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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평생 아이’인 개와 함께 산다는 건…

등록 2020-05-05 10:59수정 2020-05-05 11:21

[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개들은, 반려견들은 인생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는 탓에 택배기사 초인종 소리에 열광한다. 낯선 사람의 방문은 ‘대형사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매일 보는 반려인의 퇴근도 반갑다. 사람과 달리 삶의 반경이 나이가 들어도 크게 확대되지 않는 개와 사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평생 반려인만 바라보는 생명체를 책임지는 일이기도 하다.
온갖 놀이기구로 가득찬 사람 놀이터와 달리 개 놀이터는 흙에 잔디를 심어놓은 게 고작이지만 개들은 간만에 야외로 나온 게 좋은지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닌다.
온갖 놀이기구로 가득찬 사람 놀이터와 달리 개 놀이터는 흙에 잔디를 심어놓은 게 고작이지만 개들은 간만에 야외로 나온 게 좋은지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닌다.

“엄마와 분식집에 갔다. 비빔국수를 시켰더니 엄마가 맵다고 못 먹는다고 했다. 난 비빔국수가 먹고 싶어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근데 정말 매웠다. 반 이상 남겼다.” “오늘 나는 치킨을 먹었다. 아까워서 천천히 먹었는데, 결국은 다 먹어버렸다. 다음에 또 먹고 싶다.”

어릴 적 썼던 일기를 들춰보면 웃음이 나온다. 지금 같으면 분식집에 가거나 치킨을 먹은 게 별일이 아니겠지만, 어릴 때는 그게 그날 경험한 가장 큰 일이기에 일기장의 메인이 되긴 충분했다. 그러니 영화를 보러 가거나 놀이공원에 가는 것은 최소 일주일은 우려먹을 수 있는 대형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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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의 초인종은 ‘데일리 이벤트’

이건 우리집 개들도 마찬가지다. 가끔 하는 산책 시간을 제외하곤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개들에겐 외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새롭다. 예컨대 아파트 입구의 벨이 울린다고 해보자. 나야 그가 택배기사인 걸 알고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지만, 그걸 모르는 개들은 대체 누가 우리 집에 오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개들은 현관 앞에 쪼르르 달려가 자리를 잡는다.

“댁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왕 왔으니 나를 좀 쓰다듬어 주세요. 날 만난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첫째 강아지 ‘팬더’는 처음 보는 사람 앞에 드러눕는다.
“댁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왕 왔으니 나를 좀 쓰다듬어 주세요. 날 만난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첫째 강아지 ‘팬더’는 처음 보는 사람 앞에 드러눕는다.

택배기사가 현관에 도착한 뒤 다시 벨이 울리면 개들은 마구 짖어댄다. “누군지 궁금해요. 빨리 문 열어요!” 택배기사는 물건을 놓고 바람같이 가 버린다. 이제 개들은 그 택배가 뭔지 궁금해, 내가 박스를 뜯는 동안 옆에 와서 냄새를 맡으며 내용물을 추리한다. “좋은 냄새가 나는데, 혹시 우리가 먹을 건가?” “아니면 새로운 장난감?” 아쉽게도 그건 마트에서 배달된, 우리가 먹을 식료품이다. 허무하게 끝났지만, 이 택배는 그날 하루 동안 개들에게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이다.

정수기 점검이나 가스검침 때문에 누군가가 집안에 들어온다면, 그건 더 큰 일이 된다. “아저씨는 누구예요? 우리 집엔 왜 왔어요?” 궁금해진 개들은 집에 들어온 낯선 이를 쫄쫄 따라다닌다. 미모에 자신감이 있는 첫째 강아지 ‘팬더’는 아예 그 사람 앞에 드러눕는다. “댁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왕 왔으니 나를 좀 쓰다듬어 주세요. 날 만난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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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의 퇴근도 언제나 ‘사건’

내가 퇴근해 집에 오는 것도 내겐 일상이지만 개들에겐 사건이다. 놀아주는 일은 내 담당인지라 아내와 같이 있을 때 개들은 심심해한다. 그런데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나면 개들은 기대에 들뜨고, 온 사람이 나라는 게 확인되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개들은 빙글빙글 돌거나 컹컹 짖거나 내 다리에 매달리는 등등 갖가지 방법으로 반가움을 표시한다. “아빠, 왜 이제 왔어요?” “나, 아주 심심했는데, 이제 우리랑 좀 놀아줘요.”

