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펫숍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개를 키워볼까 하는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그렇게 입양된 개 중 많은 숫자가 버려진다. 반려견의 불행한 사슬을 끊고 싶은가? 그렇다면 펫숍 불매운동을 벌이자. 게티이미지뱅크
환상보다 긴 현실 환상이 깨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혼자 외롭게 있던 프리티가 여기저기 소변을 지려놓은 것이다. “프리티! 왜 그리 미운 짓만 해? 얌전히 있으라고 물이랑 사료도 충분히 줬는데! 프리티는 나쁜 아이구나.” 자신이 야단맞는다는 것을 눈치챈 프리티는 슬픈 눈으로 A를 쳐다본다. 그 모습에 A의 마음이 풀린다. 다음날, 프리티는 설사를 하기 시작한다. A는 짜증이 난다. “아유, 왜 하필 오늘 설사를 하고 그러니. 내가 지금 나가봐야 하는데.”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프리티가 탈진해 있다. 황급히 24시간 동물병원에 간다. 의사가 말한다. “장염이네요. 며칠 약을 먹여야 합니다. 그리 걱정하실 건 아니고요.” 한 시간도 채 병원에 있지 않았는데 병원비가 15만원이나 나왔다.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간호사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 그냥 밖으로 나온다. 프리티를 안고 집에 오면서 A는, 내가 프리티를 키울 능력이 없는 게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A는 조금 바빠졌다. 거기에 썸을 타던 이성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됐다. 프리티가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프리티는 자주 말썽을 부려놨고, 가끔 아팠다. 환상은 깨지고 현실이 남았다. 늘 자기만을 바라보는 존재, 그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A는 처음으로 알았다. “프리티, 배고프면 사료 먹고, 저기 좀 가 있어. 나 바쁜 거 안 보여?” 프리티는 외로웠고, 그래서 슬펐다. 공놀이도 하고 싶고, 손가락 총을 쏴주면 죽는 척도 할 수 있는데, A는 늘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A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내가 괜한 짓을 했어. 아, 그때 그냥 지나갈 걸.’ A는 게시판에 글을 올린다. “장모 치와와 암컷, 8개월 된 아이입니다. 머리 좋고 말썽 안 부리고 건강해요. 제가 60만원에 데려온 건데, 30만원에 드리겠습니다. 가격은 협상 가능합니다.” 입양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초조하던 차에 전화가 걸려온다. 무료분양은 안 되느냐고, 그 대신 누구보다 잘 키우겠다고. 망설이던 A는 결국 동의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프리티를 데려간 이는 소위 말하는 ‘업자’였다. 개를 교배시켜 강아지를 뽑아내고, 그걸 내다 파는 사람. _______
자식과 강아지가 다를까 원래도 프리티의 삶이 행복하진 않았겠지만, 이제 프리티는 진정한 지옥이 무엇인지 깨닫고 있다. 여러 마리의 개가 있는 뜬장에서 값싼 사료를 먹으며 보내다, 발정기가 오면 원치 않는 상대와 잠자리를 하는 신세. 프리티는 A를 원망한다. 물론 A의 마음도 편치 않지만, 그뿐이다. A는 가급적 프리티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프리티도 점점 잊혔다. 길을 가다 다른 치와와를 보면 프리티 생각이 났지만, ‘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가던 길을 갔다. A의 문제는 자신이 개를 키울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식을 낳기 전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그럴 능력이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고, 여건이 안된다면 자식계획을 뒤로 미루기도 한다. 개를 키울 때 그렇게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A가 그랬던 것처럼, 펫숍에서 예쁜 강아지를 보고 충동구매를 한다. 유리창 너머로 보는 강아지들은 보기만 해도 너무 예쁘니 말이다. 하지만 예쁘기만 한 그 강아지의 뒤에는 추악한 진실이 있다. 3~4천개에 이른다는 번식장들, 그곳에선 마치 공장처럼 강아지들을 찍어낸다. 우리나라의 개값이 싼 것도 다 그 덕분이다.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개를 데려온 견주는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다. A처럼 입양자를 찾는 경우는 그래도 좀 낫지만, 개를 몰래 버리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2016년 6월 서울 성동구 이마트 본사 앞에서 이마트 몰리스 펫숍의 동물 판매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이 모든 게 다 펫숍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배후에 있는 번식장과 경매장도 이 나라의 기형적인 반려견 산업을 떠받치는 ‘악’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부가 아닌 일반인이 이 두 곳을 제지할 수 없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펫숍의 동물들을 데려오지 않는 것뿐이다. 안타깝게도 펫숍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그 펫숍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개를 키워볼까 하는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그렇게 입양된 개 중 많은 숫자가 버려진다. 반려견의 불행한 사슬을 끊고 싶은가? 그렇다면 펫숍 불매운동을 벌이자. 펫숍 개가 더는 안 팔린다면 다른 두 곳도 자연히 줄어들 것이며, 프리티 같은 불행한 개도 덜 생기지 않겠는가?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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