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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하루를 영원처럼 사는 이들을 보았네

등록 2020-05-11 11:19수정 2020-05-15 17:14

밝은누리를 비롯한 국내외 70여 개 단체와 길벗들이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세기 인류의 죄와 오만이 만들어낸 제국주의 침략과 분단, 전쟁과 생태계 파괴를 성찰하고, 비무장 영세중립을 토대로 한 동북아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순례입니다.

지난 2017년 10월, 한반도 전쟁 위기가 고조되었을 무렵 순례를 시작하여 2020년 7월 1일 1,000일째를 맞습니다. 지금까지 일본, 러시아 등 11개 나라와 70개 도시, 366여 곳을 거치며 근현대사의 아픔과 원통함 서려 있는 곳 찾아 순례했습니다.

2020년 1~2월에는 유럽 공동체들과 평화운동 단체들에 전쟁 없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염원하는 순례 알리고 연대 교류했습니다. 1월 21일부터 2월 1일까지 11박 12일간 92명의 길벗이 두 모둠으로 나누어 순례했습니다. 러시아와 영국을 순례한 1모둠과 덴마크 스웨덴을 순례한 2모둠은 프랑스에서 만나 스위스까지 이어지는 여정 함께했습니다.

코로나 돌림병으로 힘든 시기 보내는 이때, 한반도와 동북어 넘어 지구공동체 생명평화 염원하며 함께 뜻 모았던 유럽순례 기록을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 유럽

1. [러시아, 영국] 하루의 평화를 빚는 사람들

2.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고운 어울림 속에 배움의 길이 있다

3. [생명평화 고운울림 런던·제네바 한마당잔치] 한반도와 동북아의 새로운 시대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 유럽 1]

하루의 평화를 빚는 사람들

― 러시아, 영국에서 만난 밝은 얼굴들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 오른 48명의 길벗과 함께 러시아에서 순례 여정 시작했습니다. 첫 일정으로 시베리아의 푸른 눈이라 불리는 바이칼 호수의 알혼섬을 방문했습니다. 바이칼의 품속에서 온 누리 생명평화 곱게 울리길 기도했던 2018년 여름 이후 다시 이곳을 찾았습니다. 바이칼 정기의 핵이라 불리는 부르한바위를 바라보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차갑게 얼어붙은 호수, 눈 덮인 산과 들, 세찬 바람과 영하 30도를 웃도는 날씨였지만 만물을 깊고 단단하게 만드는 추위 몸에 새기며 기도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간절한 바람 품고 있는 부르한바위가 온 누리에 생명평화 전해주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다음 날 아침, 뜨는 해를 보기 위해 다시 부르한바위를 찾았습니다. 어둠이 걷히고 빛의 기운 머금기 시작한 눈 덮인 산, 들, 호수는 마치 깊은 잠에 빠져있던 생명이 때를 맞아 깨어나는 모습 같았습니다. 빛의 기운 느껴지지만 아직 해는 보이지 않을 때, 바로 그 해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고 춥다는 말 떠올렸습니다. 나의 일상과 역사 현장에서도 가장 어둡고 추울 때 일희일비하지 않고 뜨는 해 기다리는 마음으로 뚜벅뚜벅 걸어야겠다 다짐했습니다. 바이칼 호수에서 대자연의 정기 몸과 마음에 가득 품고 순례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 2018년 여름 이후 바이칼 알혼섬을 다시 찾은 길벗들
▲ 2018년 여름 이후 바이칼 알혼섬을 다시 찾은 길벗들

순례 넷째 날, 모스크바에서 순례 이어갔습니다. 러시아 수도인 모스크바는 예로부터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중심부였습니다. 10월혁명의 중심지이자 국제공산주의운동을 총지휘했던 이곳은 사회주의 운동을 통해 한반도 독립을 꿈꾼 항일애국지사들에게 성지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곳 모스크바에서 길벗들은 1086 한민족학교를 찾았습니다.

1086 한민족학교는 모스크바시 남쪽 베드타운에 위치한 한민족학교로,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한민족교육을 하는 정규 러시아 학교입니다. 현재 고려인들은 7~8세들로, 과거 한국어 사용 금지 등의 이유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이에 따라 정체성도 점차 잃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고려인 중 약 3.5퍼센트만이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 교장인 엄 넬리 선생님은 1992년부터 800명의 학생을 지도했습니다.

