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하는 개를 키우기 위해서는 개들의 몸과 마음 상태를 잘 이해하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견주 중에 기르는 개에게 애칭을 붙여주는 경우가 있다. 내가 기르는 강아지 중 넷째인 ‘황곰’의 애칭은 ‘그릉그릉’이었다. 평소 코를 잘 골고, 깨어 있을 때도 그르릉 거릴 때가 많아서였다. 우린 그것도 예쁘다며 ‘그릉그릉’이란 애칭을 붙였지만, 그게 콧구멍이 좁아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건 최근에야 알았다.
_______
그릉그릉…황곰의 절규
인터넷을 찾아보면 이렇게 돼 있다. “비공협착(비강협착)은 선천적으로 콧구멍이 좁아지는 것으로, 숨쉴 때 소리를 내며, 콧물이 자주 나는 등의 증상을 보일 때 의심할 수 있다. 운동할 때나 흥분할 때 공기를 많이 마시지 못해 산소결핍이 발생하며, 혀가 보라색이 되기도 한다. 시츄나 페키니즈처럼 코가 납작한 개에서 흔하다.”
내가 귀엽다고 애칭으로 만들었던 황곰의 그릉그릉은 숨쉬기 어렵다는 절규였던 것이다! 그냥 놔두면 어떻게 될까? 잠을 잘 못 자는 것도 문제지만, 산소가 부족해지니 심장이 무리하게 돼서 심비대가 온다. 이게 지속하면 결국 심장이 퍼지는데, 그땐 방법이 없다. 일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뽀삐라는 페키니즈가 죽기 전 심장의 이상비대를 보였던 이유도 바로 비강협착이었다.
코가 납작한 페키니즈종은 비강협착으로 숨쉬기가 어려워 건강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
황곰이를 본 의사가 말한다. “황곰이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인도적인 견지에서 수술을 해줘야 합니다.” 황곰은 벌써 다섯 살이었고, 이미 심장이 다른 개보다 커져 있었다. 상황이 이랬으니 수술을 안 시킬 도리가 없었다. 운명의 그날, 엄마랑 밖에 나간다고 좋아했던 황곰은 수술을 마친 뒤 시무룩한 표정으로 집에 왔다.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이틀간 밥을 먹지 못해 우리를 안타깝게 하던 황곰은 사흘째부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다시 원래의 황곰으로 돌아왔다.
사실 ‘원래의 황곰’이란 말은 틀렸다. 황곰은 달라졌다. 황곰은 더는 코를 골지 않았고, 트레이드마크였던 ‘그릉그릉’ 소리도 내지 않았다. 수술 전보다 잠을 잘 자는 황곰을 보면서 진작 수술을 못 시켜줬다는 미안함과 더불어 이제라도 해줘서 다행이라는 감정이 교차했다.
그런데 다른 개들은 괜찮을까? 우리집에는 페키니즈가 다섯 마리나 더 있는데? 병원에 데려갈 때마다 의사는 한결같이 말했다. “당장 수술시켜야 합니다.” 막내 은곰이는 상황이 좀 더 심각한데, 그 녀석이 조금만 운동하고 나면 한참 동안 헉헉거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팬더부터 은곰까지, 당분간 우리집 개들은 비공협착 수술로 분주한 나날을 보낼 것 같다.
_______
아는 만큼 보인다
아내가 비공협착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코를 고는 황곰을 보다가 인터넷을 뒤지면서부터였다. 주의 깊은 관찰이야말로 황곰이의 삶의 질을 개선한 비결이다. 개는 참을성이 많아 아프다는 표현도 웬만해선 잘 안 한다는 점에서 개를 잘 기르기 위해선 면밀한 관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관찰만 해서는 제대로 알 수 없다. 개가 보내는 신호를 알아채는 능력도 견주에게 꼭 필요하단 얘기다. 운동한 뒤 수시로 뒷다리를 핥는다면 뒷다리 관절에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고, 갑자기 귀를 벽면이나 바닥에 비빈다면 귀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다. 눈 한쪽을 잘 못 뜬다면 어디선가 눈을 다친 것이다.
말하지 못하는 개를 키우기 위해서는 개들의 몸과 마음 상태를 잘 이해하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런 걸 모른 채 관찰만 한다면, 개가 아프다고 낑낑거릴 때 간식을 주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하지만 반려견 천만 시대에 열심히 공부하는 견주는 정말 드물다. 수많은 육아책이 절찬리에 팔리는 것과는 달리, 개에 관한 책은 거의 팔리지 않는 게 그 징표다.
개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자라 할 강형욱 훈련사의 ‘내 강아지 마음상담소’가 반려견 분야 1위에 올라있지만, 다른 분야에 비교하면 그 판매량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강아지와 소통하는 책인 ‘카밍 시그널’을 읽는다면 개를 훨씬 더 잘 키울 수 있건만, 그 많은 반려견 숫자를 생각하면 책의 판매량은 거의 없는 수준이나 마찬가지다. 수의사 설채현의 ‘그 개는 정말 좋아서 꼬리를 흔들었을까?’도 정말 훌륭한 책이건만, 별로 안 팔렸다. ‘삐뽀삐뽀 119’의 ‘개판’이라고 할 ‘삐뽀삐뽀 반려견 육아대백과’도 마찬가지다.
이 분야 책이 얼마나 안 팔리는지 다음 예를 들어보자. 올 8월, 개에 대한 책을 한 권 냈다. 그런데 개 관련 행사가 있어서 내 책을 기증해 달라기에 인터넷서점에서 10권을 샀더니 내 책이 반려견 부문 5위로 껑충 뛰어오르는 게 아닌가? 겨우 10권에 이 정도면, 20권쯤 샀다면 잠시나마 1등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것이 반려견 책 시장의 슬픈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니 외국에서 절찬리에 팔리는 좋은 책들이 번역돼서 한국에서 출판되는 게 쉽진 않겠다 싶다.
_______
반려인의 자격, 책을 보자
세상에 공부 없이 잘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게다가 인간과 다른 종인 반려견을 키우는 일은 더더욱 공부가 필요하다. 그리고 공부는, 오랜 경험으로 말하건대, 인터넷보단 책을 통해서 하는 게 제일 좋다. ‘카밍 시그널’을 사서 읽을 정도의 노력도 하기 싫다면? 늘 하는 소리지만, 그런 분들은 그냥 개를 키우지 마시길 빈다. 모르면서 개를 키우는 것은 개와 사람 모두에게 불행이니 말이다.
단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