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1일 서울시 도봉구 ㄱ동물병원에서 퇴원하는 애용이.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경기도 포천시 사설보호소 애린원이 철거된 지 150여일이 지났습니다. 구조된 1652마리의 개들이 옛 애린원 부지에 세운 ‘포천쉼터’에서 힘겨운 겨울을 견디고 있습니다.
애니멀피플은 지난 1월 중순부터 한달간 비글구조네트워크를 도와 포천쉼터의 개체를 조사해 1천여 마리 개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유기견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러졌던 이 개들도 제각각의 외모와 성격을 지닌 하나의 생명임을 기록했습니다. 이들 중 4마리 개들의 사연을 전합니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생후 2개월이 지난 강아지들의 입양, 임시보호를 적극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동물보호·친환경 패션업체 ‘그린블리스’, 환경·동물복지를 추구하는 패션문화잡지 ‘오보이’와 함께 네이버 해피빈에서 크라우드 펀딩도 진행합니다.
▶▶네이버 해피빈 펀딩 ‘1040마리의 개들을 돕는 따뜻한 제품’
입양을 기다리는 새 생명들은 비구협 인스타그램(
@aerin_adopt)과 네이버 카페(
cafe.naver.com/forlives/)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포천쉼터에는 특이한 방이 있다. 한쪽 눈이 없는 개가 모여 있어 일명 ‘애꾸눈 방’이라고 불리는 견사다. 일반견사보다 조금 더 아늑한 노령견사동에 위치한 이 방에는 모두 9마리의 개들이 지내고 있다. 이 가운데 3마리가 한쪽 눈이 없다. 눈 건강이 좋지 못한 개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결국 안구를 적출한 경우다.
귀여운 새끼 세 마리를 낳은 ‘혜교’도 이 방 식구다. 안구질환이 급격히 악화돼 수술이 급했던 혜교는 젖먹이 세 마리를 데리고 병원 생활을 해야했다. 추정 나이는 겨우 2~3살이었지만, 녹내장과 백내장이 장기간 진행된 상태였다. 올망졸망한 새끼들은 모두 입양을 가고, 어미개 혜교는 지난해 12월 보호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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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꾸방’의 새 식구
2월21일 ‘애꾸눈 방’에 새 멤버가 정해졌다. 왼쪽 눈 적출수술을 받은 ‘애용이’다. 이날은 애용이가 두 달만에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이었다. 오후 4시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 유선미 동물관리팀장이 애용이를 데리러 서울 도봉구의 연계병원을 찾았다. 이날은 애용이를 포함해 두 마리의 개가 퇴원해 포천쉼터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같은 방 개에게 물려서 처음 병원을 찾은 애용이는 녹내장이 악화되어 안구적출수술을 받아야 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복슬복슬한 흰털과 옅은 흑갈색 무늬가 매력적인 애용이는 오랜만에 활동가 품에 폭 안겼다. 큰 수술을 받고 사람 손이 무서울 법도 한데 순하고 얌전했다. 영리해보이는 오른쪽 눈과 다르게 왼쪽 눈 자리는 푹 꺼져 있었다. 듬성듬성 자라나기 시작한 털 아래 새 살이 차오르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애용이는 원래 교상(咬傷·물려서 생긴 상처)으로 처음 병원을 찾았다. 지난해 12월 같은 견사에서 지내던 다른 개에게 물려 병원에 입원했다. 기본적인 검사를 진행하던 중 심장사상충 감염을 발견했다. 눈 상태도 좋지 않았다. 물린 상처 치료가 마무리될 쯤, 안약을 처방받고 퇴원했지만 다시 내원했을 때 눈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녹내장으로 추정됐다.
애용이를 치료했던 ㄱ병원 이이철 원장은 안구 적출을 결정했다. “안압이 높을 경우 개들이 엄청난 통증을 느껴요. 눈을 적출하면 사람보기에는 조금 안좋을지 모르겠지만 개의 입장에서는 살려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죠. 녹내장은 매일 안약을 넣어야 하고, 평생 관리가 필요한 병인데 보호소에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 이 원장은 눈 적출수술이 불가피했음을 자세히 설명했다.
