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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개가 아프다고 하면 진짜 아픈 것이다

등록 2019-05-29 13:18수정 2019-05-29 14:23

[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개가 아파하거나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면, 그건 고통이 어마어마하다는 의미다. 평상시 개를 잘 관찰하고 그 녀석이 혹시 아프다는 신호를 보낸다면 바로 병원에 데려가자. 게티이미지뱅크
개가 아파하거나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면, 그건 고통이 어마어마하다는 의미다. 평상시 개를 잘 관찰하고 그 녀석이 혹시 아프다는 신호를 보낸다면 바로 병원에 데려가자. 게티이미지뱅크
은곰이는 15개월 된 페키니즈다(사진 1). 태어날 때부터 욕심이 많아, 젖이 가장 잘 나오는 젖꼭지는 항상 은곰이가 독점했다. 같이 태어난 은곰의 동생이 그 젖꼭지를 탐내면 은곰은 동생을 응징하곤 했다. 우리 집에 온 뒤에도 그 성질은 죽지 않아, 먹는 문제로 자기보다 몸집이 큰 언니, 오빠들에게 달려든 적도 여러 번이다.

은곰은 노는 것도 좋아해서 공을 던지면 누구보다 씩씩하게 달려나가 공을 물어오곤 했다. 하지만 은곰이는 오래 놀지 못했다. 어느 정도 놀고 나면 앞다리를 절었다. 매번 그러니 걱정이 돼서 엑스레이를 찍어 봤는데, 진단은 주관절 탈구. 앞다리를 이루는 뼈들이 붙어서 관절을 이루지 못하고 어긋나 있다는 것이다.(사진 2)

사진 1. 은곰이는 노는 것을 좋아해 공을 던지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공을 물어오곤 했다.
사진 1. 은곰이는 노는 것을 좋아해 공을 던지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공을 물어오곤 했다.
은곰이의 앞다리. 앞다리를 이루는 뼈들이 붙어서 관절을 이루지 못하고 어긋나 있다.
은곰이의 앞다리. 앞다리를 이루는 뼈들이 붙어서 관절을 이루지 못하고 어긋나 있다.
은곰이가 안짱다리였던 것도, 다리를 아파한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사진을 보니 심란했다. 어떻게 저런 상태로 공놀이를 했을까? 아프면 아프다고 하면 될 텐데, 개로서 해야 할 직분에 충실했던 은곰이는 통증을 참아가며 우사인 볼트처럼 달렸던 거였다.

이대로 놔두면 안 될 것 같아 의사를 수소문했다. 부천에 있는 병원이 이 분야에서 뛰어나단 얘기를 듣고 그리로 은곰이를 데려갔다. 선생님은 은곰의 사진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총체적 난국이네요.”

_______
“이 수술만 받으면…”하고 말해주고 싶었다

선생님과 상의해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은 은곰에게 큰 스트레스일 것이다. 게다가 수술을 하고 나면 산책이나 공놀이를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좁은 케이지 안에서 두 달 이상을 더 살아야 한다. 그게 안스러워, 아내와 나는 은곰에게 각별히 더 잘해줬다. 수술 전날에는 은곰을 위한 성찬을 마련해 줬다. 이게 웬 떡이냐며 맛있게 먹는 은곰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팠다. 아내가 말했다. “은곰이는 자신의 운명을 모르고 있어.”

개가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은 이 대목이다. 개와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면 난 은곰이에게 수술을 받아야 하는 이유와 수술 후 겪게 될 불편함에 관해 이야기해줬을 것이다. “수술만 받으면 은곰이는 아무리 달려도 다리가 안 아플 거야. 그러니 조금만 참아 줘.” 안타깝게도 은곰은 이 사실을 모른 채 병원으로 갔다.

