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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이 순간에도 유기견은 넘쳐난다

등록 2019-01-29 09:54수정 2019-01-29 10:11

[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구조한 뒤 왜 안락사를 하느냐"고 비난하면 해결될까
보호소에서 일정 기간 동안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키는 건 그들이 잔인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클립아트코리아
보호소에서 일정 기간 동안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키는 건 그들이 잔인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클립아트코리아
한 유기견보호소를 후원한 적이 있다. 나이 든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그 보호소엔 120마리 정도 되는 개들이 살았다. 할아버지는 개를 사랑했다. 지나친 개 사랑에 지친 가족들이 모두 할아버지 곁을 떠난 터라, 할아버지는 혼자서 그 개들을 돌봐야 했다.

문제는 할아버지의 벌이가 많지 않다는 것, 생활보호대상자였던 할아버지의 수입은 국가에서 나오는 보조금이 고작이었다. 할아버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몇몇 분들이 후원을 해주셨지만, 개들의 삶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간식은 고사하고 사료를 배불리 먹이는 것도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쩌다 간식이라도 사가면, 서로 먹겠다고 난리를 치던 녀석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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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맡기는 이들이 나타났다

더 안타까운 것은 다음이었다. 할아버지에게 개를 맡기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정상 개를 더 이상 키울 수가 없으니 할아버지가 좀 맡아 주시면 좋겠다, 그 대신 매달 사료값이라도 보내겠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분들 중 단 돈 얼마라도 보내는 이는 없었다. 심지어 보호소 앞에 개를 묶어두고 도망가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이들을 외면하지 못했기에, 그가 감당해야 할 개들은 갈수록 늘어났다.

그 개들 중 페키니즈가 한 마리 있었다. 내가 페키니즈를 키우는지라 그 개가 특히 더 안쓰러웠다. 아내와 상의를 해서 그 페키니즈를 지인에게 입양시키기로 했다.

유기견 한 마리를 구조했지만, 이건 태평양에서 물 한 그릇을 퍼내는 차원이었다. 유기견 한 마리가 빠져나간 그 보호소엔 훨씬 더 많은 개들이 들어왔으니 말이다. 클립아트코리아
유기견 한 마리를 구조했지만, 이건 태평양에서 물 한 그릇을 퍼내는 차원이었다. 유기견 한 마리가 빠져나간 그 보호소엔 훨씬 더 많은 개들이 들어왔으니 말이다. 클립아트코리아
그 개를 차에 태우고 가는데, 녀석에게선 냄새가 아주 많이 났다. 동물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가 이렇게 말한다. “다른 곳은 다 괜찮은데, 옴진드기가 있네요.” 옴진드기는 진드기의 일종으로, 피부에 굴을 파서 기생하며 심한 가려움증을 일으킨다. 전염력이 높아 사람에게 감염되는 것도 가능한데, 그 녀석에게 옴진드기가 있었다는 얘기는 보호소 개들 중 상당수가 감염됐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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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울 능력만큼만 구조해라?

혹시 우리집 개들에게 옮을까봐 병원에 입원시킨 채 치료를 했고, 치료비를 대기 위해 아내는 가지고 있던 가방을 팔아야 했다. 치료가 끝난 뒤 우리는 지인에게 그 개를 양도했다. 그 지인은 페키니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다행히 우리가 맡긴 녀석과 잘 논다고 했다. 선뜻 유기견을 받아준 지인이 고마워서 우리는 사료값조로 매달 얼마씩의 돈을 보냈다. 이것이 내가 했던, 드물게 좋은 일이었다.

구조할 개는 많고 수용시설은 부족하다면 남은 방법은, 안타깝지만, 입양 안되는 개를 안락사시키는 게 현재로선 유일하다. 클립아트코리아
구조할 개는 많고 수용시설은 부족하다면 남은 방법은, 안타깝지만, 입양 안되는 개를 안락사시키는 게 현재로선 유일하다. 클립아트코리아
이렇게 유기견 한 마리를 구조했지만, 이건 태평양에서 물 한 그릇을 퍼내는 차원이었다. 유기견 한 마리가 빠져나간 그 보호소엔 훨씬 더 많은 개들이 들어왔으니 말이다.

자기 능력만큼의 개만 키우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는 원칙론에 불과할 뿐, 보호소를 운영하는 분들은 자기에게 온 개를 뿌리치지 못한다. 당연히 보호소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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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법은 뭐가 있을까

내가 후원하는 단체인 ‘케어’도 다르지 않다. 케어의 보호소에는 600여마리의 개가 있다. 케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수치다. 사람들은 연간 후원금 20억원을 얘기하지만, 개들에게 들어가는 기본 경비와 치료비, 직원들의 인건비를 감안하면, 그 돈은 언제나 모자란다.

그럼에도 구조할 개들은 끝없이 생겨난다. 2018년만 해도 소위 ‘하남 개지옥’에서 구조한 개들이 수십마리에 달했다. 그 개들을 치료한 뒤 입양시키는 게 케어의 목표지만, 우리나라의 유기견 입양률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이번 사태가 박소연 케어 대표를 비난하는 것만으로 끝난다면, 유기견 지옥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번 사태가 박소연 케어 대표를 비난하는 것만으로 끝난다면, 유기견 지옥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구조할 개는 많고 수용시설은 부족하다면 남은 방법은, 안타깝지만, 입양 안되는 개를 안락사시키는 게 현재로선 유일하다. 통계에 의하면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보호센터는 293곳이 있는데, 거기서 수용할 수 있는 개의 숫자는 2만여 마리에 불과하다.

반면 버려지는 개의 숫자는 적게 잡아도 10만 마리를 넘는다. 보호소에서 일정 기간 동안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키는 건 그들이 잔인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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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죽게 놔두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케어에서 안락사를 시킨다는 뉴스가 보도된 후 후원을 중단한 분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말한다. “내가 낸 후원금으로 사료를 산 것이 아니라 안락사할 약을 샀다니 참을 수 없다.” “몇 년간 후원했던 것이 안락사에 동참한 것 같아서 가슴 아프다.”

물론 케어 쪽이 ‘안락사 없는 동물권 단체’를 표방하며 후원자들을 끌어모은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케어가 가능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이번 일로 인해 후원금이 줄어들면 케어가 돌보던 개들 중 상당수가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든, 야생으로 내몰리든 간에 말이다. 혹자는 말한다. “구조해서 죽일 거면, 그냥 죽게 놔두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느냐?”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구조된 뒤 입양될 기회를 한번 더 갖는 것이 학대받다 죽는 것보단 더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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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이 끝없이 나오고 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한 바 있지만, 케어 사태의 진짜 문제는 유기견이 끝없이 나온다는 점이다. 소위 개농장에선 개들이 쉼 없이 찍혀 나오고, 그 개들은 펫샵을 통해서 아주 싼값에 팔린다.

사람들은, 편의점에서 껌 한통을 사듯, 충동적으로 개를 사고, 개가 아프거나 개에게 싫증이 나면 개를 버린다. 연간 유기견 10만마리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왜 케어는 안락사를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비난에 불과하다.

그 분노의 일부를 개농장으로 돌리자. ‘그들도 엄연히 직업인데’라며 개 농장 주인들을 옹호하는 대신, 그들이 커다란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임을 직시하자. 그리고 아무나 개를 키울 수 있는 작금의 풍토도 개선하자. 이번 사태가 박소연 케어 대표를 비난하는 것만으로 끝난다면, 유기견 지옥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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