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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인도 둥게스와리

등록 2005-10-28 23:02

JTS 인도 둥게스리 지이바카병원 개원 노예사슬 풀어준 이국불자의 공양 2500여년 전 붓다가 '중생 구제'를 위해 왕위마저 버리고 6년 동안 고행을 한 뒤에도 여전히 중생의 고통스런 신음이 그치지 않던 땅 둥게 스리. 주검을 갖다 버리던 숲인 시타림을 찾아 석가모니가 수행했던 바로 그곳이다. 부다가야 시에서 1시간 남짓 거리지만 인도의 최하층민인 '불가촉천민'(하리잔)들이 살고 있어 일반인들은 접촉하기조차 꺼리던 이곳에 지난 10일 인도인들의 눈과 귀가 모아졌다.

학교는커녕 경찰이나 군인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버려졌던 이곳에 수자타 아카데미가 세워진 지 7년. 함께하는 모임(JTS, Join Together Society)과 이곳 사람들이 힘을 합쳐 지은 지이바카병원이 개원한 이날 이곳엔 인구 7천만명의 인도 비하르 주의 라브리 데버 총리 내외와 각료들이 총출동한 것을 비롯해, 타이의 세계적 불교환경운동가 슐락 시바락샤 박사와 인도에 머무는 각국의 스님 200여명 등 2만여명의 인파가 모여들었다.

전화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천민촌에 학교가 세워진 지 7년 만에 30병상 규모의 병원까지 들어서자 방문객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문맹률 100%에 결핵이나 콜레라가 휩쓸 때면 여지없이 떼죽음을 당하기 일쑤였던 이곳에서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수자타 아카데미가 들어선 7년 전까지만도 떼로 몰려다니며 성지 순례를 오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박시시'(구걸)를 하던 아이들의 변화다.

정토회 법륜 스님이 7년 전 성지 순례를 위해 이곳을 찾았을 때 300여명 아이들이 둥게 스리 산 들머리부터 석가모니가 고행했던 유영굴까지 수천 미터를 늘어서서 구걸하는 것을 보고 "왜 아이들이 학교에 갈 시간에 학교에 가지 않고 거리에서 구걸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어도 학교가 없다"고 답했다. 이곳은 행정과 치안뿐 아니라 교육에서도 완전히 소외된 버림받은 땅이었다.

붓다가 수행한 땅의 비참한 실상을 본 그는 산 아래 둥가 푸르 마을 사람들에게 "학교를 지을 땅을 내놓는다면 벽돌은 제공하겠다"고 제안했고, 이 마을 사람 4명이 흔쾌히 땅 450평을 기증해 갑작스레 학교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말한마디 통하지 않는 이곳 마을에서 염소가 쓰던 헛간 한 칸을 빌려 잠을 자며 마을 사람들과 학교를 짓던 법륜 스님의 고초는 적지 않았다. 굶기를 밥 먹듯 하는 그들과 24시간을 함께 보내며 집을 짓다 보니 허기가 져 하늘이 노랗게 보이곤 했다.

처음엔 4칸으로도 충분하리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학교를 열자 학생들이 늘기 시작했다. 구걸에만 익숙한 아이들을 학교에 길들이기 위해 사탕 등 먹을 것과 옷도 나눠 주고, 따뜻하게 감싸주자 너도 나도 몰려들어 건물을 2층으로 올려야 했다.

더구나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학생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바람에 이들을 돌보는 유치부가 생겨났다. 너무 어린 아이들은 이곳 학교까지 걸어올 수 없어 마을들에 하나둘씩 유치원을 만들다 보니 이제 유치원만도 11개로 늘었다. 대부분 아이들이 아침을 굶고 오는데다 점심도 싸오지 않아 허기진 배로 정상적인 수업이 불가능해 학교에선 점심을 주어야 했다.

특히 심한 영양실조로 온갖 병에 시달리는 아이들과 주민들이 병에 걸릴 때는 학교를 찾아와 학교는 자연스럽게 응급병원이 되고 말았다.

