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미니미는 왜 포악해졌을까 ②
‘흑곰’ 괴롭힌 문제견 ‘미니미’의 항변
“윤기 흐르는 네 털…엄마가 빠진 거 같았어
너 때문에 쫓겨날지 모른다 생각이 들더라”
‘흑곰’ 괴롭힌 문제견 ‘미니미’의 항변
“윤기 흐르는 네 털…엄마가 빠진 거 같았어
너 때문에 쫓겨날지 모른다 생각이 들더라”
지난회 요약: 첫째 ‘팬더'와 함께 사는 서민네 가족에 둘째 ‘미니미'가 들어왔다. 미니미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었다. 전문 브리더에게 복 받아 태어난 팬더와 달리 열악한 강아지공장에서 태어난 것. 미니미의 혀가 한쪽으로 치우친 것도 그때문이다. 미니미는 엄마아빠한테 예쁨 받는 팬더에 질투심이 생겨 팬더를 골려주었고, 점점 포악해지기 시작했다. 편집자 주. (관련 기사 ‘서민 교수네 강아지의 슬픈 역사’)
흑곰 (셋째)의 말: 미니미 언니, 나한테 왜 그랬어? 언니는 내가 언니한테 심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난 아직도 원한이 다 안 풀렸어. 내가 이 집에 왔을 때, 난 두 달밖에 안된 어린 강아지였어. 그때 언니는 두 살을 넘긴, 어엿한 어른이었지. 태산처럼 커 보였다고. 그런 언니가 다짜고짜 날 공격했을 때,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짧은 다리로 도망쳐 봤지만, 언니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날 쫓아와 날 괴롭혔지. 물고 굴리고 으름장을 놓고, 그 시절은 내게 악몽이었어. 다시 물을게. 언니,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미니미의 변명: 흑곰아, 정말 미안해. 내가 정말 어리석었어. 너한테 무슨 변명을 한들 네 한이 풀리겠냐만, 그래도 내 말을 조금만 들어주지 않겠니. 너도 알다시피 난 팬더에 이어 두 번째로 이 집에 입양됐어. 개공장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내서인지 난 여기서 사랑받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다. 엄마아빠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발냄새 나는 실내용 슬리퍼를 물고 다녔고, 치약 뚜껑을 앞발로 잡는 묘기를 선보였지. 덕분에 ‘손 쓰는 강아지'라는 칭찬도 들었지. 그런데 난 아무리 노력해도 팬더를 이길 수 없었어.
첫번째 이유가 나의 건강이었어. 어린 시절 제대로 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 탓에 내 몸은 엉망이었어. 턱 관절이 어긋나고 혀가 돌아간 건 지난번에 말했지만, 이것 말고도 문제가 많았어. 우선 난 면역결핍에 따라오는 곰팡이에 걸려 있었어. 눈 주위가 빨간 걸 동물병원에서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는 바람에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했고, 그 뒤로도 꽤 오래 약을 먹었지. 게다가 털이 많이 빠져서 엄마를 힘들게 했어. 다시 얘기하지만 이것도 다 영양결핍 탓이라고.
엄마는 내 털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급기야 오메가3라는 비타민을 먹이기 시작했어. 덕분에 내 털은 원래 있어야 할 윤기를 회복했는데, 웃기는 건 내 드라마틱한 변화를 본 아빠가 엄마한테 다음과 같이 말한 거야.
“여보, 나도 오메가3 좀 먹으면 안될까?”
털도 없는 아빠가 왜 오메가3를 먹겠다고 하는지. 아무튼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이렇게 병치레를 한 건 내겐 감점사유였을 거야. 두 번째로 팬더와 내가 외모 차이가 꽤 난다는 데 있어. 난 그냥 하얀 털인데, 팬더는 검정과 하양이 섞여 있잖아? 내가 귀여운 짓을 할 때도 엄마아빠의 시선은 늘어져 자는 팬더에게 꽂혀 있었어.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다는 걸 난 그때 알았어. 그래도 난 충분히 행복했어. 팬더에게 80의 사랑이 가더라도, 난 20만 있으면 충분했으니까. 견사에서 학대받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이 이상을 바라는 건 사치에 가깝지.