엄 넬리 선생님은 1991년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한 후 생김새가 다른 러시아인과는 유창하게 대화하면서 정작 동포들과는 말 한마디 섞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눈물 흘리셨다고 합니다. 이후 모스크바로 돌아와 열심히 우리말 공부를 하신 선생님은 이를 계기로 학교에 방문하는 한국 손님들을 더 잘 맞이할 수 있었고 한국도 여러 차례 방문해 강의하셨다고 합니다. 81세의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교육 현장에서 일하시며 우리말을 지켜오신 선생님의 모습에서 척박한 땅을 성실하게 일구었던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생명과 평화는 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운 뜻대로 우직하게 살아가는 이들로 인해 곱게 울린다는 사실 다시 마음에 새겼습니다.

▲ 길벗들에게 손 흔들어주시는 1086 한민족학교 엄 넬리 전 교장선생님
▲ 길벗들에게 손 흔들어주시는 1086 한민족학교 엄 넬리 전 교장선생님
헤어짐의 아쉬움 뒤로하고 독립운동가 백추 김규면 선생님이 잠들어 계신 노보데비치 수도원 묘지로 향했습니다. 김규면 선생님은 항일투쟁단체 신민단을 창단하고, 교육·종교운동을 통한 계몽활동을 펼치신 분입니다. 선생님의 묘 앞에서 길벗들과 침묵으로 기도했습니다. 이후 함께 동그랗게 모여 생명평화 고운울림 순례노래 불렀습니다. 아픔 깃든 역사 현장에서 정직하고 용기 있게 살아가신 선생님의 뜻과 삶 떠올렸습니다. 러시아 땅에 서 있는 우리도 앞서 걸어간 선배들의 뜻 이어받아 살 수 있기를, 한반도와 동북아 생명평화 꿈꾸며 일상에서부터 그 꿈 일구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 독립운동가 백추 김규면 선생 묘
▲ 독립운동가 백추 김규면 선생 묘

순례 여섯째 날, 노닝턴 켄트에 있는 브루더호프 너도밤나무 마을을 찾았습니다. 브루더호프는 1920년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독일 내전 상황에서 복음을 따르는 삶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한 공동체로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공동체의 믿음과 실천을 기초로 둡니다. 사유재산을 갖지 않고, 함께 일하고 기도하고, 아이들을 기르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푸른 잔디밭과 아름드리나무, 오래된 벽돌집이 어우러진 마을에 들어서자 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공동체 식구들이 보였습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 식구들이 밥 먹고 예배하는 강당으로 들어가 함께 인사 나누었습니다. 모임은 브루더호프에서 해날마다 하는 여느 예배처럼 진행되었습니다. 5학년 이하 아이들이 어린이 예배를 드리러 가고는 길벗들과 브루더호프 식구들이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하거나 자유롭게 발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네 모둠으로 흩어져 이끔이를 해준 브루더호프 벗들을 따라 마을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어린이집, 고등학교, 체육관, 어린이 가구 제작소를 둘러보며 브루더호프의 정갈한 생활방식을 볼 수 있었습니다. 브루더호프에서는 두 해에 한 번 일이 바뀌는데, 어떤 사람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어떤 사람은 가구 제작소나 빨래터, 밥상에서 일합니다. 어린이집에서 6주 무렵부터 아이들을 돌보기 때문에 엄마들은 일하다가 젖을 먹이러 한번씩 들른다고 합니다.

다시 강당으로 모여 브루더호프 젊은이들이 손수 만들어준 피자와 채소 버무리를 먹었습니다. 함께 밥상교제하던 앤 할머니는 우리가 한가족처럼 느껴지고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니 순례를 통해 같은 꿈꾸는 벗들을 만나 마음 나눌 수 있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점심 밥상 후에는 흩어져서 마을을 좀더 둘러보거나 함께 공을 차거나 집에 초대를 받아 교제했습니다. 한층 더 편안해진 분위기에서 다시 한곳에 모인 길벗들과 브루더호프 벗들은 둥그렇게 모여서서 한목소리로 생명평화를 위한 기도를 했습니다.

공동체를 시작할 무렵부터 지금까지 제국주의 침략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며, 일상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며 평화 일구어온 벗들을 만난 시간. 오랜 시간 꿋꿋이 평화를 삶으로 일궈온 이들과 만나며, 마음 나누고 연대할 수 있어 소중했습니다. 벗들의 배웅 받으며 비슷한 마음과 뜻으로 살아가는 벗들이 있다는 생각에 든든했습니다.

▲ 브루더호프 너도밤나무 마을 벗들과 함께한 순례기도회
▲ 브루더호프 너도밤나무 마을 벗들과 함께한 순례기도회
밝은누리 홍천 생명평화마을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민호, 김주은 님의 유럽 기도순례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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