이런 일들은 제이티에스에서 파견된 이덕아(32), 장정임(29), 이화승(43)씨 등의 몸을 돌보지 않는 헌신으로 가능했다. 5년 전에 이어 2년 전에도 총과 칼로 무장한 30여명의 떼강도가 침입해 이들은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는 이들의 헌신적인 자세는 수천년 동안 '노예'의 삶을 당연시하던 이곳 사람들의 삶을 깨웠다. 7년 전까지 구걸을 하던 아이들은 이제 수자타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낮에는 마을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엔 학교에 다시 모여 중학과정을 공부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귀천이 정해진다'는 운명론의 사슬에 묶여 있던 이들은 거지에서 교사로 변화한 스스로의 모습에서 '삶의 주인'은 바로 자신임을 체득해가고 있었다.

지이바카병원 개원을 앞두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밤을 잊은 채 땀을 흘리는 이들의 모습에서 수천년 동안 강요되어온 노예의 삶을 벗어나는 활력이 생생히 전해진다. 아이들도 "이젠 박시시는 하지 않고 공부를 한다"며 해맑게 웃는다.

제이티에스의 노력은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하층민과의 공존을 거부한 인도의 상층부 사람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3000여개의 계급 가운데 최상층 계급에 속한데다 대학원까지 졸업한 뿌리얀카는 보수적인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년 전부터 수자타 아카데미의 교장을 맡아 헌신하고 있고, 10명의 교사들도 봉사에 가담했다. 부다가야 시의 의사 8명도 지이바카병원에서 무료 봉사에 나서고 있다. 천민들을 멸시하며 얼굴도 마주하지 않던 이들이 불가촉천민 마을에서 '함께 행복해지는 삶'을 가꾸고 있는 것이다.

라브리 데버 주 총리도 "비하르 주보다 훨씬 작은 나라에서 이곳까지 와 돕고 있다"며 부끄러움을 표한 뒤 "이곳에 길도 뚫고, 전화와 전기도 놓아 빈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죽어가는 고타마 싯다르타에게 우유죽을 공양해 큰 깨달음을 얻게 한 소녀 수자타, 붓다의 몸을 돌 본 주치의 지이바카. 붓다는 왕위마저 버리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버린 이곳을 찾아 '중생 구제'의 대도를 위한 고행을 했고, 한국의 불자들은 세상으로부터 가장 천하게 버림받은 그들을 붓다처럼 공양하고 나섰다.

수상도 스님도, 둥게 스리의 사람들도 귀천 없이 모두가 주인이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다시금 말해주듯이 붓다의 산이 이들을 차별없이 공평하게 감싸고 있었다. 인도 둥게 스리/글.사진 조현 기자 cho@hani.co.kr (한겨레신문 2001년 1월 26일자)

붓다 가르침 따르는 'JTS'94년 결성 민간기구 기아.문맹퇴치 벌여 '굶는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병든 자는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때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함께하는 모임(JTS)은 지난 1994년 법륜 스님의 주도로 결성된 민간기구로, 국제 기아와 질병, 문맹 퇴치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과 미국, 중국, 인도에 각각 본부를 둔 이 모임은 북한 어린이결연사업과 인도 둥게 스리 돕기사업을 하고 있다. 둥게 스리에선 수자타 아카데미와 마을 유치원, 지이바카병원을 운영하는 것 외에도 마실물조차 없는 마을들의 식수 개발과 주민 자립을 위한 마을개발 운동을 함께 전개한다.

비용은 국내외의 후원자들의 성금과 매년 인도 성지순례에서 아낀 비용으로 충당하고 있다. 매년 겨울 15박16일의 인도성지순례는 여행사 가이드 대신 무료 봉사에 나선 제이티에스 실무자들이 이끈다. 순례객들도 먹을 것과 침낭을 참여자가 모두 갖추는 '자린고비' 작전을 펴며, 부처의 삶과 진정한 가르침을 되새긴다. 지난 5~20일 동안 진행된 12차 순례엔 118명이 참여했다. 이들이 아낀 비용 3천만~4천여만원은 수자타 아카데미와 지이바카 병원의 운영비로 쓰인다.

돌부처를 향해 복을 비는 기도나 절이나 탑을 세우는 공양만이 성황을 이루는 현실이다. 무엇이 석가모니의 진정한 가르침일까.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날 아난다는 "이제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면 누구를 따르고 공양을 올려야 복을 얻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석가모니는 "중생들이 굶주리면 음식을 공양하고, 병들어 고통받으면 보살펴 편안하게 하고, 가난하고 고독한 자에겐 함께하고 보호해주고, 청정하게 수행을 하는 이를 공양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 제이티에스 (02)587-8995. http://ns.jts.or.kr 조현 기자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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