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기 짝이 없는 팬더, 하지만 난 팬더에게 미안한 게 있다. 우리 집에 온 지 5개월쯤 됐을 때 그의 고환을 떼는, 세칭 ‘중성화 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흑백의 조화가 돋보이는 팬더의 유전자가 후대에 전해지지 못하게 된 건 분명 아쉬운 일이지만, 당시 우리에게 중성화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숫자의 문제였다. 팬더 혼자서 심심할까 봐 같이 놀 개로 미니미를 데려왔는데, 미니미가 암컷인지라 그냥 놔뒀다면 둘이 짝짓기를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으니 말이다. 첫 출산에서 세 마리를 낳았다고 해보자. 믿을 만한 집에 보내면 좋지만, 그게 쉬운 게 아니다. 개를 잘 키워줄 집이라면 이미 개를 키우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말이다. 할 수 없이 우리가 그냥 키우기로 한다. 하지만 그중 암컷이 섞여 있다면? 10마리, 20마리 되는 건 순간이다! 성욕을 잃은 팬더가 안쓰럽게 보일 때면 난 이렇게 말하곤 한다. “팬더야, 아빠도 금욕적으로 살고 있으니 네가 이해해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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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가붕가’ 협조는 내 의무?
이른 중성화가 필요한 두 번째 이유는 수컷의 행동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간, 벤지라는 이름의 몰티즈 강아지는 중성화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한 마리만 키울 거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였다. 그래서 벤지는 기력이 떨어지기 전까지 거의 매일, 컨디션이 좋을 때는 하루에 두세 번씩, 내 팔에 대고 붕가붕가를 했다. 그것도 계속 하다보면 기술이 좋아지는지, 나중에는 사정까지 해댔다. 물론 그 당시 난 그게 당연한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 장가를 보내주지는 못할망정, 팔 대주는 것 정도는 해야지 않겠는가? 나야 그럴 수 있지만, 견주에 따라서 이런 걸 견디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테고, 그분들이 계속 개를 키우려면 중성화밖에 답이 없다. 게다가 벤지는, 중성화를 안한 수컷들이 다 그렇듯, 영역 표시를 즐겼다. 화장실은 물론이고 마루 창문 근처, 현관 안쪽 등등 후미진 곳에선 늘 벤지의 소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중성화를 한 팬더는 어떨까? 일단 팬더는 거의 내 팔에 매달리지 않는다. 다른 암컷들에게 붕가붕가를 할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 봤자 일년에 몇 번 정도다. 영역 표시를 하는 일도 일절 없고, 늘 배변 패드에 예쁘게 앉아서 소변을 본다. 신기한 건 벤지와 달리 팬더의 소변에선 역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것 역시 중성화의 효과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마음 놓고 산책을 할 수 있는 것도 중성화의 이점이다. 개 산책을 하다 보면 다른 개를 만나게 되고, 개중에는 암컷도 있기 마련이다. 그 암컷에게 어떻게 한번 해보려고 난리를 친다면 산책이 엉망이 된다. 그 암컷이 마침 발정기라면 난데없이 그 집과 사돈을 맺어야 한다. 직접 마주치지 않더라도 개는 후각이 고도로 발달한 동물이라, 몇 킬로 떨어진 발정기 암컷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집을 나가려는 개를 필사적으로 말려 보지만, 그 경우 욕구 충족에 실패한 개의 분노를 다 감당해야 한다. 중성화가 동물의 본성을 억압하는 행위인 건 분명하지만, 그것도 개를 집안에서 키우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여기에 더해 고환암, 전립선비대증, 항문선종 등의 질병도 예방할 수 있고, 내시가 오래 산 데서 보듯 개 수명도 길어진다니, 중성화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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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빨다 다 간 하루여!
그렇다면 암컷은 어떨까? 암컷의 중성화가 수컷보다 더 꺼려지는 건, 수컷의 중성화보다 훨씬 더 큰 수술이기 때문이다. 수컷은 외부로 돌출된 고환을 떼면 되는데 암컷은 배를 열어서 난소와 자궁을 떼어내니,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중성화를 하면 기초 대사량이 낮아져 개가 살이 찐다. 폐경 이후 엄마들이 “안 먹어도 살이 찐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를 극복하려면 운동을 더 열심히 시켜야 하지만, 아파트에 사는 우리나라 개들의 특성상 비만을 막기가 쉽지 않다.
중성화를 안 하는 것에도 불편이 따른다. 가장 큰 불편은 생리, 물론 사람처럼 매달 하는 것도 아니고, 양도 그리 많지 않지만, 개주인에 따라서 견디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우리 집 암컷들은 다 중성화를 안 했는데, 생리 주기가 올 때마다 아내가 열심히 바닥을 닦고 이불을 빨지만, 이건 아내가 전담해서 개를 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뿐, 개를 혼자 놔두는 집에선 이게 쉽지 않다. 퇴근하고 왔더니 집안 곳곳에 피가 묻어 있다면 힘들지 않겠는가? 수컷의 중성화가 질병을 예방하듯, 암컷의 중성화도 자궁축농증과 유선종양을 예방할 수 있다. 중성화를 안 했다고 다 이 병에 걸리는 건 아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확률이 높아진다니 중성화를 고려하는 것도 나쁜 선택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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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화 결정은 주인의 몫
이렇듯 중성화에는 장점과 단점이 모두 존재하며, 그 결정은 개를 기르는 주인의 몫이다. 개의 본능을 존중한다면 안하면 되는 것이고, 개 주인의 편의를 더 우선시하겠다면 중성화를 하면 된다. 다 나름의 상황을 고려해서 내린 결정일 테니 다른 이가 왈가왈부해선 안 되지만,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어디 그런가. “개는 본능대로 살아야 행복하다”는 말부터 “개 주인부터 중성화해라”는 말까지, 인터넷을 보면 중성화를 불편해하는 수많은 말들을 만날 수 있다. 그분들 눈에는 중성화가 개주인만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으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그 말도 맞는 말이지만, 그분들에게 이렇게 항변하련다. 사랑은 원래 이기적인 것이라고.
글·사진 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