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전 의원 상고심…“검찰, RO 존재 증명 못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의 편향성 확인됐다” 평가 나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의 편향성 확인됐다” 평가 나와
대법원은 2013년 5월 서울 합정동 회합 참가자들이 구성원으로 지목된 지하혁명조직 ‘아르오’(RO)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르오를 사실상 통합진보당 내부의 ‘주도세력’이라고 표현하며 정당해산 결정의 근거로 삼았던 헌법재판소 결정 내용과 엇갈리는 대목이다.
헌재는 지난달 19일 결정 때 내란음모 사건을 정당 해산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로 삼았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회합이 경기동부연합의 주요 구성원 등 피청구인(통합진보당)의 핵심 주도세력에 의하여 개최됐다”, “이 회합은 피청구인의 활동으로 귀속된다”고 밝혔다. 또 “피청구인 주도세력의 다수”가 “이석기가 주도한 국가기간시설의 파괴, 무기 제조 및 탈취, 통신 교란 등 전쟁 발발 시의 후방 교란 수단 등을 논의한 내란 관련 회합에 참석했다”고 했다.
당시에는 서울고법이 이미 아르오의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한 뒤여서, 헌재가 법원 판단보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근거해 해산 결정의 논리를 세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법원 또한 아르오가 실체가 있는 조직이라는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헌재가 성급한 판단을 내렸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헌재는 “우리도 아르오의 실체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헌재는 결정문에서 아르오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합정동 회합을 지목하면서 “이석기가 경기동부연합의 수장 지위에 있는 점이 인정된다”고 했다. ‘아르오’라는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 조직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이 전 의원을 지도자로 지목한 것이다. 헌재는 정당해산심판과 형사사건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더라도 내란음모 사건이 정당해산심판의 계기와 주요 근거가 된 점을 고려하면, 헌재가 대법원 판결을 기다렸다가 결정했어야 한다는 비판에 무게가 실린다.
아르오 조직의 실체뿐 아니라 합정동 회합의 ‘실질적 위험성’에 대한 판단도 헌재와 대법원이 현저히 다르다. 헌재는 “내란 관련 회합”으로 이 모임을 지칭하면서 검찰의 시각처럼 이 모임 전반이 내란음모를 꾸민 것으로 봤다. 합정동 회합 등을 가리켜 “일회적, 우발적으로 민주적 기본질서에 저촉되는 사건을 일으킨 것이 아”니며 “자신들의 시대착오적 신념을 폭력에 의지해 추구하고, 이를 구체적인 실현의 단계로 옮기려 하였”다고 밝혔다. 반면 대법원은 모임 참가자 130여명 중 기소된 7명의 내란음모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고, 그중 단지 2명의 내란선동죄만 인정했다. “1회적 토론의 정도”를 넘어서는 “내란범죄 실행의 합의”를 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인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의 판단은 결국 이 전 의원의 말(내란선동)만 위험했지 당시 모임과 회합 자체는 위험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실체도 없는 ‘주도세력’을 근거로 정당을 해산시킨 헌재 결정의 정당성이 상당 부분 사라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내란음모 사건의 형사재판이 마무리되면서 진보당을 둘러싼 여러 소송도 빠르게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해산된 진보당이 당사자 자격을 잃었다고 판단하고 관련 소송들을 마무리지을 방침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재판장 장준현)는 21일 진보당이 <문화일보>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 소송에서 “정당해산 결정에 따라 이 사건 소송은 종료됐다”고 밝혔다. 원고 자격이 없어져 재판을 진행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현재 진보당이 원고인 소송은 서울고법에 1건, 서울중앙지법에 3건이 남아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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