영상-흑곰을 괴롭히는 미니미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새로운 강아지를 데려왔어. 온몸이 까맣고 털에 윤기가 났어. 엄마아빠는 이미 너한테 빠진 듯했어. 이제 난 내가 누리던 20마저 저 녀석과 나눠야 하는구나, 싶었다. 쓸쓸한 표정으로 현관을 향해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데, 엄마가 웃으며 이렇게 말하더라.
“미니미, 집 나가는구나!”
지금은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잘 알지만, 그때의 난 쟤 때문에 내가 쫓겨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 정신이 번쩍 들더라. 어떻게 해서 쟁취한 행복인데, 이걸 포기하겠어? 그때 난 결심했어. 어떻게 해서든지 저 녀석이 우리 집을 떠나게 만들어야겠다고. 내가 너를 괴롭힌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야.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던 네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 오죽하면 엄마아빠가 집을 나갈 때 케이지 안에 흑곰 너를 넣어두고 갔을까? 나중에야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널 구박해도 네가 우리집을 나가는 일은 없다는 것을.
그걸 알고 나니 어느 정도 체념하게 되더라. 넷째(황곰)가 왔을 때는 그러려니 했고, 다섯째 (오리), 여섯째 (은곰)가 차례로 오니까 그저 웃음만 나왔다. 엄마아빠가 혹시 ‘애니멀 호더’(동물 수집벽이 있는 사람)가 아닌지 의심이 된다. 그래도 개가 많아지면 좋은 점은, 심심하지 않다는 것일게다. 하지만 내가 그간 너무 까칠하게 굴어서인지 너는 물론이고 다른 개들도 나랑 어울리는 게 싫은가 보더라. 게다가 이제 나와 비슷한 체구가 된 너는 걸핏하면 내 앞길을 막고 시비를 걸었다. 널 원망하고픈 생각은 없다. 이게 다 내 잘못으로 인한 것이니, 내가 감당하는 게 맞겠지. 지금은 안다. 그 당시 내가 너한테, 그리고 다른 개들한테 했던 행동들이 참으로 어리석었다는 것을 말이다. 사랑에 굶주린데다 따돌림까지 받는 내 신세라니, 결국 난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개가 됐다. 내 몫의 밥을 다 먹은 뒤 다른 개들 것까지 뺏어먹었다. 그러다 엄마한테 야단을 맞곤 하지만, 어쩌겠냐. 마음이 허한데 먹기라도 해야지.
지금 날 보면 그리 살찐 것 같지 않지만, 한번 안아본 사람들은 다들 놀라. “왜 이렇게 무거워?” 살이 찌니 예전처럼 날렵하게 뛸 수 없더라. 요즘은 만사가 귀찮아서 그냥 엎드려 있을 때가 많다. 아빠가 놀자며 공을 던져도 한두번 갔다 오면 기력이 딸린다. 내 나이 다섯 살에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아무래도 내가 인생을 잘못 산 모양이다. 이런 내게도 다시금 너희랑 어울리며 재밌게 노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을까?
흑곰: 네.
미니미: 뭐? 네라고?
흑곰: 개인생 20세 시대인데, 아직 시간 많아요.
미니미: 고맙다, 흑곰아. 흑흑. 이제부터라도 내가 잘할게.
글·사진 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 영상 편집 박선하 피디 salud@hani.co.kr
난 혼자 놀아야 했다. 흑흑.
흑곰이 나를 괴롭히고 있어. 흑곰의 복수야.
나, 미니미의 속마음은 흑곰과 같이 놀고 싶은 거야.
황곰한테도 좀 잘해 줄 걸.
그래도 흑곰이 허리 부상을 입었을 때 찾아준 건 나, 미니미밖에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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