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을 입양하는 분들은 자신의 세상으로부터 축출된 개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는 신과 같은 분들이다. 이분들이 존경받아 마땅한 이유다. 클립아트코리아
개산책을 하면서 많은 개들을 만났지만, 우리 개들만큼 예쁜 개들은 드물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개를 입양하는 기준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미모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출신도 좋아, 한 녀석의 아버지는 미국 챔피언, 또 다른 녀석은 인터내셔날 챔피언, 나머지도 도그쇼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소위 명문세가의 자식들이다.
그러다 보니 개값도 비쌀 수밖에 없어서 내가 나온 지 19년 된 차를 끌고 다니는 이유 중 하나가 개 사는 데 돈을 워낙 많이 썼기 때문이란 소문이 있다. 미모가 뛰어나고, 또 비싼 돈을 들여서 입양된 개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이들의 삶은 대체로 탄탄대로다. 우리집 개들만 해도 도둑을 지킨다는 개 본연의 임무는 망각한 채 낯선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서 애교를 부린다. 나와 아내로부터 평생 사랑만 받으며 자랐기에 사람들이 다 자기들을 예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세상은 그저 따뜻한 곳이다.
검은 개 토리의 운명
검은 개 ‘토리’는 이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동료견 누렁이와 함께 짧은 줄에 묶인 채 쉰내가 풀풀 나는 썩은 밥으로 허기를 채웠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토리의 주인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개들을 발로 걷어차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 와중에 누렁이는 주인이 휘두른 쇠막대에 찔려 목숨을 잃는다. 토리에게 세상은 두렵고 냉혹한 곳일 수밖에 없었다.
유기견 ‘토리’는 2017년 7월26일 청와대로 입양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청와대에서 토리를 맞이하고 있다. 청와대
다행히 토리는 동물구조단체 케어에 의해 구조돼 보호소에 들어간다. 수십마리의 유기견이 있는 그곳에 가자 토리는 처음으로 사는 재미를 느낀다. 작은 공간에 갇혀있긴 해도 묶여 있는 것보단 훨씬 나았고 거기서 주는 밥은 냄새가 나지 않고 맛있었다. 그곳에서 토리는 생전 처음으로 목욕이란 걸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생소한 것은 사람들의 친절함이었다.
그럼에도 토리는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산책을 담당하는 자원봉사자가 토리에게 목줄을 매려고 했을 때, 토리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시 , 싫어 . 다시는 목줄에 묶이고 싶지 않아 !”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던 토리는 구석에 몰리고 말았어요 .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달은 토리는 날카로운 이빨로 남자의 다리를 와락 물었어요 .
(<까매도 괜찮아 파워당당 토리 > 12쪽 )
케어의 자원봉사자들은 토리가 학대받은 기억 때문에 이런다는 것을 잘 이해했고, 토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인내와 사랑을 베풀었다. 한 차례 보호소를 탈출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지만, 토리는 결국 그들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원래의 착한 개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뒤의 일은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 앞마당 잔디밭에 누워있는 토리의 배를 쓰다듬고 있다. 토리는 <한겨레>와 동물자유연대, 카라, 케어 등 동물단체가 진행한 ‘유기견을 대한민국 퍼스트 도그로!’ 캠페인을 통해 문 대통령이 입양한 믹스견이다. 문재인 대통령 인스타그램
반쯤 그려진 그림을 새로 그리는 일
삶의 대부분을 학대 속에 자란 토리에게 이런 말을 하기 미안하지만, 그래도 토리는 운이 좋은 경우다. 꼭 대통령에게 입양돼서가 아니라 보호소 개들이 입양되는 일 자체가 그리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개를 입양하는 건 쉬운 일이다. 어린 개들은 다 예쁘니까 말이다. 게다가 그들은 도화지와 같아서 견주가 대하는 태도에 따라 어떤 개로 자랄지 결정된다. 견주가 사랑을 주면 매사 긍정적이고 애교도 잘 부리는 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유기견에게는 가족을 잃었다는,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처절한 슬픔이 표정에서 읽힌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런 표정은 ‘가족’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사라져버리고 ‘행복한 개’로 변신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유기견은 다르다. 아무리 예쁜 개라고 해도 유기견 생활을 하면 꾀죄죄해지며 본래의 미모를 잃어버린다. 더 심각한 것은 버려진 기억 탓에 여간해서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쯤 망쳐진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게 쉽지 않은 것처럼 유기견이 진심으로 자신을 믿고 따르게 하려면 수많은 인내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몇 년 전 내가 후원하던 유기견 보호소에 갔다가 내가 기르는 것과 같은 ‘페키니즈’를 만났다. 그 개가 거기 있는 게 안타까워 데려오긴 했지만, 내가 기르지는 못했다. 그 개가 걸려 있던 옴진드기는 병원에 한달간 입원을 시킨 끝에 완치를 시켰으니 별 문제가 안 된다 해도, 녀석의 마음을 돌릴 만큼 사랑을 베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난 매달 얼마씩을 보내는 조건으로 지인에게 그 개를 맡겼는데 이런 걸 보면 난 예쁜 개에게만 헤벌레 웃는 뜨내기 애견인이다.
‘주인은 왜 나를 떠났을까?’
입양된 개에게 주인은 부모고 그 집은 자신이 아는 세계의 전부다. 그 개는 앞으로도 쭉 거기서 견주와 함께 살아갈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개는 자신이 버려졌을 때 큰 충격을 받는다. 현실을 부정하고 버려진 곳에서 주인이 다시 오기를 기다려 보지만 결국 그 개는 다른 유기견들처럼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신세가 된다.
입양된 개에게 주인은 부모고 그 집은 자신이 아는 세계의 전부다. 그 개는 앞으로도 쭉 거기서 견주와 함께 살아갈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개는 자신이 버려졌을 때 큰 충격을 받는다. 클립아트코리아
그 개는 수없이 되물을 것이다. 주인은 왜 나를 떠났을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지? 물론 그 개는 답을 들을 수 없다. 어쩌면 그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주인의 변덕 때문에, 또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 자신이 버려졌다는 걸 안다면 훨씬 더 슬퍼질 테니까. 유기견을 입양하는 분들은 자신의 세상으로부터 축출된 개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는 신과 같은 분들이다. 이분들이 존경받아 마땅한 이유다.
단국대 교수
반려동물은 평생 주인을 그리워한다. 클립아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