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개 목줄 풀어주고 대피하라”… 동물 대피 여론 들끓은 고성 산불
기르는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은 위기 상황에서 혼자 두지 않는 것
“개 목줄 풀어주고 대피하라”… 동물 대피 여론 들끓은 고성 산불
기르는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은 위기 상황에서 혼자 두지 않는 것
급박한 상황에서 반려견과 함께 탈출하지 못해 발을 구른 이재민도 있었다. 6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용천리에서 만난 한 주민의 개는 시커먼 연기 속에서 화상을 입은 채 반려인과 만났다. 고성/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2m 줄에 묶인 개 아직 많다 제리가 개들을 데려가지 못한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개들을 묶어놓고 그냥 가버린 점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그 바람에 개들은 추위 속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4일을 보내야 했다. 안 되겠다 싶었던 개들은 결국 목줄을 끊는 데 성공하지만, 끈 대신 쇠사슬로 묶어놓은 개는 결국 탈출하지 못한 채 죽고 만다. 남은 개들은 그 뒤 끈끈한 동료애를 발휘하며 힘겨운 삶을 계속한다. 특출한 사냥 실력으로 갈매기도 잡아먹고, 죽은 고래를 먹다가 바다표범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개들이 남극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낭만적으로 그린 영화와 달리 실제의 삶은 개들에게 훨씬 더 가혹했으리라. 영화에선 제리가 다시 남극을 찾았을 때 8마리 중 6마리가 살아남아 그를 반갑게 맞는 것으로 나오지만, 일본 탐험대가 2년이 지난 후 다시 남극에 갔을 때 생존했던 개는 15마리 중 2마리에 불과했다. 어디선가 들은 얘기지만, 주인을 다시 만난 개들의 태도도 영화와 달랐다. 영화는 살아남은 개들이 제리에게 반갑게 안기는 것으로 끝나지만, 실제로는 개들이 주인을 외면했다나. 난 내가 들은 얘기가 맞기를 바란다. 자신을 버린 주인에게 계속 충성하는 건 아무리 개라도 너무하지 않은가. 강원도 고성에서 큰 산불이 났다. 두 분이 생명을 잃었고, 수많은 분들이 집과 재산을 잃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반려인으로서 안타까운 점을 덧붙인다면,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개들이 죽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제리가 목줄을 풀어주지 않고 그냥 간 것처럼, 개를 묶어놓은 채 대피한 분들이 많은 탓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인터넷상에서 갑론을박이 있다. ‘그럴 수 있지’쪽: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개 목줄 풀어줄 정신이 어디 있어? ‘너무해’쪽: 급박한 상황이라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가족이라고 생각했다면 목줄은 풀어줬어야지 않느냐. 개 목줄 푸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강원도 고성 산불에 불에 탄 한 불법 개농장. 이곳에서 개들은 철창에 갇힌 채 탈출하지 못하고 죽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위기에서 구하지 못할 거면 기르지 마시라” 사람이 중요하지 개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목적이 무엇이든 자신이 기르기 시작했다면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기사에 나온 개농장 주인은 화마에 개를 방치한 것도 모자라,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재난이 나면 사람도 힘들지만, 개들은 더 힘들어진다. 한 사람의 인성은 갈등 상황에서 제대로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괜찮은 견주인지 아닌지가 판가름나는 것도 바로 재난을 당했을 때다. 위기의 순간에 챙겨주지 않을 거라면 아예 기르지 마시라. 그런 견주에게 충성하는 개를 보는 것 자체가 비극이니 말이다. 서민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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