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시 사설유기견 쉼터에 머물고 있는 그레이트 피레니즈 ‘레니’의 눈은 지난해 9월 애린원 철거 이후 계속된 활동가들의 관심으로 인해 생기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경기도 포천시 사설보호소 애린원이 철거된 지 150여일이 지났습니다. 구조된 1652마리의 개들이 옛 애린원 부지에 세운 ‘포천쉼터’에서 힘겨운 겨울을 견디고 있습니다.
애니멀피플은 지난 1월 중순부터 한달간 비글구조네트워크를 도와 포천쉼터의 개체를 조사해 1천여 마리 개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유기견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러졌던 이 개들도 제각각의 외모와 성격을 지닌 하나의 생명임을 기록했습니다. 이들 중 4마리 개들의 사연을 전합니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생후 2개월이 지난 강아지들의 입양, 임시보호를 적극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동물보호·친환경 패션업체 ‘그린블리스’, 환경·동물복지를 추구하는 패션문화잡지 ‘오보이’와 함께 네이버 해피빈에서 크라우드 펀딩도 진행합니다.
▶▶네이버 해피빈 펀딩 ‘1040마리의 개들을 돕는 따뜻한 제품’
입양을 기다리는 새 생명들은 비구협 인스타그램(
@aerin_adopt)과 네이버 카페(
cafe.naver.com/forlives/)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1일 오후 보은쉼터에 개들을 실은 트럭이 도착하자 활동가들의 발이 바빠졌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3톤 트럭의 뒷문이 열리자 층층이 쌓인 이동장이 드러났다. 화물칸은 조용했다. 도저히 몸무게가 10㎏ 이상 나가는 대형견이 15마리나 탔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개들은 짖거나 낑낑대지도 않고, 저마다 구석에 웅크려 있었다. 이층으로 쌓인 켄넬 사이사이, 방석과 사료, 간식이 들어찼다. 영락없는 이삿짐이었다.
2월1일 옛 애린원에서 구조된 대형견들이 새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국도변에서 그리 깊지 않은 외딴 길 끝에 있는 동물보호소였다. 개들은 경기도 포천에서 중부고속도로를 세 시간 남짓 달려 이곳 충북 보은까지 이동했다. 지치고 겁먹은 녀석들과 달리, 견사 앞 운동장에 나와 있던 너덧 마리의 개들은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새 식구를 향해 컹컹 짖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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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견 ‘쿠키’의 이사가던 날
낮 1시30분 선발대로 출발한 개들이 비글구조네트워크 ‘보은쉼터’에 도착했다. 애린원 구조견 대부분이 포천쉼터에서 지내는 것과는 달리, 이 대형견들은 공간이 부족한 탓에 근처 위탁처에서 지내던 터였다. 이날 이동할 개체 수는 모두 44마리로, 트럭 두 대에 나눠 타고 출발하기로 했다.
이사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됐다. 1일 오전 8시 경기도 포천시 한 위탁처에는 비글구조네트워크(이하 비구협) 포천쉼터 활동가들이 개들의 이동을 준비 중이었다. 위탁처는 이전에 축산농가로 사용됐던 곳으로 마을 깊숙한 곳에 있었다. 칸칸이 지어진 견사 내에 개들이 한 마리씩 들어가 있었다. 외부가 보이지 않아 안정적이긴 했지만, 좁고 어두운 데다 사람 만날 기회가 적어 보이는 곳이었다.
2월1일 오전 경기도 포천시에 위치한 위탁처에서 44마리 대형견들의 보은쉼터 이사가 시작됐다. 켄넬을 옮기고 있는 비글구조네트워크 활동가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두 명의 활동가가 개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켄넬로 옮기기 시작했다.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을 예감했던 걸까? 개들은 생각보다 순순히 켄넬 안으로 들어왔다. 유선미 포천쉼터 동물관리팀장도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얘들이 덩치는 큰데, 겁도 많아요.” 사람도 너끈히 들어갈 만큼 큰 켄넬들이 위탁처 마당 한구석에 차례로 늘어섰다.
트럭이 도착하자, 켄넬들은 짐칸에 이층으로 척척 실렸다. 개들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사람 손이 이끄는 대로 켄넬로 들어가 짐처럼 트럭에 실려도 조용히 몸을 낮출 뿐이었다. 애린원 철거 전 부지 맞은편에 있었던 생명존중사랑실천협의회(생존사) 쉼터에서 지냈던 개 ‘쿠키’도 이날 포천에서 새 쉼터로 가기로 했다. 쿠키는 그나마 사람이 익숙한지, 켄넬 앞 철창까지 나와 사람이 내민 손의 냄새를 맡았다.
