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수네 개가족의 둘째 ‘미니미’. 강아지공장에서 태어난 미니미는 혀가 치우쳐져 있다.
우리집 둘째 미니미는 미운 짓을 제법 한다. 어린 강아지가 입양될 때마다 어김없이 괴롭혔고, 식탐이 있어서 다른 개들의 밥까지 모조리 먹어치워 버린다. 우리집 다른 개들이 잘 짖지 않는 반면 미니미는 걸핏하면 짖어서, 아무리 더워도 창문을 열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이해한다 쳐도, 왜 나한테까지 그렇게 함부로 하는지 모르겠다. 예쁨을 받으려고 내 옆에 왔기에 안으려고 했더니 으르렁거리면서 마구 화를 낸다. 엄마한테는 꼼짝도 못 하면서 말이다. 미니미,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네게 변명의 기회를 줄 테니, 얘기 좀 해보렴.
미니미의 말:
나는 2013년, 경기도의 개공장에서 태어났어. 개공장, 그 이름처럼 개를 찍어내는 곳이야. 팬더(첫째) 등 다른 강아지들처럼 전문 브리더(breeder) 밑에서 태어난 애들은 개공장이 어떤 곳인지 상상도 못 할 거야. 너희들은 번듯한 가정집에서 태어났지? 내가 태어난 곳은 컨테이너 안에 있는 견사(犬舍)였어. 말이 견사지, 아래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자칫 잘못하면 발이 빠지곤 했어. 알고 보니 분변을 치우기 쉽게 그렇게 만든 거더군. 먹는 건 어떤 줄 알아? 그냥 음식물 쓰레기야. 그나마 오래돼서 냄새가 났지만, 그래도 난 먹었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결국 좋은 집에 갔으니 살아난 보람이 있는 셈이지만, 나와 같이 있던 다른 개들은 어떻게 됐는지,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
내 엄마는 나를 낳기 전에 무려 다섯번의 출산을 했었어. 아직 두살밖에 안 됐는데 말이야. 어떻게 그런 줄 알아? 원래 개 발정기는 7~9개월마다 오는데, 개공장 주인들이 엄마한테 발정유도제를 투여한 거야. 이건 좀 쑥스러운 얘기인데, 내가 젖이 좀 커. 그래서 지금 엄마아빠가 “C컵 미니미”라고 놀리곤 하는데, 이건 엄마가 맞은 발정유도제가 모유를 통해 나한테 전해진 결과야. 아무튼 엄마는 잦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몸이 많이 망가져 있었어. 그런데 내가 태어난 지 한달여만에 공장 주인이 다시 엄마한테 발정유도제를 주사하더라고. 그자들에게 엄마는 그저 개를 만드는 도구일 뿐이었어. (눈물) 난 봤어. 임신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 개 한 마리가 어디론가 팔려가는 것을. 아마도 식용으로 팔려가는 거겠지. 몸이 너무 안 좋으면 견사에서 죽을 수도 있을 걸?
혀 치우친 거 들킬까봐, 입 꾹 다물었어
더 큰 문제는 이게 다 근친교배라는 거야. 개공장에서 만들어진 개들은 ‘펫샵’이라는 곳에서 일반인에게 분양돼. 우리가 길가를 지나가다 보면 유리에 든 개들이 보이지? 겉으로는 귀엽고 건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 개들 중 상당수가 이런저런 유전병을 앓고 있어. 고관절이 안 좋다든지, 심장이 안 좋다든지, 이게 근친교배를 해서 그런 거야. 나도 사실 완전히 정상은 아니야. 내 턱관절이 좀 비뚤어져 있거든. 혀도 옆으로 치우쳐 있고. 그래서 지금도 침을 좀 흘린다고. 펫샵에서 엄마(불거북이·서민의 아내)가 나를 보러 왔을 때, 난 펫샵 주인이 시킨 대로 입을 꼭 다물고 있었지. 내 입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엄마가 알까 봐 얼마나 가슴이 쿵쾅거리던지. 그런데 그 보람도 없이 엄마는 나를 다시 내려놓고 펫샵을 나갔어. 난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어. 이 지긋지긋한 펫샵을 탈출할 좋은 기회였는데 말야. 여기서 팔리지 않으면, 난 내 엄마처럼 개공장으로 끌려가야 할지도 몰라. 그런데 말이야, 기적이 일어난 거야. 엄마가 펫샵 문을 열고 다시 왔다고. 그리곤 나를 차에 태웠는데, 거기서 운전석에 앉아있던 아빠를 처음 봤어. 보자마자 알았지. 내 생사여탈권을 쥔 사람은 엄마고, 아빠는 그냥 시다바리라는 것을. 그래서 난 엄마한테만 충성하기로 결심했어.
팬더(위쪽)는 한눈에 봐도 어리숙했지. 한동안 그 녀석을 골려주는 재미로 살았어. 하얀 개가 바로 나 ‘미니미’야.
아무튼 난 그렇게 서민의 집에 입양됐어. 브라보. 이곳은 말 그대로 별천지였어. 좋은 음식에 좋은 숙소, 그리고 엄마아빠의 사랑까지, 모든 개가 부러워하는 걸 다 가진 셈이지. 에피소드 하나 말해줄게. 이 집에서 처음 똥을 쌌을 때, 난 늘 그랬듯이 똥을 먹었어. 개공장 주인이 똥 싸는 것만 보면 두들겨 패는지라 안 싼 척하려고 그런 습관이 생겼는데, 아빠가 그러더라. “미니미야, 똥은 아빠가 치울 테니 앞으론 먹지 마.” 나 그때 눈물 날 뻔했잖아.
서민 아빠를 ‘개무시’하는 이유가 있어
이 집에는 나보다 먼저 들어온, ‘팬더’라는 이름의 개가 있었어. 한눈에 봐도 어리숙한 녀석이었어. 전문 브리더한테서 태어나 고생이라곤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질투심이 생긴 건 당연해. 한동안 그 녀석을 골려주는 재미로 살았어. 자기가 노리는 공을 빼앗으면 어찌나 약올라 하던지. 그때 하도 당해서 팬더는 지금도 날 어려워하지. 하하하. 참, 아빠가 ‘왜 나한테 함부로 하느냐?’고 물었지?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이 집에 있으려면 엄마에게 잘 보여야 하거든. 그런데 내가 아빠한테까지 잘하면 엄마가 뭐라고 생각하겠어? “미니미는 사람한테 참 잘하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서 난 내 충성심을 더 돋보이게 하려고 아빠를 개무시하기 시작했지. 그랬더니 엄마가 더 좋아하더군. 물론 아빠가 나한테 서운하게 한 건 아니야. 그래서 아빠한테 좀 미안한 마음도 있는데, 어쩌겠어? 이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인데. 이크, 할 말이 더 있는데 지면이 모자라네? 못다한 얘기는 다음 주에 할게. 다음 주까지 바이바이.
글·사진 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미니미편’ ②는 17일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