“녹내장의 정확한 발병 원인은 불명이에요.” 이 원장은 딱히 보호소 환경이 열악하다거나 노령견이라서 녹내장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다만, 기본접종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지냈던 애린원 구조견들 중에는 이렇게 병원에 와서야 질병을 발견하는 일이 잦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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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쓸 수 없었던 30cm 종양
애린원 시절, 개체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25일 애린원이 철거되며 공개된 개들의 상태는 충격적이었다. 피부병으로 털이 남아 있지 않은 개, 곪은 눈에서 나온 짓물로 눈도 못 뜨는 개, 슬개골 탈구가 너무 진행돼 더이상 걸을 수 없는 개들이 여럿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혜교’.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옛 애린원에서 구조된 개 33마리를 진료한 이이철 원장은 커다란 종양을 달고 왔던 개가 떠오른다고 했다. 애린원 해체 이틀 뒤인 9월27일 내원한 ‘작은 아이’였다. 작은 아이는 배변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병원에 온 케이스였다. 엉킬대로 엉킨 털들을 밀어놓고 보니, 엉덩이 쪽에 지름 30㎝가 넘는 종양이 있었다. 항문이 좁아져 배변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의사인 저도 처음 보는 크기의 종양이었어요.” 그가 내린 진단은 ‘비만세포종’(Mast Cell Tumor)이었다. 비만세포종은 개의 종양 중 20%를 차지하는 병으로, 발견이 빠르면 예후가 좋은 편이다. 보통은 지름 3㎝ 정도의 종양을 제거하고 먹는 약으로 치료하는데 작은 아이의 경우는 이미 종양이 커질대로 커진 상태였다. 충남대 부속 동물병원으로 이관됐지만 결국 세상을 등졌다.
애용이를 포함해 옛 애린원에서 구조된 개 33마리를 치료한 ㄱ동물병원 이이철 수의사가 개들의 진료과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지난 2월15일 발표된 ‘애린원 구조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애린원 구조 뒤 극심한 질병으로 죽은 개체 수는 36마리였다. 구조 뒤 폐사한 92마리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수치였다. 26마리는 동물병원으로 옮겨 적극치료 했으나 사망했다. 2마리는 항암치료까지 받았지만 더이상 손 쓸 방도가 없어 안락사했다.
포천쉼터는 지난 5개월 동안 아픈 개체를 모두 서너 곳의 연계병원에서 치료해 왔다. 질병의 종류나 심각성에 따라, 각기 다른 병원으로 이송한다. 물린 상처와 같이 급한 처치가 필요한 경우는 가까운 경기도 포천시의 ㄴ동물병원으로 간다. 입원 해서 병의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경우에는 서울시 도봉구의 ㄱ동물병원, 이곳에서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심각한 질병의 경우엔 충남대학교 부속 동물병원으로 보내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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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이름이 생긴 이유
치료 뒤 퇴원한 개들은 포천쉼터로 돌아와 일정기간 산모병동에서 지내며 회복기간을 갖는다. 현재 포천쉼터 1000여 마리 개들 가운데 90마리가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출산견을 제외한 절반 정도가 치료가 필요한 개들이다. 이름 없는 일반견사 개들과는 다르게 이 개들은 별명 혹은 이름이 있었다.
동물병원에 가면 작성해야 하는 진료차트 때문이다. “병원에 한 번이라도 다녀온 애들은 이름이 생겨요.” 유선미 팀장은 애린원 해체 뒤 구조된 1600여 마리 개들 중에 제일 먼저 이름을 얻은 개들은 이렇게 필요에 의해 이름이 붙여졌다고 했다.
병원 진료 받으러 간 슈나.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얘 이름은 스피나예요. 스치기만 해도 피가 난다고 해서.” 2월4일 오전 병동관리를 시작한 유 팀장이 한 강아지를 가리켰다. 원래는 하얀 털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되는 믹스견이 잔뜩 겁먹은 채 케이지 구석으로 몸을 웅크렸다. 배변 패드를 갈아주는 유 팀장의 손을 피해 멀찍이 앉은 것이다. 아픈 아이들은 사람을 경계했다.