큰 말썽 없이 30여 분만에 모두 승차가 이뤄졌다. 포천쉼터 활동가들은 개들이 무사히 탄 것을 확인하고, 보은으로 차를 출발시켰다. “기사님 잘 부탁드릴게요. 애들이 멀미할 수 있으니까 천천히 와주세요.” 유선미 팀장과 최원진 활동가가 탄 차 뒷좌석에는 포천쉼터에서 챙겨온 물품들로 꽉 차 있었다. 개들이 새 집에서 먹을 사료와 간식, 방석과 이불 등의 세간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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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 벽돌집, 개들의 새 보금자리
개들이 탄 트럭이 보호소 마당에 들어오자 쉼터가 부산스러워졌다. 화물칸 문이 열리고 개들의 이동장부터 땅으로 내려졌다. “어, 얘는 마돈나 새끼 아니야?” 미리 보은쉼터에서 기다리던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가 쿠키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활동가들은 대형견이란 이유로 여러 번 거처를 옮기고, 고생한 아이들이 낯익은 눈치였다.
1일 위탁처에서 보은쉼터로 이동한 개 ‘쿠키’. 쿠키는 생존사 쉼터 시절부터 활동가들과 지내온 개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보은쉼터 견사동은 1층에 14칸, 2층에 20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1층의 경우 내실과 외실, 운동장으로 공간이 구분돼 있어서 개들이 안 팎으로 오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개들은 여전히 깊숙이 몸을 낮추고 있었다. 여러 이동장 바닥이 토사물과 분뇨로 더럽혀져 있었다. 보은쉼터 마당에 다시 ‘켄넬 아파트’가 세워졌다. 먼저 도착해 있던 포천쉼터 활동가들이 진한 사인펜을 들고 켄넬을 하나씩 맡았다. 방 배정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개들의 암수와 중성화 여부, 체고와 몸무게 등을 표시해 견사 건물로 이동하기로 했다.
엉덩이라도 잘 들어주면 수월 하련만, 덩치도 큰 녀석들이 작업에 비협조적이었다. 잔뜩 겁을 먹고 웅크려 있어서 큰 켄넬 안으로 사람이 상반신을 넣어서야 개들의 성별 구분이 가능했다. “괜찮아, 괜찮아. 잠깐만 볼게.” 오랜 기간 사람과의 접촉이 없었던 애린원 아이들은 사람 손을 무서워했다. 질병 여부와 성별이 판별된 아이들부터 2층 견사로 옮겨졌다. 성인 두 명이 붙어야 겨우 들 수 있는 무게였다.
이사가 지치고 힘들었는지 켄넬 바닥에 낮게 엎드린 대형견.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보은쉼터는 200평 정도 되는 두 개의 건물로 이뤄져 있었다. 넓은 앞마당을 중심으로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이 개들이 주로 거주하는 견사동이었다. 견사는 1층에 14칸, 2층에 20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1층은 내실과 외실, 운동장으로 공간이 구분돼 있어서 개들이 안팎으로 오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침실과 거실이 있는 셈이었다.
보은쉼터 앞마당에 ‘켄넬 아파트’가 생겼다. 개들은 견사 입소전에 암수, 중성화 여부, 외상 여부 등을 검사받았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견사동 왼편 건물은 관리동이었다. 쉼터 사무실과 강당, 몸이 약한 개체와 병든 아이들을 따로 돌보는 병동 등이 있는 건물이다. 두 건물 모두 눈에 띄는 점은 옥상이 동물들이 산책할 수 있는 운동장으로 꾸며져 있다는 점이었다. 유영재 대표는 이곳이 과거 재단법인 한국동물보호협회가 사용하던 곳이라며 “한국동물보호협회가 당시 영국 동물학대방지협회(RSPCA)의 지원을 받던 곳이어서 그런지, 견사도 해외 보호소처럼 지어졌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는 재단법인 한국동물보호협회와 10년간 장기 임대계약을 맺고, 보은쉼터를 애린원 아이들의 ‘새 보금자리’로 만들 계획을 밝혔다. 포천쉼터는 옛 애린원 부지 위에 세워져 2021년 2월 말 임대계약이 종료된다. 애린원 터는 동물 사육이 불가한 임야지역인데다, 입지 또한 야산과 도로에 면해 있어 동물을 보호하기에 어려움이 많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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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반려견 ‘상근이’들의 비극
새 식구들이 2층으로 올라가자 견사가 개 짖는 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 개들은 텃세인지, 인사인지 펜스에 몰려나와 짖으면서 꼬리를 쳤다. 지난 1월19일 이곳에 먼저 입주한 대형견들이었다. 1차로 입주한 65마리를 포함해 이날 늘어난 44마리까지, 3월 현재 보은쉼터의 보호 개체 수는 모두 120여 마리 수준이다.
덩치로는 일등인 ‘순박이’도 먼저 들어온 개들 중 하나다. 순박이는 대형견 중에서도 초대형견인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이었다. 이날 개들의 두번째 이사에 맞춰 서울에서 봉사를 온 김미영씨는 애린원 철거 때부터 순박이를 알고 있었다고 했다. “저는 흰둥이라고 불러요. 보은에 자리 잡고 털도 찌고 많이 예뻐졌어요. 잘 지내는 거 보면 너무 뿌듯해요. 애린원 철거 때 상태 안 좋은 피레니즈들이 많았거든요.”
