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배우 킴 베이싱어가 지난 7월12일 동물해방물결 등 40여개 단체가 연 2019 복날추모행동에 참석해 개도살 금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동물해방물결
말, 송아지, 달팽이와 개의 차이 제대로 된 나라에선 개고기 식용이 야만 취급을 받은 지는 꽤 오래됐다. 어느 분이 해외여행에서 겪은 일이다. 외국인들과 채식주의 이야기를 하던 중 프랑스 여자아이가 이런 질문을 했단다. ‘한국에서는 개고기를 먹지 않니?’ 그 말을 들은 동료들이 경악하는 표정으로 한국인들을 바라봤단다. 문화에 위아래가 없다고 믿는 그분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프랑스에선 말고기를 먹고, 송아지와 달팽이를 먹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랬다고 해서 그 외국인들이 자신들이 잘못 생각했다고 사과하고, 한국의 개식용 문화를 존중해 줄까? 절대 아니다. 뭘 먹는지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데, 개가 반려동물로 확고히 자리잡은 데 비해 말, 송아지, 달팽이는 그런 위치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달팽이를 키우는 집이 많아진다면, 달팽이 식용금지를 외치는 목소리도 커지지 않겠는가? 중요한 사실은 외국에서 한국의 개식용에 대해 아는 이가 많고, 그것 때문에 한국이 야만국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일로 왔으면 좋았을 킴 베이싱어 누님이 개식용 반대를 외치는 모습을 보니 개를 안 먹는 나까지 부끄러워진다. _______
개 식용 반대 시위 옆에서 시식 행사 참 희한한 사실은 킴 베이싱어가 개식용 반대를 외칠 때, 바로 옆에서 개식용 업자들이 개고기 시식행사를 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개고기가 우리 전통이며, 지금도 100만 국민이 개고기를 먹고 있고, 축산법상으로도 개가 가축이라고 주장하며 개고기를 먹었다. 참 신기하다.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이라면 따로 집회를 열면 되지, 왜 킴 베이싱어 행사에 나타나서 재를 뿌리려는 것일까?
지난 7월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식용개 사육 농민들이 개고기를 먹고 있다. 연합뉴스
“말, 돼지, 소는 왜 먹냐”는 말 이 여자분한테 그 남자를 이해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이 여성에게 개는 반려동물이지 식용동물이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도 댓글을 보면 “그러는 님은 닭, 돼지, 소 안 먹냐?”라며 윽박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닭, 돼지, 소가 무슨 만능 치트키도 아니고, 왜 반려동물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 이 동물들을 동원해 개고기를 합리화하려는 것일까?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개고기는 사양산업이며, 오래지 않아 개고기를 먹었다는 건 야만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동물자유연대와 동물권행동 단체 ‘카라’에 따르면 개고기를 요즘도 먹는 사람의 비율은 불과 13.0%에 불과했단다. 주목할 점은 다음이다. 개고기를 먹은 이들 중 74%가 주변의 권유 또는 강요에 의해 개고기를 먹었다는 것이다. 그냥 개 먹는 이들끼리 모여서 먹고 말지, 왜 안 먹는 사람까지 동원해 야만의 풍습을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_______
왜 그리 개 식용에 집착하는가 언젠가 이런 댓글을 봤다. ‘개식용은 어차피 사라질 건데 그냥 지켜보면 되지, 왜 난리를 치냐?’ 그분들은 13%에 불과한 개 식용자들 때문에 한국이 야만국가의 오명을 뒤집어쓰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까? 우리보다 먹을 게 훨씬 없는 나라들도 다 대오각성해 개를 안먹기로 했다는데, 우리는 왜 그리 개 식용에 집착하는가? 그분들에게 이렇게 반문하련다. 어차피 없어질 건데, 조금 일찍 없애면 안 되겠니? 킴 베이싱어 누님의 소원 좀 들어 드리자꾸나. “가까운 시일 내에 ‘식용 개 거래 금지’를 축하하기 위해 다시 한국에 오고 싶다.”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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