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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다람살라 남걀사원

등록 2005-10-31 11:15

티베트 망명정부 남걀사원 수행스님들 분노는 누구에게 이익인가 나인가 상대인가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기차로 3시간, 버스로 10시간. 길가에서 이방인을 반기는 원숭이들의 환영을 받으며 히말라야의 초입을 거쳐 '호랑이가 산다'는 알림 표지판을 지나 천길 낭떠러지 위를 돌고 돌다보면 범속(凡俗)의 경계는 이미 없다. 다람살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달라이라마의 궁전과 나란히 서 있는 남걀사원. 티베트 망명정부 지도자 달라이라마를 스승으로 따르는 스님 300여명이 수행하고 있는 달라이라마의 개인 사찰이다.

나라를 잃고 인도땅으로 온 티베트인들의 고달픈 삶이 창문 사이로 드러나는 사원의 한 골방에서 티베트불교의 수행지침서인 보리도차제론에 따라 수행하는 랑왕 또뗀(31.불교학 박사) 스님.

그는 티베트불교 4개의 종파 가운데 달라이라마가 수장으로 있는 게룩종(황모파)의 종립대학격인 인도 벵갈로우의 세라승원에서 무려 13학년 과정의 대승교학과정을 마치고, 지난해 스승 달라이라마를 찾아 이곳에 왔다.

학교에서 티베트인들의 고통받는 삶의 현장 속으로 돌아온 그에게 불법은 더이상 '빛바랜 책 속의 문자'가 아니다. 그에겐 고통스럽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을 해결할 돌파구다.

또뗀 스님의 삶은 다른 티베트인들 못지않게 아팠다. 600여만명의 티베트인 가운데 무려 120만여명이 목숨을 잃은 1959년 중국군의 티베트 침공 때 8명의 형제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뒤 중국군에 대한 깊은 상처와 원한을 안은 채 가슴앓이를 하던 부모의 모습을 그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피폐화된 고향 캄에선 공부할 기회가 없던 그가 티베트를 탈출한 것은 13살 때. 차를 타고 사흘 동안 달려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도착한 뒤 다시 대상로를 따라 히말라야를 넘었다. 낮엔 중국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숲속에 숨었다가 밤에만 산을 3개월 동안 탄 끝에 인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몇년 전엔 고향 사람으로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쯤 되면 그의 마음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지옥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노가 스며들려 할 때마다 그는 티베트의 기본 명상수행법인 비로자나칠법에 따라 결가부좌로 앉는다. 이어 호흡을 하나둘씩 세며 마음을 번뇌와 망령이 없는 투명한 유리처럼 비운다. 그리고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긴 세월을 반복해온 자신과 중생들의 고통스런 윤회를 인식하며, "지금이야말로 집착에서 벗어날 때"라고 생각한다.

관자재보살의 화신으로 굳게 믿고 있는 스승 달라이라마의 사진을 문위에 걸어놓고, 지극한 존경을 나타내곤 하는 그는 티베트의 전통대로 스승을 삼보(불.법.승)를 실현하는 불법 자체로 믿고 '깨달음의 교과서'로 삼는다.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나을 뿐이므로 어떤 경우에도 자비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스승 달라이라마의 모습을 관하며, 그 자비로운 보리심에 흠뻑 젖은 또뗀 스님이 드디어 눈을 떴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티베트인들이 티베트에 불법이 들어오기 전 당나라를 함락하고, 주변국들에 대한 침략을 일삼고, 또 현대사에 들어와 세상이 변하는데도 아무런 준비를 못한 과보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지요.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인과의 법칙을 알았기에 다시 증오의 씨앗을 심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남걀'(法勝)이란 이름대로 불교의 인연법은 분노의 불길을 눌러 이긴 듯했다.

칼라차크라를 수행중인 자도 둘꾸(46) 스님. 그도 아픈 과거를 간직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세살 때 고향인 티베트의 남소카에서 출가한 그는 59년 중국 침략 직후 스님들의 손에 이끌려 티베트를 탈출했다. 그러나 그때 미처 탈출하지 못한 14명의 스님이 손이 뒤로 묶인 채 중국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을 지난 81년에 듣고, 가슴이 미어져 내렸다. 그가 수행중인 무상유가(요가)는 티베트밀교 수행의 마지막 단계. '자신이 곧 본존불'임을 자각한 뒤 신체적 에너지의 흐름을 조절해 몸 자체를 부처로 바꾼다는 과정이다. 에너지를 차크라로 모으는 둘꾸 스님에게서도 분노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분노가 누구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가. 내게 이익이 있는가. 상대에게 이익이 있는가."

히말라야의 만년설에 반사된 빛처럼 밝은 법열의 환희가 그의 얼굴에서 피어난다. 또뗀 스님의 하루는 중국인을 위한 기도로 맺는다.

"그들이 번뇌와 집착을 떠나 다시는 업을 짓지 않을 '깨달음'을 얻게 하소서."

그의 기원은 히말라야에 메아리로 울려 세속을 향한 물음이 된다. 과연 누가 승리자이며, 누가 큰 자인가. 히말라야 다람살라/글.사진 조현 기자 cho@hani.co.kr (한겨레신문 2000년 7월 10일자)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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