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개 부모가 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펫샵만 가도 온갖 귀여운 개들이 유리 진열대에 놓인 채 사람들을 유혹한다. 개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라 가격도 그리 비싸진 않은데, 이 돈이 아깝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 개를 입양했다 파양하는 집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애견 사이트에 잠깐만 들어가 보시라. “저희 개 대신 키워주실 분 없나요?”라는 애절한 외침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유기견 보호소는 어떨까. 이런 곳에서 개를 입양한다면 개 한 마리가 그냥 생기는 것에 더해 ‘천사’라는 칭찬까지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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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한 마리당 1천만원 사육비 든다
하지만 장담컨대 개가 거저 생긴다고 덜컥 입양하면 100% 후회한다. 문제는 ‘구입비’가 아니라 ‘양육비’, 개를 기르는 데는 제법 돈이 든다. 그래 봤자 사람 아이를 기르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기대 수준이 다른지라 개한테 쓰는 돈은 더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먼저 식비를 보자. 개는 사료만 먹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지만, 평생 사료만 먹는다면 개가 얼마나 우울하겠는가? 시시때때로 먹는 간식은 개로 하여금 삶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또 주인에게 충성할 계기를 만들어준다. 다음으로 개 장난감, 생후 7개월쯤 되면 개가 이갈이를 시작하는데, 이때는 잇몸이 간지럽기 때문에 무언가를 물어뜯어야 한다. 이때 개껌이나 기타 물어뜯을 수 있는 장난감을 사줘야 한다. 개는 독감에만 걸려도 죽을 수가 있으니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접종을 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다음으로 미용비가 있다. 최소한 1년에 두 번 정도는 애견 미용실에서 털을 다듬어 줘야 한다. 특히 여름을 앞두고 털을 한번 밀어준다면 좀 더 시원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으리라. 미용비는 대략 5만원 선, 개의 온몸이 털로 뒤덮인 걸 생각하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다. ‘한겨레 애니멀피플’ 보도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20년 동안 개를 기른다면 1마리당 1044만원이 든다고 한다.¹
펜션의 수영장에서 한 남성이 반려견과 수영을 즐기고 있다.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1년에 50만원꼴이니 별로 안 든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건 어디까지나 개 병원비를 고려하지 않은 액수다. 개를 데리고 병원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개 병원비는 비싸다. 왜 개가 사람보다 더 비싸냐고 화를 내는 분들이 있던데, 그렇게만 볼 건 아니다. 사람은 아플 때를 대비해 가구당 10만원이 넘는 보험료를 내고, 그럼으로써 진료비의 30% 정도만 부담한다. 하지만 개를 위한 의료보험은 아직 없는지라 치료비를 전액 부담할 수밖에 없으니, 진료비가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게 아까운 분들은 다음과 같은 선택을 한다. “개 다리가 이상해 병원에 갔더니, 수술비가 50만원이 든다는군요. 안타깝지만 수술을 안 하기로 했습니다.” 수술을 해줬다면 다시 잘 뛰어다녔을 그 녀석은 결국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됐다. 물론 그 개는 주인을 원망하지 않는 눈치던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다. 그 정도 돈도 내주지 않을 거라면 개를 키울 자격이 없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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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만 키울 수 있겠어요?
암수 두 마리를 키우던 노부부가 있었다. 그런데 중성화 수술을 안 하다 보니 자체번식으로 20마리까지 개가 늘어났고, 안 그래도 가난했던 그들에겐 그 많은 개를 관리할 능력이 없었다. 그 개들 중 ‘세찬이’란 이름의 개가 있었다. 그 개는 2년 전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다리가 부러졌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좋았겠지만, 돈이 없었던 그 부부는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절연테이프로 다리를 감아주고 말았다. 나중에 동물자유연대에서 세찬이를 구조할 때 테이프를 조심스레 떼어냈더니 “이미 피부와 근육이 괴사하여 뼈만 남아 있었다.”² 결국 세찬이는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다음 사례는 좀 더 극단적이다. 15년 동안 키우던 개를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린 모녀가 있었다. 그들이 이런 짓을 한 이유는 시름시름 앓는 개를 병원에 데려갈 형편이 안됐기 때문이었다. “차마 개가 죽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살아있는 줄 알고도 내다 버렸다.”³ 네티즌들은 이 모녀를 욕했지만, 비슷한 선택을 하는 분들은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 개가 아플 때 내다 버리는 분들에 비하면 테이프라도 감아주는 노부부가 더 나아 보이지만, 개 기를 자격이 없는 건 다 마찬가지다. 다음과 같은 항의를 할지 모르겠다. “아니, 가난하면 개도 못 키워?”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다만 여기서 ‘가난하다’는 개 치료를 위해 50만원도 쓰지 못하는 이를 가리키며,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개에게 쓰는 돈에 인색하다면 그건 가난한 것이다.
1년에 50만원꼴이니 별로 안 든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한 반려견이 개 전용 케이블 채널인 ‘도그티브이’를 보고 있다. 도그티브이 제공
50만원이란 내 기준이 너무 가혹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자. 개를 아무리 좋아해도 사랑만으로 개를 기를 수 있는 건 아니잖은가? 우리나라는 개의 권리, 즉 견권이 밑바닥이라서 ‘돈 없어도 개를 기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통용되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영국 주택 보험사 ‘네이션와이드 홈 인슈어런스’에 따르면 첫해 반려견 구입비를 포함해 주인이 반려견에게 쓰는 비용은 평균 4791파운드(약 683만원)이었다.”⁴ 자기 개한테 1년에 700만원가량을 쓰는 사람이 개 치료비로 50만원 쓰는 걸 아까워하진 않을 것 같다. 캐나다에 살다 온 내 지인 역시 그 나라에선 돈 있는 사람이 개를 키우는 게 상식이란다. 그래서 말씀드린다. 개를 키우는 데는 돈이 든다고. 개를 키우기 전에 자신이 기꺼이 50만원을 낼 수 있을지 생각해보시라고 말이다.
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