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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나만 바라봤던 반려견이 늙고 병들 때

등록 2019-09-24 09:49수정 2019-09-24 09:59

[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노견일기>를 읽고
개를 키우게 되면 견주들은 늘 개한테 미안해한다. 개로부터 받은 것은 많은데 막상 해준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개를 키우게 되면 견주들은 늘 개한테 미안해한다. 개로부터 받은 것은 많은데 막상 해준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정우열님이 쓴 <노견일기>를 읽었다. 제주도에 사는 만화가 정우열님이 열다섯 살 된 개와 살아가는 내용인데, 내가 개와의 추억이 웬만한 사람보다 많다 보니 읽는 내내 과거를 회상하게 됐다. 20대 때, 아버지는 몰티즈 한 마리를 사 오셨다. 당시 우리는 부모님과 2남 2녀, 총 여섯 식구가 같이 살았는데, 개를 좋아하는 마음은 내가 제일 컸던 것 같다.

벤지가 온 날부터 일주일가량, 난 아예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방학 때라서 가능했던 일인데, 낯선 곳에서 당황했을 벤지는 내 따뜻한 보살핌에 마음을 열었고, 그 후 나를 가장 따르게 됐다. 우리 둘의 인연은 그 뒤 18년간 이어진다.

개를 키우게 되면 견주들은 늘 개한테 미안해한다. 개로부터 받은 것은 많은데 막상 해준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노견일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개 한 마리 잘 키우는 데 사람 하나론 역부족이란 걸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지.”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것이, 당시의 난 개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더 나쁜 점은 알려고 하질 않았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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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좋은 견주가 아니었다

벤지까지 일곱 식구가 바글거렸던 우리 가족은 다들 시집장가를 가고, 또 아버지가 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하게 되면서, 벤지와 나 둘만 있을 때가 많아졌다. 벤지를 돌보는 건 온전히 내 책임이 됐지만, 나도 일을 해야 했는지라 벤지를 외롭게 남겨둔 적이 많았다.

그렇다고 같이 있는 동안 잘한 것도 아니었다. 개 산책을 시켜주고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가고, 또 제때 밥을 주면 된다고 생각했을 뿐, 다른 것에는 도통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예를 들어보자. 개는 항문 옆에 항문낭이라는 주머니가 있는데, 개는 거기 찬 액체를 스스로 배출시키지 못하므로 1~2주에 한 번 정도 항문낭을 짜줘야 한다. 항문낭이 차면 개들은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끄는 동작을 보이는데, 난 항문낭을 단 한 번도 짜준 적이 없다. 항문낭 파열까지 가지 않았던 게 정말 다행이다.

두 번째, 난 벤지에게 사람이 먹는 음식을 줬다. 삼겹살을 구운 뒤 거기에 밥을 비벼 줬고, 장조림 장에 고기를 약간 섞어서 주기도 했다. 때에 따라서는 프라이드치킨을 사 와서 살을 발라서 줬다. 벤지는 그 음식들을 아주 잘 먹었다. 개는 염분을 잘 배출하지 못하므로 간이 된 음식을 주면 해롭다는 걸 그땐 몰랐다.

벤지
벤지
나중에야 사료가 좋다는 얘길 듣고 사료를 줘보기도 했지만, 자극성 음식에 길이 들은 벤지는 사료에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견주와 살면서 18년을 버틴 것은 벤지가 타고난 건강체질이었기 때문이리라.

개들이 다 그렇지만, 벤지는 귀가 매우 밝았다. 당시 우리 집은 5층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1층에 발을 들여놓기만 해도 벤지는 금세 알아차리고 짖어댔다. 내가 늘 ‘개는 다른 동물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벤지가 보여준 신통력 덕분인데, 다음 사례는 현대의 과학기술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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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지의 노화

군대에 가게 돼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니한테 벤지를 부탁했다. 몇 개월 뒤 내가 첫 번째 휴가를 나왔다. 벤지를 볼 생각에 집으로 내달렸고, 벤지는 그동안 뭐했냐고 원망하는 대신 날 너무나도 반겨줬다. 나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놀란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정말 이상한 일이야. 오늘 아침, 벤지가 갑자기 현관 앞에서 짖기 시작하는 거야. 벤지야, 민이 안 온다 들어와라, 라고 아무리 달래도 계속 거기 앉아 있었어.”

세상에서 오직 나만 바라봤던 내 최고의 친구 벤지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기력이 떨어졌다. 내가 와도 잠깐 반가워해 줬을 뿐, 주로 하는 일은 내 곁에서 웅크리고 자는 것뿐이었다. 백내장으로 인해 검은 눈동자가 하얗게 변해가는 것도 마음 아팠다.

이런 일이 있었다. 약속이 있어서 퇴근 후 집에다 가방만 던져놓고 바로 나와야 했는데, 벤지가 내가 왔다고 좋아하다가 실망이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됐다. 그런데 그건 기우였다. 가방을 들여놓으려고 문을 열었을 때, 벤지는 소파 위에서 자고 있었다. 내가 다시 문을 잠글 때까지, 벤지는 내가 왔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잠만 잤다. 약속장소로 가는 동안 마음 깊은 곳에서 눈물이 났다. 아, 그 명민하던 벤지가 이렇게 둔해졌구나!

결국 벤지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 녀석이 준 마지막 선물은 아내를 만나게 해줬다는 것이다. 개 엄마였던 아내는 나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개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는데, 그때 내가 휴대폰 초기화면에 저장된 벤지 사진을 보여주며 ‘내 아들이었다’고 한 것이 아내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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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벤지를 만난다면

개에 대해 아는 것도 많지만, 공부까지 열심히 하는 아내 덕분에 지금 내가 기르는 여섯 마리 페키니즈들은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항문낭을 짜주는 것은 물론 미용도 제때 해주고, 이까지 닦아 준다. 아내가 주로 집에 있으면서 개를 돌보고, 혹시 아내와 내가 둘 다 없더라도 여섯 마리가 서로 의지할 수 있으니 최소한 외롭지는 않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가끔 벤지 생각이 난다. 나는 참 못난 개 아빠였구나. 개들에게 해줘야 하는 게 이렇게나 많은데, 난 벤지에게 해준 게 하나도 없구나. 아내와 같이 키우다 보낸 ‘예삐’라는 페키니즈를 저세상에서 만난다면 반갑게 맞을 수 있겠지만, 벤지를 만나면 그 앞에 엎드려 사과해야 할 것만 같다. 그래도 난 안다. 그 경우에도 벤지가 날 별로 원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뭔가를 받기보단 더 주려고 하는 게 개의 마음이니까.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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