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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개는 그렇게 산다

등록 2020-06-30 13:45수정 2020-06-30 14:10

[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개의 반경은 산책 코스가 전부지만 개는 그 산책이 매번 신기하다. 시시해 보이는 공놀이도 마찬가지. 1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신이 나서 달려가는 건 변함이 없다. 개는 지겨워하지 않는다. 사람은 직선의 세상을 살지만, 동물들은 원의 세계를 살고 있다.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산다. 그래서 행복하다
개들은 똥을 창피해하지 않고,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산다. 그들은 사람과 달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개들은 똥을 창피해하지 않고,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산다. 그들은 사람과 달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막 태어난 아이는 세상이 신기하다. ‘이 사람은 누군데 날 보고 웃지? 아무튼, 좋은 사람 같아.’ ‘저 사람은 얼굴은 좀 무섭게 생겼지만, 내 관심을 구걸하는 것 같아. 엣다, 관심.’

시간이 가면서 아이는 걸을 수 있게 되고, 행동반경이 넓어진다. ‘와, 세상은 정말 신기하구나! 네 바퀴로 가는 뭔가가 쌩쌩 달려. 근데 겁나 빨라!’ 곧 아이는 학교에 가고, 또래 아이들을 만난다. “서민, 너는 눈이 참 작구나. 그 눈으로 사물이 보여?” “응, 시야가 좁아서 불편하긴 하지만, 보이긴 잘 보여.”

새로운 경험이 축적될수록 아이는 이전에 갖고 놀던 게 시시해진다. 게임기 하나로 몇 날 며칠을 보내던 아이는 컴퓨터게임을 접하면서 게임기를 구석에 처박아 놓고, 학교에서 세계와 우주에 대해 배우면서 자신이 사는 동네가 더는 신기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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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의 산책이 새롭다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 아이, 아니 어른에게 이제 새로운 건 없다. “올해에는 키가 크고 훈남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새해 소원을 빌던 아이는, 이제 해가 바뀌어도 소원을 빌지 않는다.

엄마: 아들, 올해 소원은 뭐야?
아들: 소원 빌면 뭐해요. 이루어지지도 않을 건데.
엄마: 그래도 사람은 계획이 있어야지. 담배 끊는 건 어때?
아들: 아이, 귀찮게. 알았어요. 전자담배로 바꿀게요.

나이가 더 들면, 웬만한 자극에는 꿈쩍도 하지 않게 된다. “야, 너 그거 알아? 연예인 누구랑 누구가 사귄대.” “그래서 뭐?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놀랄만한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는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인간의 삶이 나이가 들수록 재미없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와! 즐거운 공놀이다! 어디 한번 신나게 놀아볼까?’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도, 공을 던져줄 때 개들이 신이 나서 달려가는 건 변함이 없다.
‘와! 즐거운 공놀이다! 어디 한번 신나게 놀아볼까?’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도, 공을 던져줄 때 개들이 신이 나서 달려가는 건 변함이 없다.

막 태어난 개는 세상이 신기하다. ‘날 핥아주는 걸 보니 좋은 개 같군. 나도 친절하게 해야겠다.’ 석달이 지났을 때 그 개는 다른 곳으로 입양된다. ‘엄마! 왜 우리가 헤어져야 해요? 흑흑.’ 하지만 이 슬픔은 곧 사라진다. ‘이 사람이 날 보고 웃는 걸 보면, 좋은 사람 같아.’ ‘저 사람은 날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가까이 가지 말아야지.’

시간이 지나면서 개는 잘 달릴 수 있게 되지만, 행동반경은 그리 넓어지지 않는다. 주로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견주가 내킬 때 바깥으로 산책을 나가니 말이다. 첫 산책은 개에게 충격이다. ‘와, 세상이 이렇게 넓다니! 신기한 게 정말 많구나! 고마워요, 주인님. 멍멍.’ 다음 산책을 갈 때도 개는 이런 생각을 한다. ‘와, 세상이 이렇게 넓다니!’

그 사람 다음 산책도, 그 다음다음 산책도 마찬가지다. 산책 코스는 늘 같지만, 개는 그 산책이 매번 신기하고 즐겁다. ‘조금 더 가면 비둘기떼가 있지. 비둘기를 놀래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뛰는구나. 하하하.’ 산책을 마치고 집에 갈 때면 개는 생각한다. ‘산책이 끝나면 꼭 간식을 줬으니, 오늘도 주겠지? 벌써부터 군침이 도는 걸? 하하하.’

장난감 놀이도 마찬가지다. 내가 기르는 개들은 어려서부터 테니스공을 그렇게 좋아했다. 공을 던지면 성큼성큼 달려가서 공을 물어온다. ‘와, 공놀이 너무 재미있어요. 또 던져주세요!’ 그렇게 공놀이를 하고, 시원한 물을 마시고 나면 피로가 찾아온다. ‘아, 오늘 재미있게 놀았다. 이제 잠이나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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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원의 세상을 살아간다

다음날이 되면 개들은 날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오늘도 공놀이 시켜주면 좋은데, 아빠가 바쁜가봐.’ 안되겠다 싶어 공을 꺼내러 가면, 개들은 좋아서 춤을 춘다. ‘와! 즐거운 공놀이다! 어디 한번 신나게 놀아볼까?’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도, 공을 던져줄 때 개들이 신이 나서 달려가는 건 변함이 없다. 사람 같으면 ‘이제 공놀이는 시시해’라고 했을 텐데, 개들에겐 익숙함에서 오는 지겨움이 없는 듯하다.

개를 키우는 게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훨씬 쉬운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사람보다 훨씬 약하니 말이다. 개들도 지능이 꽤 높을텐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개들에겐 익숙함에서 오는 지겨움이 없는 듯하다. 개를 키우는 게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훨씬 쉬운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개들에겐 익숙함에서 오는 지겨움이 없는 듯하다. 개를 키우는 게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훨씬 쉬운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해답을 던져주니 말이다. <책은 도끼다>에서 박웅현 작가는 밀란 쿤데라가 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예로 들며, 여기에 관해 설명해 준다.

먼저 쿤데라의 책에 나오는, 카레닌(개 이름)에 관한 구절이다. “카레닌에게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은 순수한 행복이었다. 그는 천진난만하게도 아직도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진심으로 이에 즐거워했다.”

박웅현의 말이다. “개들을 보면 정말 그렇지 않나요? ‘어머나, 또 아침이네, 일어났더니 또 밥을 주네. 피곤한데 자야지. 앗! 또 아침이잖아. 우와, 그리고 또 밥을 줘’의 연속이지만, 한 번도 지겨워하지 않잖아요…. 행복은 영원회귀에서 온다는 거죠. 우리들은 직선의 세계를 사는데, 동물들은 원의 세계를 살고 있다는 겁니다. 개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이 다르게 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죠.”(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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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박웅현의 말을 조금만 더 들어보자. 에덴동산, 즉 낙원에서 인간들은 그냥 개처럼 살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마주하는 태양에 감탄하고, 배고프면 먹고, 마려우면 똥을 쌌다. 그런데 사과를 먹으면서 우리는 똥을 창피해하게 되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이다.

하지만 그 사과를 먹지 않은 개들은 똥을 창피해하지 않고,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산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 우리집 개들이 똥을 싸고 왜 그리 의기양양한지를. 애들아, 마음껏 똥을 싸라. 그때마다 박수쳐 줄 테니까.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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