‘슈나’도 그런 개들 중 하나였다. 지난해 10월 심한 염증과 빈혈, 혈변으로 ㄱ병원을 찾았던 슈나는 초음파 촬영때 뱃속에서 구조물이 발견됐다. 연계병원은 큰 병원으로의 이관을 권유했다. 대학병원 씨티(CT)검사에서 악성종양으로 판명이 났다. 암은 이미 복부 림프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8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조심스럽게 안락사 의견도 나왔지만, 대학병원에서는 호스피스와 항암치료를 이야기 했다. 다행인 건 아직 슈나에게 식욕이 있고, 폐까지 전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미 종양으로 떠나보낸 애린원 개들이 여럿이었다. ‘이런 아이는 살려야 하지 않을까요’. 카페 글에 치료비가 모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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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이는 살려야 하지 않을까요”
포천쉼터에 있던 슈나는 지난해 12월 항암치료를 위해 비구협 논산쉼터로 거주를 옮겼다. 장에 있던 종양을 떼어내고 먹는 항암약을 복용하며, 2주에 한 번씩 충남대 병원에 내원하기로 했다. 다른 아픈 개들과 같이 슈나도 사람에게 곁을 안주는 개였다. 넥카라를 풀어주려고만 해도 물려고 했다. 그랬던 슈나가 논산쉼터 생활 일주일만에 마음을 풀고 사람에게 다가왔다.
협소한 견사 탓에 스트레스가 높은 포천쉼터 개들은 종종 서로를 물고 싸워 큰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지난 1월22일 활동가가 구견사 내에서 난 다툼으로 다친 개체를 살펴보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새 보호자가 된 이민순 논산쉼터 소장은 그냥 기다렸다고 했다. “슈나가 있는 격리실에 들어가서 그냥 매일 한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아무것도 안하고 옆에만 있어 줬는데 시간이 지나니 슬슬 다가오더라구요. 조금씩 경계를 풀더니, 무릎 위에 안고, 이제는 제 품에 안겨서 진료 보러 가요.”
항암에도 잘 적응해갔다. 개의 항암치료도 털이 빠지고 구토·설사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지만 슈나는 항암 3개월만에 외려 몸무게가 8㎏로 늘어났다. 슈나의 처음 몸무게는 4.5~5㎏정도였다. 혼자서 병원 소파에 뛰어오를 정도로 활력도 좋아졌다. 2월25일 충남대 동물병원을 찾은 슈나와 이 소장은 내원 횟수를 한달에 한 번으로 줄여도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충남대 동물병원 최서인 수의사는 “현재 상태는 경구항암약으로 종양이 추가로 혈관으로 퍼지는 걸 막아주고 있다. 다행히 약에 대한 부작용이 없어 긍정적이긴 하지만 추후에도 조심스럽게 지켜봐야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런 보호소 내 적극치료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지난 2월 동물자유연대가 발표한 ‘유기동물 고통사 방지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전국 222개 지자체 보호소에서 자연사한 동물 10만 마리 가운데 약 3분의 1이(2천7백여 마리) 병으로 폐사했다. 각종 전염성 질환과 외상에 대한 치료를 제공한다는 보호소의 수도 절반이 되지 않았다. 동물자유연대는 보고서를 통해 “유기동물들이 보호소 입소 전 혹은 입소 후에 발병한 질병이나 외상을 적절히 치료받지 못한 채 폐사한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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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써보지 못한 생명들을 생각한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동물들에게 적극치료를 제공한 대신 현실적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 ‘애린원 구조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애린원 해체 뒤 동물병원에서 치료받은 동물은 모두 327마리로, 총 1억2천여 만원의 비용이 치료비로 들어갔다. 총 구조비(약 6억원) 가운데 상당 부분이 동물의 치료에 쓰인 것이다.
지난 1월22일 견사 내 개들간의 싸움으로 다친 한 마리가 병원 이동을 기다리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지난달 25일 유영재 비구협 대표는 포천쉼터의 재정상황을 알리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현재 지급 못한 병원비가 약 2천5백만원이다. 곧 있을 5차 병원비 결산을 합치면 이달 안에 지급해야 할 병원비만 5천3백여 만원이 된다”고 알렸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그럼에도 슈나의 치료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지금 상황에서 어쩌면 사치인지도 모르죠.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은 애들을 치료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애린원에서 구조한 애들 중 이미 온몸에 종양이 퍼져서 살리지 못한 애들이 너무 많았어요. 손도 써보지 못하고 보낸 생명들을 생각하면, 적어도 슈나에게는 기회라도 한번 줘봐야 하지 않을까요.”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최영은 권혜성 교육연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