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개의 권리가 밑바닥에 가까운 이 나라에서, 개를 키우는 것은 죄인 취급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흑곰
“겉 검다고 속까지 검겠느냐” “까마귀 검다 하여 백로야 웃지 마라”로 시작되는 시조에서 저자인 이직은 까마귀를 다음과 같이 변명한다. “겉 검다고 속까지 검겠느냐.” 그러면서 이직은 백로에게 ‘너야말로 겉은 희지만 속이 검은 이중인격자가 아니냐’며 호통을 친다. 그가 여말선초에 활동했던 인물임을 감안하면, 검은색에 대한 폄하는 오래된 전통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흑곰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흑곰의 모습을 보고 울상을 한 채 엄마 뒤로 숨는 아이도 있었고, ‘왜 이렇게 무서운 개를 데리고 다니냐?’며 일갈한 여성분도 만났다. 그들에겐 흑곰의 이미지가 금방이라도 묵줄을 끊고 덤벼드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흑곰이 한 살 위 언니인 미니미에게 좀 사납게 굴긴 해도, 그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 애쓰는 조그만 강아지라는 점에서 마음이 아팠다. 며칠이라도 같이 지내봤다면 검은색에 대한 편견도 다 날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_______
“무서우니…없애주세요” “...검은 개 주인 아가씨 (이하 A씨)께. 검은 큰 개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활용할 때 갈아타는 입주민은 불안에 떨고 있으니 이 글을 보시는 즉시 검은 큰 개를 없애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4월 한 아파트에 공고된 입주민 민원이다. A씨의 개는 진돗개와 리트리버의 혼종으로, 그 아파트에서 1년간 A씨와 같이 살았다고 한다. A씨는 당연히 반발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A씨는 “우리 개가 한 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공포감을 줄 만큼 공격성을 보였거나 짖거나 달려들었으면 화도 안 날 것”이라며 “어떻게 기르던 개를 없애라고 하느냐?”며 어이없어했다.
그냥 개와 같은 공간에 있는 걸 싫어하는 분들도 있다. 개와 함께하는 반려인들이 감내해야할 몫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슬기롭게 화를 다스리시길 예컨대 난 개들을 유모차에 싣고 다니는데, 유모차 지퍼를 단단히 잠그니 개가 다른 이에게 덤벼들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색을 하는 분들이 있다. 그냥 개랑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싫은 분들이다. 그분들이 다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한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왜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느냐” “난 개 싫어하는데 눈에 안띄게 하면 안되느냐” 등등의 덕담을 하시는데, 견주가 만만한 여자일 땐 그 빈도가 높아진다.
개가 견주에게 주는 행복은 상상을 초월한다. 개 싫어하는 분들의 쓴소리를 그저 세금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 주시라. 게티이미지뱅크
개 키우는 이는 약자인 바 아무리 ‘우리 개는 안문다’고 해봤자 그분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되며, 승강기에 타려다 개한테 물려 결국 한일관 대표분이 돌아가신 게 불과 2년 전이니, 그런 분들의 공포가 전혀 근거없는 것만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개 키우는 이는 약자인 바, 강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아예 계단으로 다니면 좋겠지만, 그게 힘들다면, 승강기 안에서라도 입마개를 씌우는 등의 조치도 고려해 보길 바란다. 개가 견주에게 주는 행복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하루에 수십번씩 웃는 것도 다 개 덕분인데, 개로 인해 이렇게 즐거움을 얻는다면, 다른 이에게 잠깐 굽신거리며 죄인 행세를 하는 게 뭐 그리 어렵겠는가? 개 싫어하는 분들의 쓴소리를 그저 세금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 주시라. A씨가 사랑하는 그 개와 더불어 오래오래 살 수 있기를 빈다.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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