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봄 체고 40cm 이상 개에게 일률적으로 입마개를 하고 외출해야 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반대 여론이 거세 무산됐다. 다만 맹견으로 지정된 5종은 반드시 입마개를 해야한다. 게티이미지뱅크
2015년 3월, 집 주변 놀이터에서 혼자 놀던 어린이 A(당시 7세)은 이웃 주민이 데리고 있던 개에게 다가갔다. A어린이는 좋은 마음으로 다가갔지만 그 개는 야속하게도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개 주인이 목줄을 놓치는 불상사까지 겹치면서 A는 얼굴과 가슴을 개한테 물렸고, 그로 인해 18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그로부터 3년 뒤, 판사는 개 주인에게 64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개가 사람을 물었을 때 주인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걸 보여준, 정상적인 판결이다. 다만 판사의 설명 중 곱씹어 볼 대목이 두 가지 있다. 판사는 개 주인이 “입마개 등 안전장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판결의 이유로 들었다. 개는 위험한 동물이므로 목줄은 물론이고 입마개까지 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고 있다. 특히 한일관 전 대표가 개한테 물려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진 뒤부터는 입마개에 대한 인식이 널리 확산됐다.
그렇다면 개는 정말 위험한 동물일까. 통계를 보면 그런 것 같다. 소방청 자료에 의하면 개에 물려 병원에 이송된 사람의 수는 2015년 월평균 153.4명, 2016년 175.9명, 2017년 187.5명이었다. 소방청이 병원으로 이송한 경우만 집계한 수치니, 실제로 물리는 경우는 더 많을 것이다. 해마다 그 빈도가 늘어나는 것도 우려되는 점이다. 그렇다면 개 입마개는 옳은 정책일까? 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입마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첫째, 입마개는 개의 신체적 자유를 침해한다. 대부분의 개는 하루의 대부분을 집안에서 보낸다. 어쩌다 나가는 산책은 개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다. 산책을 하면서 개는 바깥 공기도 쐬고, 다른 개의 소변냄새를 맡으면서 ‘이 녀석은 맛있는 걸 먹었군!’ ‘얘는 성격이 좀 안좋아 보여.’ 같은 상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입마개는 이 모든 걸 방해한다. 입마개로 인해 개가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오히려 공격성이 증대되지 않겠는가? 사람이 아이언맨 마스크를 쓰고 등산을 간다면 얼마나 답답할지 상상해 보라.
둘째, 입마개는 개에 대한 혐오감을 키운다. 높은 빌딩, 자동차의 행렬,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우리가 사는 도시는 그 자체로 삭막하다. 하지만 꼬리를 흔들며 길거리를 걷는 개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잠시나마 미소 지을 수 있다. 문제는 아무리 예쁜 개라 해도 입마개를 하면 더 이상 예쁘지 않다는 점이다.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떠올려 보라. 감독이 ‘베인’이란 악당에게 입마개를 씌운 이유는 입마개가 악당을 더욱 악당답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입마개는 개를 무섭게 보이도록 하며, 이는 개에 대한 혐오를 증폭시킨다. 입마개를 한 개들만 다니는 도시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등장하는 베인이 쓴 입마개는 ‘악당’을 더욱 악당답게 만드는 장치로 쓰인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셋째, 개의 일부가 사람을 문다고 해서 모든 개를 다 범죄견 취급하는 건 부당하다. 예컨대 ‘몰카’가 문제라고 모든 남성들에게 공공장소에 갈 때 스마트폰을 못 가지고 다니게 한다면? 개에게 입마개는 처벌의 일종이며, 이 처벌은 실제 범죄를 저지른 개에게만 선택적으로 가해지는 게 맞다.
넷째, 개는 땀샘이 따로 없어 혀를 내밀어 체온을 조절하는데, 입마개를 하면 체온조절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특히 날이 더운 여름에 입마개를 하라는 건, 개한테 죽으라는 소리밖에 안 된다. 또한 쉬츠나 내가 기르는 페키니즈는 입이 전혀 튀어나와있지 않아, 입마개를 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실 개가 다른 이를 무는 것은 개의 문제라기보다 견주의 책임이 더 크다. 위에서 언급한, 초등학생이 물린 사고에서 견주는 다른 이, 특히 아이가 자기 개에게 접근했을 때 좀 더 경각심을 가졌어야 했다. 하지만 개와 같이 나온 사람들을 보면 개에게 집중하기보단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경우가 많던데, 그런 상황에선 자기 개가 돌변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
견주가 평소 개를 잘 돌보지 않는 것도 문제다. 한 연구에 의하면 폐쇄된 환경에서 지낸 개일수록 사람을 잘 문단다.
박창길 성공회대 경영학부 대우교수는 서울신문에 쓴 칼럼 ‘섣부른 반려견 입마개 대책’에 이렇게 쓰기도 했다. “사람과의 적극적인 관계가 없이 방치됐다가 주인이 없는 상황에서 어린이나 노약자를 공격해 사고를 일으킨다.(중략) 사람과의 접촉 없이 고립된 환경에 있는 개가 일으키는 사고가 개 물림 사고 원인의 76.2%를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개 선진국에서 개에 물리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개를 처벌하는 대신 견주에게 많은 배상금을 물리게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모든 개를 범죄견 취급해 일률적으로 입마개를 씌우기보단, 사건이 일어났을 때 견주가 다 책임지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게 나은 대안이란 얘기다.
아까 그 판결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 하나 더 있다. 해당 판사는 견주의 책임을 80%로 제한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사고 당시 A를 보호해야 할 부모가 그 자리에 없었던 점, A의 부모가 A에게 ‘큰 개 옆에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봤다.” 사람들 중엔 개는 언제 어느 때고 만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남의 아이가 예쁘다고 함부로 만지는 게 실례인 것처럼, 개들도 다른 이가 쓰다듬고 만지는 게 귀찮을 수 있다. 개가 예쁘면 그냥 눈으로 보고, 정 만지고 싶으면 견주에게 허락을 받고 만지자. 주인이 있는 개는 공공의 재산이 아니라 사유재산이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견주들에게 한 마디. 개를 끝까지 기를 자신이 없다면 제발 개를 키우지 말자. 개에게 물리는 빈도가 해마다 늘어나는 건 유기견들이 늘어난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말이다.
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