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반려동물

사람에게도 꼬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등록 2018-08-20 09:00수정 2018-08-20 10:12

[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흑곰의 꼬리와 명품가방

연애 시절 아내가 문득 던진 말
“꼬리 있으면 좋을 거 같지 않아?”
반가울 때 자동으로 흔드는 꼬리
애정 식으면 감출 수 없겠네

개에게는 꼬리가 중요하다
감정 표현 물론 몸의 균형 잡고
꼬리 흔들어 냄새 퍼뜨리기도
웰시코기 꼬리 자르면 예쁘다고?
관습적인 ‘단미 수술’ 이제 그만
감정을 표현하고 균형을 잡는 등 꼬리는 개에게 매우 중요한 기관이다. 서민네 집 반려견 ‘팬더’가 꼬리로 균형을 잡고 달리고 있다. 서민 제공
감정을 표현하고 균형을 잡는 등 꼬리는 개에게 매우 중요한 기관이다. 서민네 집 반려견 ‘팬더’가 꼬리로 균형을 잡고 달리고 있다. 서민 제공
연애하던 시절, 아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도 개처럼 꼬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지 않아?”

개가 반가움을 표시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달려와서 안기는 것, 껑충껑충 뛰거나 빙글빙글 돌기, 짖기, 핥기 등등이 다 반갑다는 표시지만,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행위는 바로 꼬리 흔들기다. 우리 집 개들도 내가 집에 오면 꼬리가 부러져라 흔들어 댄다. 이틀 정도 출장을 다녀온 후라면 꼬리를 흔드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_____
꼬리 흔들더니 꽉 물던 셰퍼드

아내가 사람에게도 꼬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이유는 사람은 곧잘 속내를 감추기 때문이란다. 아내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정말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좋아하는 척하며 다정하게 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사람에게 꼬리가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연애 초기엔 마구 흔들던 꼬리가 시간에 감에 따라 흔드는 둥 마는 둥 되면 ‘아, 권태기가 왔구나’를 금방 알 수 있다. 또한 자기 아내가 옆에 있는데 주위에 있는 다른 여성을 봤을 때 남자의 꼬리가 흔들린다면 그 남자의 음흉한 본심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여기엔 전제가 있다. 첫째, 꼬리 흔들기가 오직 반가울 때만 일어나며, 둘째, 개가 꼬리를 의도적으로 제어할 수 없어야 한다.

하지만 둘 다 아니다. 일단 개가 꼬리를 흔든다고 다 반가움의 표시는 아니다. 우리 집 개들이야 내가 반가워 흔드는 게 맞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분노나 성가심을 표현할 때도 꼬리를 흔들 수 있단다. 하기야, 중2 때 선생님 댁에서 만났던 셰퍼드도 내가 다가갈 때까지 꼬리를 흔들었다. 그것 때문에 날 좋아한다 착각해서 다가갔더니, 웬걸, 바로 머리를 물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니 그 녀석의 꼬리 흔들기는 분노의 표현이었다. ‘눈 작은 놈, 오지 마! 저리 가라고!’ 그러니 개의 기분을 파악할 땐 꼬리만 보지 말고 다른 조짐들, 얼굴 표정, 눈, 근육의 경직 여부 등을 참조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꼬리 흔들기가 의도적이 아니라는 두 번째 전제도 틀렸다. 꼬리는 척추뼈의 연장이고, 당연히 신경도 뻗어 있다. 뇌의 조종에 따라 얼마든지 꼬리를 흔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니 사람에게 꼬리가 있다 해도 얼마든지 반가움을 가장할 수 있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오리(왼쪽)와 황곰이 싸우고 있다. 황곰은 싸울 때 꼬리를 든다. 서민 제공
오리(왼쪽)와 황곰이 싸우고 있다. 황곰은 싸울 때 꼬리를 든다. 서민 제공
꼬리의 목적은 감정 표현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좁은 곳을 걷거나 달릴 때, 또는 점프할 때 꼬리는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 또한 개들 간에 의사소통하는 데도 꼬리의 역할은 중요해서, 꼬리를 흔드는 것이 자신의 냄새를 퍼뜨리는 역할을 한단다. 또한 꼬리는 안전상의 이유로도 중요하다. 나만 해도 급할 때 꼬리를 붙잡음으로써 개를 위험으로부터 구한 적이 몇 번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꼬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꼬리가 있음으로써 개가 아름답다는 점이다. 팬더의 넉넉한 꼬리와 흑곰이의 감긴 꼬리, 미니미의 하얀 꼬리 등등, 개에게 꼬리가 없었다면 내가 개를 이렇게 좋아했을까 싶다.

