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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말 못한다고 살인 누명까지 씌울 건가

등록 2019-06-09 14:55수정 2019-06-09 20:22

[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아동학대치사 혐의 반려인 “개가 7개월 아이를 할퀴었다”…거짓 들통
이 땅에는 수많은 학대받는 개가 있다. 사람과 개가 다르니 그건 운명이라 쳐도, 개한테 살인죄까지 뒤집어씌우는 것은 정말이지 인간이 할 짓은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 땅에는 수많은 학대받는 개가 있다. 사람과 개가 다르니 그건 운명이라 쳐도, 개한테 살인죄까지 뒤집어씌우는 것은 정말이지 인간이 할 짓은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개에게 안타까운 점은 스스로 자신의 주인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점은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사람은 대부분 자기 부모에 의해 양육되는지라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자랄 확률이 높다. 게다가 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기르는지 감시하는 체계가 정착돼 있어서 부모 자격이 없다 싶으면 친권을 박탈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또한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할 수 있으니, 다른 인생을 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와는 달리 개의 주인 중엔 기를 자격이 안 되는 이가 제법 있는 데다, 이들을 제재할 사회적 감시체계도 미비하기 그지없다. 물론 주인의 학대로부터 도망치는 개가 없는 것은 아니고, 동물단체의 구조를 받는 개들도 있지만, 집 나온 개들의 운명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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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 시스템’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이유

대부분의 사람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강아지를 선호하는 데다, 모진 풍파에 미모가 퇴색돼 기피 대상이 되기 일쑤다. 나 같은 ‘개빠’들이 ‘아무나 개를 기르지 못하게 할 것’과 ‘개를 잘 기르는지 감시하는 시스템을 만들 것’ 이 두 가지를 소리높여 주장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

영화 <베일리 어게인>은 개가 여러 주인을 만나면서 겪는 일들을 그린다. 여기엔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 개가 죽었다 다시 태어나면, 비록 종류는 다르고 매번 이름도 달라지지만, 어쨌든 개로 태어난다. 둘째, 다시 태어난 개는 이전 생애에 대한 기억이 있다.

이 중 베일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에게 그 이름을 지어준 첫번째 주인과의 삶이다. 그럴 법도 하다. 유기견보호소에서 탈출해 죽기 직전이던 베일리를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받아준 이가 바로 첫번째 주인 ‘이든’이니까. 이든은 베일리와 공놀이를 하는 등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 사정상 헤어지게 된 뒤에도 베일리가 죽어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와 임종을 지킨다.

두번째 생애에서 베일리는 경찰견으로 태어나고, 그래서 경찰 한 명과 더불어 살게 된다. 하지만 그 경찰은 베일리를 업무에만 이용할 뿐 그다지 정을 주진 않는다. 그래도 베일리는 총을 든 강도로부터 경찰의 생명을 구해주고, 그 과정에서 총에 맞아 숨진다. 경찰은 죽어가는 베일리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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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들의 ‘시련’은 더 혹독하다

세번째 태어났을 때 베일리는 여대생에게 입양된다. 산책 도중 베일리는 우연히 만난 큰 개에게 한눈에 반하는데,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여대생은 큰 개 주인과 결혼한다. 덕분에 베일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개와 더불어 살 수 있었는데, 내가 베일리였다면 목표를 이루지 못해 좌절했던 ‘이든’과의 삶보다 이쪽을 더 그리워했을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인 네번째 생애에서 만난 주인은 개를 집안에 들이지 않고 묶어 놓고, 아무런 사랑도 주지 않는다. 이건 스포일러지만, 베일리는 결국 그곳에서 나와 첫번째 주인인 이든의 집으로 달려가고, 처음엔 이 개가 왜 이러나 싶었던 이든도 결국 그 개가 베일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래도 베일리는 운이 좋은 편이다. 네 번의 삶을 살면서 최악의 주인이라고 해봤자 마당에 묶어 놓았던 이가 고작이니까. 우리나라였다면 묶인 채 사는 것은 물론이고 개농장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트라우마를 겪을 수도 있었을 테고, 개고기가 돼 누군가의 뱃속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베일리는 이렇게 빌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더는 개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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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할퀸 것 같아 연고를 발라줬다”

최근 상상을 초월하는 악덕 개 주인이 나타났다. 21세 남성 ㄱ씨와 18세 여성 ㄴ씨가 주인공으로, 이들은 7개월 된 딸 ㄷ을 키우고 있었다. ㄱ씨는 일용직 노동자, ㄴ씨는 무직이다 보니, 이들의 삶은 여유롭지 않았으리라. 그 와중에 이들은 몰티즈와 시베리안 허스키를 각각 한 마리씩 키웠다.

시베리아 유목민들의 썰매를 끄는데 이용되던 시베리안 허스키. 게티이미지뱅크
시베리아 유목민들의 썰매를 끄는데 이용되던 시베리안 허스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6월2일 오후 ㄱ씨, ㄴ씨와 연락이 되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한 외할아버지가 그 집을 방문했고, 그는 종이 상자 안에 숨진 채 놓여 있는 ㄷ양을 발견한다. 여기에 대해 ㄱ씨, ㄴ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달 30일 생필품을 사러 마트에 다녀온 뒤 아이가 반려견에게 할퀸 것 같아 연고를 발라 줬다. 이후 밤에 분유를 먹이고 아이를 재웠는데 다음 날 오전 11시께 일어나 보니 숨져 있었다.”

겁이 난 그들은 그 뒤 각자 친구집에 가서 숨어 있었단다. 그러니까 이들은 아이가 죽은 원인을 반려견한테 떠넘기는 중이다! ㄱ씨의 말을 더 들어보자. “시베리안 허스키가 아이의 팔과 발 등을 할퀸 것 같다. 허스키는 평소에도 가족들에게 장난을 많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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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음모’를 개는 모른다

애견인이라면 다 알겠지만, 반려견이 같이 지내는 아이를 죽이는 일은 그리 흔한 게 아니다. 게다가 개들은 물면 물었지, 죽을 정도로 할퀴진 않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역시 그 상처가 아이의 사인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이전에도 ㄱ씨와 ㄴ씨는 아이를 방치해 아동학대 혐의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이번엔 학대가 지나쳐 아이가 죽자 그 책임을 개한테 미루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경찰은 7일 ㄱ씨와 ㄴ씨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이 땅에는 수많은 학대받는 개가 있다. 사람과 개가 다르니 그건 운명이라 쳐도, 개한테 살인죄까지 뒤집어씌우는 것은 정말이지 인간이 할 짓은 아니다. 자기 주인이 이런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 개들이 얼마나 기가 막힐까? 부모 잘못 만나 숨진 아이의 명복을 빌며, 견주한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다 살인범의 누명까지 쓴 그 개들이 부디 다른 좋은 주인을 만나기를 빈다.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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