주노동당 울산시장 후보를 뽑는 민주노총 내부 경선에 나서 김창현 전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을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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