심각한 피부염과 열상 등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레니’.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지난해 9월 애린원 철거 당시 모두 여섯 마리의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이 구조됐다. 개들의 몰골은 충격적이었다. 길고 흰 털이 매력적인 그레이트 피레니즈들은 모두 심각한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듬성듬성한 털 아래로 빨갛게 부풀어 오른 피부가 그대로 드러났고,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말라 있었다. 오랜 기간 산책을 못 해 발톱은 길다 못해 구부러져 있었다.
포천쉼터 명물인 ‘레니’의 상태도 비슷했다. 전신 피부병으로 병원으로 이송된 레니의 몸무게는 35㎏에 불과했다. 그레이트 피레니즈는 평균 몸무게가 50~60㎏에 가까운 종이다. 치아도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결국 뽑아야 했다. 레니의 추정 나이는 7~8살 정도로, 일반 가정견이라면 노령견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당시의 레니는 한 발을 떼는 것도 힘겨워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은 2008년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에 같은 종의 개 ‘상근이’가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상근이는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해 인기를 끈 최초의 반려견이기도 했다. 인기는 곧 비극으로 바뀌었다. 상근이의 인기 덕에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에 대한 사람들의 입양이 늘었지만, 한국에서 키우기 힘든 이 초대형견들은 버려지기 시작했다.
레니는 포천쉼터 활동가와 봉사자들의 관심으로 다시 건강을 되찾았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지난 2월5일 포천쉼터 봉사자 김재은씨가 레니와 보호소 뒷마당을 산책하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구조 직후 처참한 모습을 기억하는 비구협 회원들은 레니의 회복을 적극 도왔다. 추위를 막을 큰 옷을 선물하고, 활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뒷 마당에 ‘전용 산책로’도 마련해줬다. 2월5일 포천쉼터 쉼터에서 만난 봉사자 김재은씨에게 레니는 특별한 개라고 했다. “그렇게 큰 개를 처음 봤어요. 처음에는 무서워서 가까이 못 갔는데 알고 보니 너무 순한 거예요.”
레니의 털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다시 자라났다. 퇴원 석 달 만에 레니의 털은 다시 희게 빛나게 시작했다. 산책을 더 하겠다며 주저앉아 활동가들을 애먹일 정도로 건강해졌다. 레니는 현재 해외입양을 추진중이다. 지난 3월1일 포천쉼터를 떠난 레니가 입양 준비를 위해 가정 임시보호를 갔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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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맘껏 짖고, 마음껏 낮잠 자렴”
지난 5일, 이사 한달 째를 맞는 대형견들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김병길 보은쉼터 소장에게 물었다. 김 소장은 “개체 수가 늘어나 개들이 조금 예민해져 있지만 대체로 잘 지낸다”고 전했다. 개들이 스트레스로 서로 싸우는 일을 줄이기 위해 개방된 견사 사이에 칸막이를 세우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대형견들을 보살피느라 더 어려운 점은 없냐는 질문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이제 개들 짖는 소리가 들리니까 안심이 돼요.” 그동안 주눅 들고 병들었던 개들이 활력을 되찾으면서 짖기도 하고, 말썽을 부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구석에 숨거나 침대 밑에 기어들어가 있던 애들이 이제 창틀에 발을 걸치고 바깥 구경도 하고, 사람에 대한 경계도 점차 풀고 다가오니까 아픈 게 줄어들었구나 생각하죠.”
낯선 곳이 불안한지 켄넬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 개들은 문을 열어 켄넬 채 견사에 들어갔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비글구조네트워크는 현재 포천쉼터 개들을 이주시킬 추가 견사 건축을 진행 중이다. 보은쉼터 1만평 부지 가운데 바로 사용이 가능한 땅에 대해 건축 신고를 내놓은 상태다. 유영재 대표는 “3월부터 100여개 견사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6월 말까지 완공을 목표로 견사가 지어지는 대로 위탁소의 73마리 개들과 포천쉼터의 개들이 6월 말까지 순차적으로 입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 대표는 지난 1월 이주계획을 발표하며 보은쉼터를 ‘미래의 땅’이라고 표현했다. “‘누가 해도 이전보다는 낫지 않겠어’라고들 말해요. 그런데 우리는 그 전보다 낫기 위해 개들을 구조한 게 아니거든요. 그동안 힘들었던 만큼 누구보다 행복한 아이들로 만들어주고 싶어요.” 유 대표가 개들에게 바라는 점도 김 소장과 똑같았다. “얘들아, 이제 맘껏 짖고, 마음대로 똥도 싸고, 게으르게 낮잠도 자거라. 싸움질 빼고는 다해도 된단다.”
보은/김지숙 기자, 권혜성 최영은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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