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곰돌이네’는 엄마가 없다. 곰돌이네 남매를 낳은 어미 개를 본 사람도 없다. 생후 2~3개월 강아지들이 산에 버려졌기 때문이다. 포천쉼터에 들어온 지 이제 두달 남짓. 몸집은 커지고, 이름도 생겼지만 여전히 엄마는 없다. 이쯤 되면, 사람 ‘엄마’가 생기면 좋을텐데 곰돌이네 6남매 가운데 한 마리라도 입양 문의가 들어온 강아지는 아직 없다.

지난 2월5일은 애니멀피플(이하 애피)이 개들의 사진을 찍는 마지막 날이었다. 애피는 지난 1월부터 경기도 포천시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쉼터에 있는 유기견 1000여 마리의 얼굴을 사진으로 담고 있었다. 지난해 9월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가 사설유기견 보호소 애린원에서 구조한 1600여 마리 개들의 개체관리를 조금이나 돕기 위해서였다. 구조 당시 보호소 내에서도 들개처럼 생활했던 개들은 개체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관련기사/담 넘고, 도망치고…쉽지 않은 개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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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사람이 반가운 ‘곰돌이네’

사진을 찍기 위해 견사에 들어가면 개들은 대략 세 부류의 반응을 보였다. 낯선 사람이 두려워 저들끼리 몸을 겹치고 구석에 앉은 녀석들, 약간 두렵긴 하지만 호기심에 이끌려 왈왈 대며 사람 뒤를 쫓는 녀석들, 그리고 ‘왜 이제 왔냐며’ 두 발로 격하게 반기는 녀석들이었다. ‘곰돌이’들은 완벽히 세 번째 부류였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여준 개들이었다.

곰돌이네 6마리의 방은 옛 애린원 견사를 일부 그대로 쓰고 있는 ‘구견사’ 쪽이었다. 곱슬곱슬 새카만 몸털에 가슴만 하얗고, 네 발은 통통하고 묵직해 마치 아기곰 같은 이 개들은 이제 갓 4개월을 넘긴 강아지였다. 2월5일 개들의 개체카드 사진을 찍기 위해 곰돌이네 방을 찾았다. 편의상 곰돌이네라고 불렀지만, 남매들은 이름이 있었다. 잘 생긴 외모 덕에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등장인물의 이름을 따 각각 잔디, 지후, 준표, 가을, 이정, 재경이라고 불렸다.

큰 개방형 견사를 남매 6마리가 나눠쓰고 있었다. 보더콜리종의 믹스견으로 보이는 이 개들은, ‘언제나 바쁜 일중독자’로 불리는 양치기 개 보더콜리의 유전자를 타고 난 건지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한꺼번에 서너 마리가 달려들어 앞발로 반갑다고 뛰어오르고, 동시에 두어 마리는 새로 온 인간들의 신발끈 물어뜯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진을 찍으려야 찍을 수가 없었다. 개들을 한 마리씩 품에 안아올려서 찍기로 했다. 정신없이 날뛰던 강아지도 품에 안기자 얌전해졌다. 조용히 사람 냄새를 맡고 입을 맞춰왔다. 강아지를 한 마리씩 안아올리는 동안 격하게 반기던 다른 강아지들도 차츰 흥분을 가라 앉혔다. 갑자기 사료 그릇으로 가서 급하게 사료를 씹는 녀석도 보였다. 너무 급하게 사료를 먹느라 사레가 들리기까지 했다.

“일종의 스트레스 반응이예요.” 포천쉼터 유선미 동물보호관리팀장은 개들이 흥분 상태에 놓이면 갑자기 급하게 밥을 먹거나, 용변을 본다고 했다. 사람이 좋아서 하는 행동인줄로만 알았는데 개들에게 낯선 사람은 좋으면서도 스트레스인 것 같았다. 평소 사람을 자주 만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이렇게까지 자극적인 일이었을까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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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

곰돌이네 여섯 마리는 사실 포천쉼터 대부분의 개들과는 사연이 조금 다르다. 철거된 애린원에서 구조된 것이 아니라, 지난해 1월 포천쉼터 인근에서 발견됐다. “동네 주민분들이 제보를 주셨어요. 개가 산에 새끼를 낳은 것 같다고.” 강아지들은 포천쉼터로 올라오는 산 중턱, 길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보통 새끼가 발견되면 멀지 않은 곳에서 어미도 나타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아무리 찾아봐도 어미개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주변에서 사람 옷가지와 사료 그릇, 목줄 등이 보였다. 포천쉼터 활동가들은 곰돌이들이 유기된 개들 같다고 했다. “사실 개들이 구조되기 며칠 전에 강아지를 좀 받아줄 수 없겠느냐고 오신 분이 있었어요. 다들 그 분이 버린 게 아닐까 추정하고 있어요.” 암수 각각 세 마리씩인 이 강아지들은 얼핏 보기에도 대형견으로 자라날 것으로 보였다

유기견 천 마리가 넘는 곳에 개를 버리러 오다니, 상식 밖의 이야기였다. 유 팀장은 그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라고 했다. “한번은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데리고 와서 보호소 앞마당에 풀어놓고 얼른 데리고 가라고 하신 분도 있었어요. 이러면 안 된다고 겨우 달래서 돌려보냈는데, 그럴 때마다 힘은 빠지죠.”

