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을 상담하다 보면, 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자율성 침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율성은 한 인간이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서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심리적 힘이다. 자율성이 발달해야만 자기 인생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이 될 수 있다. 부모들이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자녀의 자율성을 침범하고 통제하면, 자녀들은 심리적으로 무력화 된다. 자기 결정력을 갖지 못한 수동의존적인 ‘성인 아이’가 된다. 어른이 되었지만 심리적으로 어린 아이 상태로 살게 되고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된다. 우리 사회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나치게 간섭하고 통제하는 부모들이 많다. 마흔이 넘은 자녀의 결혼 생활에 지나치게 관여해서 이혼까지 하게 된 사례들도 있다. 이는 사랑이 아니라 지배다. 칼 융은 ‘사랑의 반대는 권력’이라고 했다. 사랑은 상대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존중하고 응원하는 것이다. 자녀가 해야 할 결정을 대신 해주고, 부모가 바라는 방향으로 인생을 살아가길 종용한다면, 그것은 자녀가 스스로의 인생을 실현해 갈 힘과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어떤 대학생이 무력감에 시달렸다. 방문을 닫아걸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보며 살았다. 전공에 대한 흥미를 잃어서 휴학하려고 했지만 부모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사실 그 전공을 선택할 때도 부모의 의견을 따랐다. 이왕 선택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응하려고 애썼지만, 학업에 대한 의욕이 점점 없어지고 우울감이 밀려왔다.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그 무엇이 빠져있는 것 같았다. 이 학생은 자기 마음속에 어떤 간절함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껴, 학교를 휴학하고 자기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탐색해 보고 싶었다. 부모는 경제적인 이유로 완강하게 반대했다. 아이가 경험해 보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허황된 생각이라 여겼다.
사람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욕구를 일단 수용·공감해주면, 그것을 하지 않아도 욕구가 해소되는 경향이 있다. 학생은 휴학을 결정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세상 경험을 먼저 해보기로 했다. 여기저기 일자리에 원서도 쓰고 면접도 보았는데, 지원한 곳으로부터 거절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사는 게 신명 났다. 하고자 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시도하며 주도적인 경험을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기력감에서 벗어났다. 자기 자신이 힘이 있다고 느껴지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생기고 즐거웠다. 부모와의 관계도 매우 좋아졌다. 일터에서 일어난 일들을 부모와 나누고 싶어했으며, 갈등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아이의 꿈과 욕구를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으로, 수용하지 않고 통제할 때에는 문을 닫아걸고 대화를 회피했던 아이가 달라진 것이다. 활기찬 아이의 모습에 부모도 덩달아 신이 났다. 아이가 미래를 잘 헤쳐 나갈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자녀들이 스스로 하고자 하는 것, 뜻한 바를 시도하고 경험해 보도록 허용해야 한다. 이는 자녀들을 자신과 다른 인격체로 존중하고 믿어주는 가장 중요한 사랑의 태도이다. 자녀들은 당연히 시행착오를 하고,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면서, 단순한 지식 학습에서 배울 수 없는 삶의 지혜를 터득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행동에 책임지는 주체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자신을 믿어준 부모를 존경하고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글 신선미(가톨릭전진상영성심리상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