아내가 여섯 마리 강아지 중 자기만 차에 태웠을 때, 은곰은 의기양양했을지도 모른다. ‘봐, 엄마는 나만 예뻐한다고.’ 하지만 수술장에 끌려들어 갔을 때 비로소 은곰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선생님은 수술 후 케이지에 있는 은곰의 동영상을 보내주셨다. 줄을 주렁주렁 단 채 엎드려 있는 은곰의 표정은, 내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화가 나 보였다. 자신이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니,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사진 3. 뽀삐. 뽀삐는 은곰보다 훨씬 더 심한 탈구였고, 그로 인한 통증도 더 심했을 것이다.
사진 3. 뽀삐. 뽀삐는 은곰보다 훨씬 더 심한 탈구였고, 그로 인한 통증도 더 심했을 것이다.
어쩌면 은곰은 우리 부부가 자신을 버렸다고 착각할 수도 있는데, 이 생각을 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정작 아내와 나는 은곰이가 없어지니 집안이 텅 빈 것 같다며, 은곰이 돌아올 날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은곰이를 수술시키고 나자 뽀삐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뽀삐는 아내가 결혼 전부터 키우던, 그러니까 아내와 나를 결혼하게 만들어 준 페키니즈 강아지였다. 뽀삐는 노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늘 웅크리고 앉은 채 아무것도 안하는 것은 뽀삐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결혼 직후 난 우리 부부가 집에 없을 때 뽀삐가 심심할까 봐 예삐를 데려왔다. 뽀삐와 달리 예삐는 놀기를 좋아하는 개였다. 개는 개끼리 놀아야 더 재미있는 법인데, 안타깝게도 뽀삐는 놀기를 싫어해 예삐에게 전혀 호응해주지 않았고, 놀자고 칭얼대는 예삐에게 화를 내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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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기 싫어하는 이유가 있었다

예삐는 할 수 없이 우리에게 왔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다. 난 가끔씩 뽀삐를 나무랐다. “넌 왜 동생과 놀아주지 않니? 뽀삐는 나쁜 아이구나.” 움직이진 않으면서 식탐은 많았기에, 뽀삐는 살만 쪘다. 수의사 선생님은 뽀삐가 뒷다리가 안좋다면서, 살을 빼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걱정스럽게 얘기하곤 했다.

하지만 뽀삐의 진짜 문제는 앞다리였다. 은곰이에 대한 설명을 수의사 선생님한테서 들으면서, 난 오래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뽀삐를 떠올렸다. 은곰이가 그런 것처럼 뽀삐도 심한 안짱다리였으니까(그림 3). 은곰보다 더 휘어있는 앞다리로 추측해 보건대, 뽀삐는 은곰보다 훨씬 더 심한 탈구였고, 그로 인한 통증도 더 심했을 것이다. 뽀삐가 움직이려 하지 않았던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개는 말을 하지 못하며 참을성도 웬만한 아이들보다 뛰어나다. 게티이미지뱅크
개는 말을 하지 못하며 참을성도 웬만한 아이들보다 뛰어나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도 우리는 뽀삐를 데리고 수시로 산책을 나갔고, 뽀삐는 그때마다 우리를 따라 뒤뚱뒤뚱 걸어야 했다. 그 산책길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 개를 괴롭혀놓고 난 ‘개산책을 자주 시켜주는 좋은 견주’ 코스프레를 했던 것인데, 여기에 더해 예삐와 놀지 않는다고 야단까지 쳤으니 뽀삐는 더 억울했을 것이다. 이제라도 하늘나라에 있는 뽀삐에게 깊이 사죄드린다.

개는 말을 하지 못하며 참을성도 웬만한 아이들보다 뛰어나다. 탈구인 은곰이가 아픔을 참아가며 공놀이를 했던 것도 여기서 연유한다. 그런데 개가 아파하거나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면, 그건 고통이 어마어마하다는 의미다. 평상시 개를 잘 관찰하고 그 녀석이 혹시 아프다는 신호를 보낸다면 바로 병원에 데려가자. 말 못하는 동물과 살려면, 그러면서 그 동물로부터 기쁨을 느끼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지 않겠는가?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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