_____
단미수술 해야 예쁘다고?

그런 내가 보기에 개 꼬리를 자르는, 소위 단미수술이 성행한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일부 개 주인들은 개가 어렸을 때 꼬리를 끈으로 묶어서 저절로 떨어지게 만들거나 가위로 자르는 수술을 감행한다.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단미수술을 하는 대표적인 종이 바로 웰시코기인데, 일설에 의하면 웰시코기는 과거 소몰이개였다고 한다. 즉 소의 발에 꼬리가 밟히는 일이 없도록 단미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곧잘 무서운 개로 등장하는 도베르만은 경비견 역할을 주로 했는데, 꼬리를 치면서 위협을 하면 침입자가 오해할 수 있으니 꼬리를 잘랐다. 이 설이 다 진짜라 해도, 이런 건 다 과거의 일이다. 웰시코기는 더는 소를 몰지 않으며, 요즘엔 도베르만 대신 세콤 같은 경비업체가 경비를 맡는다.

그런데도 단미수술이 계속되는 이유는 꼬리가 없어야 더 예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서다. 웰시코기, 푸들, 미니핀, 도베르만 중에 꼬리가 없는 개들이 많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혹자는 건강상의 이유라고 하지만, 꼬리가 없어야 건강하다는 건 증명된 바는 없다. 물론 단미 수술을 하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취향’일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꼬리는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며, 아무리 어릴 때라 해도 꼬리가 잘려나가는 건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단지 견주의 취향이 그렇다고 해서 꼬리를 잘리는 건 개에겐 슬픈 일이다.

흑곰의 꼬리는 말려있다. 서민 제공
흑곰의 꼬리는 말려있다. 서민 제공

몇 년 전, 아내는 조수석에 타고 있던 흑곰을 안아 올렸다. 조수석엔 아내가 가진 유일한 명품 가방이 있었는데, 그 끈이 흑곰의 꼬리에 걸렸고, 흑곰과 함께 밖으로 딸려 나왔다. 하지만 꼬리의 버티는 힘이 강하지 못해 가방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아내는 그걸 모른 채 흑곰을 데리고 병원에 갔는데, 잠시 뒤 그곳을 지나던 분이 가방을 주워간 장면이 블랙박스로 확인됐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 가방은 결국 찾지 못했고, 난 그때 했던 약속(내가 하나 사줄게!)을 아직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아내나 나는 단 한 번도 흑곰의 꼬리 탓을 한 적이 없다. 흑곰이 꼬리를 흔들 때마다 나오는 엔도르핀을 돈으로 환산하면, 그 가방을 백개, 아니 천개도 더 사고 남았을 테니 말이다.

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1.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웹툰] 우린 계속 걷자 2.

[웹툰] 우린 계속 걷자

누워서 하늘로 오줌 쏘는 분홍돌고래…영역 표시일까 놀이일까 3.

누워서 하늘로 오줌 쏘는 분홍돌고래…영역 표시일까 놀이일까

[웹툰] 세수는 하고 산책하는 거야? 4.

[웹툰] 세수는 하고 산책하는 거야?

주사 맞고 크는 ‘공장식 개들’…1년 만에 보신탕으로 5.

주사 맞고 크는 ‘공장식 개들’…1년 만에 보신탕으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