그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난 아무리 몸이 피곤한 날이라도 개들에게 공을 던져준다. 공을 잡으러 달려가는 와중에 개들은 말한다. “와, 재미있어요. 역시 아빠가 최고예요.” 하지만 개들이 제일 신날 때는 역시 지네들이 외출할 때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입장료를 받는 개 전용 놀이터에 가는데, 거기 가려고 옷을 챙겨입으면 개들은 바로 눈치를 챈다. “와, 놀이터 가는 거죠? 저 너무 가고 싶었어요. 멍멍멍멍멍.” 행여 자기를 떼어놓고 갈까 봐 개들은 아내와 내 곁을 잠시도 놓치지 않는다.

개들이 제일 신날 때는 역시 지네들이 외출할 때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입장료를 받는 개 전용 놀이터에 가는데, 거기 가려고 옷을 챙겨입으면 개들은 바로 눈치를 챈다. “와, 놀이터 가는 거죠? 저 너무 가고 싶었어요. 멍멍멍멍멍.”
개들이 제일 신날 때는 역시 지네들이 외출할 때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입장료를 받는 개 전용 놀이터에 가는데, 거기 가려고 옷을 챙겨입으면 개들은 바로 눈치를 챈다. “와, 놀이터 가는 거죠? 저 너무 가고 싶었어요. 멍멍멍멍멍.”

온갖 놀이기구로 가득찬 사람 놀이터와 달리 개 놀이터는 흙에 잔디를 심어놓은 게 고작이지만 개들은 간만에 야외로 나온 게 좋은지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닌다. “야, 이 소변 냄새 봐. 내 스타일이야!” “에잇, 내 소변 맛도 한번 보렴!” 놀이터에 온 다른 견주를 만났을 때 팬더는 그 앞에 드러눕는 것을 잊지 않는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저 좀 쓰다듬어 주세요. 댁 강아지보다 내가 더 예쁜 건 팩트지 않소?”

하지만 개들 중 한 마리만 데리고 외출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개가 아프거나 아니면 미용을 가는 경우가 바로 그때다. 물론 저항은 만만치 않다. 한 마리를 안고 집을 나서려면 다른 개들이 난리가 난다. “아빠! 왜 쟤만 데려가요? 나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아이 씨, 나도 가고 싶단 말이에요.” 일이 끝나고 내가 그 개와 함께 집에 오면, 개들은 나 대신 그 개 주위로 몰려간다. 아마도 이런 대화가 오가는 모양이다.

다른 개: 야, 너 혼자만 좋은 데 갔다 왔냐?
그 개: 말도 마.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왔는데, 너무 아팠어.
다른 개: 그래도 부럽다. 그렇게라도 나가는 게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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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반경’은 언제나 그대로

모든 게 다 신기했던 인간 아이들은 자라면서 삶의 반경이 넓어지고, 다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전에는 신기하기만 했던 게 평범한 일상이 되면서 그들이 기뻐 날뛰는 빈도는 점차 줄어든다. 어느덧 그들은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게 된다. “저게 뭐 뉴스라고? 세상이 다 그렇지 뭐.”

팔베개를 하고 누운 오리
팔베개를 하고 누운 오리

사람과 달리 개들은 아무리 나이를 먹는다해도 삶의 반경이 그대로고, 그들의 경험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매일 퇴근하는 내게 똑같은 강도로 반가움을 표시하고, 택배기사가 올 때마다 기대감에 차서 현관 앞에 쪼르르 앉는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늘어나지만, 개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7살 먹은 팬더는, 여섯 살 먹은 흑곰이는, 네 살 먹은 황곰이는, 여전히 내가 공을 던져주기를, 그리고 놀이터에 데려가 주기를 기다리며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개를 키운다는 것은 엔도르핀이 마구 솟아나는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평생 아이인, 그리고 평생 기대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생명체를 책임지는 일이기도 하다. 순간적인 충동에 휩싸여 개를 입양해선 안되는 이유다.

단국대 교수

팬더의 일곱번째 생일.
팬더의 일곱번째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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