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8년 9월18일 오전 청와대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평양으로 향하기 위해 관저를 나서고 있다. 반려견인 풍산개 마루가 꼬리를 흔들며 환송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돼 동네를 떠날 때 주민들이 선물한 진돗개. 훗날 대통령인수위의 ‘연출’임이 드러났다. 와이티엔 갈무리
대통령은 ‘최악의 반려인’ 이런 소원함을 다행이라고 말한 이유는, 대통령이 개를 너무 좋아한다면 그것 역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어야 한다. 국정을 챙기느라 동분서주해야 하고, 국외순방으로 자리를 비우는 기간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애당초 개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얘기다. 행여 개를 순방길에 데려가기라도 해보라. “저 대통령은 사람보다 개가 우선이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개 입장에서 봐도 대통령과 정이 드는 게 좋은 일은 아니다. 개에게 좋은 주인은 돈이 많고 권력이 센 사람이 아니라, 늘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니, 대통령은 국내 거주자 5천만명 중 단연 최악의 주인이다. 게다가 입양 동기도 정치적인 목적인 경우가 많아, 박 전 대통령의 개들처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종견장이나 동물원 등으로 보내지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원래 개를 키우던 분이라면 모를까, 대통령이 된 다음 새로 개를 입양하는 일은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6일 청와대 관저에서 강아지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청와대제공
개의 수명은 대통령 임기보다 길다 난 이 제안이 아쉬웠다. 대선에 나온 모든 후보가 다 개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개의 수명은 대개 10년을 넘기에, 청와대를 나온 뒤 그 개를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한 표가 시급한 대선판에서, 그것도 선거를 보름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제안을 한다면 여기에 반대할 후보가 누가 있겠는가? 결국 문재인 현 대통령과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후보 등 네명이 ‘키우겠다’고 답을 했다. 가장 진정성이 있었던 분은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었다. 그는 딸이 실험동물용 강아지를 집에 들인 걸 계기로 ‘찡아’를 키우기 시작해 2014년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11년을 키웠다. 유 의원은 그 후에도 찡아를 그리워했다는데, 대선 때 캠프 관계자가 다른 개를 키워보자고 했을 때 “찡아에 대한 의리가 아니다”며 반대한 바 있다. 당시 제안에 대해서도 유 의원은 쉽게 답을 하지 못하고 고민했다는데, 이쯤되면 진정성이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반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경남도지사 시절 관사에서 진돗개 6마리를 키웠는데, 서울의 아파트로 이사하느라 지인에게 개를 맡겨버린 전례가 있다. 그가 후보들 중 유일하게 답변을 거부한 이유가 같은 일을 반복하기 싫어서였을까? 개에 대한 애정만 따지자면 문재인 대통령도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은 ‘마루’라는 이름의 풍산개를 10년 넘게 키우고 있다. 토리를 입양해 약속을 지킨 것도 높이 평가할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키우는 개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개들의 삶을 얼마나 낫게 할 수 있느냐다. 동물보호단체가 유기견 입양을 제안한 것도 유기되는 동물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좋겠다는 취지가 아니던가? _______
개농장과 펫샵은 그대로인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금까지 문 대통령의 행보는 많이 아쉽다. 유기견의 수는 전혀 줄지 않았고 학대받는 개들이 여전히 많음에도 동물보호법은 제자리걸음이다. 유기견 발생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개농장과 펫샵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도 특별한 게 없었으니, 앞으로도 큰 기대를 하기 힘들 것 같다. 혹시 대통령은 토리를 입양한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차라리 그때 이렇게 말했다면 좋았을 뻔했다. “대통령은 나랏일을 하는 존재입니다. 때문에 유기견을 입양하라는 제안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유기견을 줄일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해 보고 대책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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