중성화 안 된 동네 개가 자꾸 보호소 내로 들어는 것도 문제였다. 아무리 보호자에게 개를 관리해 달라고 신신당부 하고 돌려 보내도 개는 다시 돌아왔다. 결국 보호소에서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한 뒤 보내야 했다. 일부러 근처에 풀어두고 산에서 구조 되게 만드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위치가 알려지다 보니 이렇게 역이용 하려는 분들이 생기더라구요.”

‘반려인구 천 만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였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8년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동시에 유기동물의 수도 꾸준히 늘어났다. 2015년 8만 마리 수준이었던 유기동물의 수는 2018년 12만 마리까지 늘어났다.(‘2018년 반려동물 보호, 복지 실태조사 결과’, 농림축산식품부)

‘유기동물 12만 마리’라는 숫자는 오직 지자체(시, 군)가 직접 운영하거나, 지자체가 민간 위탁한 전국 298곳 동물보호센터의 구조 동물을 추산한 것으로 옛 애린원과 같은 사설동물보호소가 보호 중인 유기동물 숫자는 빠진 통계다. 사설보호소까지 포함하면 한 해 가족에게서 버려지는 동물의 수는 그보다 훨씬 많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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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동물보호시스템, 이대론 안 된다

2017년부터 애린원 해체에 앞장 섰던 비글구조네트워크 유영재 대표는 유기견은 세계적인 문제라고 했다. 2008년 국제동물권단체 동물을 위한 마지막 희망(Last Chance for Animals·LCA)이 처음 시작한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Adopt, Don’t Shop) 캠페인의 구호가 10여년 넘게 똑같이 외쳐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 대표는 “국민 소득이 올라가고 삶의 질이 좋아지면서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많이 향상됐다. 인식은 빠르게 변했지만, 동물보호법과 동물에 대한 개개인의 책임감은 조금 늦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2017년부터 실험 비글 뿐 아니라 유기 비글도 구조해온 유영재 대표는 국내 동물보호시스템의 미비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지자체의 민간위탁형 보호소 제도를 원천적으로 손볼 때가 왔다고 말했다. “민간 보호소에서 가장 큰 비용은 인건비예요. 열악한 보호소에서 사료가 아까워서 밥을 안주는 게 아니예요. 사료 먹고 물 먹으면 용변을 보잖아요. 그러면 용변을 치워야 하니까 사람을 안 쓰려고 밥을 안주는 상황이 벌어져요.” 보호소 운영자가 수탁기간 내 동물의 복지보다는 영리나 이윤추구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설동물보호소를 제도권으로 포함시키는 일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지자체 보호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사설보호소가 생겨났지만 동물보호법의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실태파악이나 운영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애린원이 대표적인 사례죠. 제도권에 흡수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제대로 운영할 의무를 지울 뿐 아니라 정부가 행정, 예산 등의 지원을 해야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난 1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차 동물복지 종합계획(2020~2024년)’에는 유기동물을 감소시키고 재입양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동물보호소 관리방안으로 지자체 보호센터는 관리 인력 기준을 강화하고 마리당 예산을 지원하던 것을 센터별로 운영비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바꿀 계획을 발표했다. 사설보호소의 경우, 2022년까지 신고제를 도입하고, 장기적으로는 비영리단체·법인만 허가제로 보호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유 대표는 “개인이 아닌 단체가 허가제로 보호소를 운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국내 동물보호시스템 개선의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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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대책? 생각보다 단순해요” 지난 6개월여 동안 매일 버려진 개들의 사료와 물을 챙겼던 활동가들이 생각하는 유기견 대책은 뭘까? 2월5일 마지막 개체조사를 끝내고 둘러 앉았던 포천쉼터 활동가들이 서로를 보면서 빙긋이 웃었다. “인간이 나빠요. 개는 안나쁘죠.” 최정우 활동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죠. 그리고 돈 벌이로 안 보는 것.”

그는 개를 가족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개를 끝까지 책임 졌다면 유기견 보호소는 없었을 거란다. 애린원 사태도 인간의 이기심이 부른 일이라고 했다. “처음엔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겠죠. 그런데 개들이 돈 벌이가 된다는 걸 알면서 변질한것 같아요.”

유선미 팀장이 말을 이었다. “글쎄요. 제일 쉬운 건데.” 그의 답변은 너무 간단했다. “안 버리면 되죠!” 번식장, 펫숍 문제점을 이야기 하면서도 그가 제일 중요한 일로 꼽은 것은 ‘일단 안 버리는 것’이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권혜성 최영은 교육연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