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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남에 대한 미움, 내 욕구 돌보란 신호

등록 2022-07-07 14:54수정 2022-07-07 15:04

[빛깔 있는 이야기]
픽사베이
픽사베이

어느 날 몹시 지친 채로 지하철을 탔다. 빈 자리가 남아있길 간절히 바랐지만 한 자리도 없었다. 마침 어떤 젊은 여성이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있는 모습이 내가 보기엔 곧 내릴 준비를 하는 듯했다. 나는 잽싸게 그 쪽으로 갔다. 그런데 그 여성은 바로 내리지 않았다. “곧 내리겠지!” 하는 기대로 서있는데 그 여성은 가방에서 다시 핸드폰을 꺼내서 보기 시작했다. 몇 정류장이 지나갔지만 그 여성은 영 내릴 기미가 안보였다. 내 뒤쪽을 둘러보니 몇몇 사람들이 줄줄이 내리고 그 앞에 서있던 사람들은 다 자리를 잡아 앉았다. 나는 인내의 한계를 느끼면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내릴 듯 내리지 않는 그 여성이 밉기까지 했다. 결국 나는 지하철을 타고오는 내내 서서 오게 되었고 몸과 마음이 매우 지친 채로 귀가했다. 조용히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에 아무런 잘못이 없는 여성을 순간이나마 미워했던 내 마음을 반성했다. 그 여성에게 들었던 미운 마음은 내가 많이 지쳐 있었기에 자리에 앉고 싶었던 절박한 욕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러고 나니 그 여성에게 미안했다. 그 여성도 고된 하루를 보내고 귀가하는 길이었을 터인데 말이다.

어떤 부인은 자기 남편이 미운 행동을 너무 많이 해서 괴롭다고 했다. 맛난 음식이 조금 남았을 때 이 부인은 아들이 먹기를 바라면서 양보를 하고 있으면 남편이 얼른 먹어버린다는 것이다. 이 여성은 자기 남편이 가족들에 대한 배려가 없고 자기 중심적이라고 생각했다. 자기는 늘 이것 저것 포기하고 사는데 남편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다니는 모습이 몹시 얄밉다고 했다. 부인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이 부인이 괴로워하는 남편의 미운 행동이란 자기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행동이거나, 자기처럼 해주기를 기대하는 행동이다.

미움은 적개심과 한 쌍이다. 상대를 마치 원수처럼 여기며 분개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적개심은 상대가 내가 원하고 기대하는 것을 해주지 않았고, 나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생각하거나, 그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는 관점에서 생기는 미움의 감정이다. 이 미움의 뿌리로 내려가 보면 대부분 자신의 좌절된 욕구가 있고, 그 욕구를 상대가 채워 주기를 바라는 의존심이 있다. 이러한 의존심은 대부분 아동기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부모에게 받아야 할 것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과보호 되어서 성인이 된 뒤에도 어린 아이처럼 타인이 나를 돌보고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의 상태다

특히 가장 가까운 배우자, 자녀, 부모에 대한 미움은 대부분 이 의존심 때문에 생겨난다. 의존심이 많을수록 ‘내가 그들에게 잘 해주면 그들도 나에게 잘하겠지’ 혹은 ‘내가 바라는 대로 저들이 행동해야 한다’ 하는 등의 무의식적인 기대들이 있고, 정작 자기 자신의 욕구는 스스로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기를 돌보지 않으면서 타인을 돌보고 희생하는 사람들은 그 행위 뒤에 타인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자 하는 숨은 동기가 있다. 자기 희생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정신이 독립적인 사람일수록 자기의 욕구는 자기가 돌본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돌보고 만족하기에 상대로부터 받고자 하는 기대가 적고 상처받아 미움이 생기는 일도 적다. 타인을 돌보고 나눌 때는 기꺼이 하고 되돌려 받으려는 의도가 없다.

헨리 나우웬 신부는 ‘이웃에 대한 적개심에서 환대하는 마음으로 ‘발돋움’ 하는 것이 영적 성장’이라고 했다. 미움은 우리의 영혼을 어둡게 하고 참된 본성인 사랑과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환대는 흔히 손님에게 하는 행동이다. 손님에게는 의존하지 않으며, 내 식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친절하게 대하고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존중한다. 타인을 원수로 보지 않고 미움을 갖지 않으려면 상대를 내 욕구를 충족시켜줄 대상으로 바라보는 의존심을 거두고 자기 욕구를 돌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신선미/가톨릭전진상영성심리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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