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개의 반경은 산책 코스가 전부지만 개는 그 산책이 매번 신기하다. 시시해 보이는 공놀이도 마찬가지. 1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신이 나서 달려가는 건 변함이 없다. 개는 지겨워하지 않는다. 사람은 직선의 세상을 살지만, 동물들은 원의 세계를 살고 있다.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산다. 그래서 행복하다
개의 반경은 산책 코스가 전부지만 개는 그 산책이 매번 신기하다. 시시해 보이는 공놀이도 마찬가지. 1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신이 나서 달려가는 건 변함이 없다. 개는 지겨워하지 않는다. 사람은 직선의 세상을 살지만, 동물들은 원의 세계를 살고 있다.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산다. 그래서 행복하다
개들은 똥을 창피해하지 않고,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산다. 그들은 사람과 달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매일매일의 산책이 새롭다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 아이, 아니 어른에게 이제 새로운 건 없다. “올해에는 키가 크고 훈남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새해 소원을 빌던 아이는, 이제 해가 바뀌어도 소원을 빌지 않는다. 엄마: 아들, 올해 소원은 뭐야?
아들: 소원 빌면 뭐해요. 이루어지지도 않을 건데.
엄마: 그래도 사람은 계획이 있어야지. 담배 끊는 건 어때?
아들: 아이, 귀찮게. 알았어요. 전자담배로 바꿀게요. 나이가 더 들면, 웬만한 자극에는 꿈쩍도 하지 않게 된다. “야, 너 그거 알아? 연예인 누구랑 누구가 사귄대.” “그래서 뭐?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놀랄만한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는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인간의 삶이 나이가 들수록 재미없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와! 즐거운 공놀이다! 어디 한번 신나게 놀아볼까?’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도, 공을 던져줄 때 개들이 신이 나서 달려가는 건 변함이 없다.
개는 원의 세상을 살아간다 다음날이 되면 개들은 날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오늘도 공놀이 시켜주면 좋은데, 아빠가 바쁜가봐.’ 안되겠다 싶어 공을 꺼내러 가면, 개들은 좋아서 춤을 춘다. ‘와! 즐거운 공놀이다! 어디 한번 신나게 놀아볼까?’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도, 공을 던져줄 때 개들이 신이 나서 달려가는 건 변함이 없다. 사람 같으면 ‘이제 공놀이는 시시해’라고 했을 텐데, 개들에겐 익숙함에서 오는 지겨움이 없는 듯하다. 개를 키우는 게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훨씬 쉬운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사람보다 훨씬 약하니 말이다. 개들도 지능이 꽤 높을텐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개들에겐 익숙함에서 오는 지겨움이 없는 듯하다. 개를 키우는 게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훨씬 쉬운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박웅현의 말을 조금만 더 들어보자. 에덴동산, 즉 낙원에서 인간들은 그냥 개처럼 살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마주하는 태양에 감탄하고, 배고프면 먹고, 마려우면 똥을 쌌다. 그런데 사과를 먹으면서 우리는 똥을 창피해하게 되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이다. 하지만 그 사과를 먹지 않은 개들은 똥을 창피해하지 않고,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산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 우리집 개들이 똥을 싸고 왜 그리 의기양양한지를. 애들아, 마음껏 똥을 싸라. 그때마다 박수쳐 줄 테니까.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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