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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사르보다야

등록 2005-10-28 22:06

스리랑카 사르보다야민족.종교는 달라도 함께 일하고 나눠 증오의 `바다'에서 건져올린 '희망'

우리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푸른별 지구는 언제까지 그 푸름을 지킬 수 있을까. 서로 밀치고, 미워하고, 싸우고, 죽이는 삶밖에 다른 선택의 길은 없을까.

지난 수천년 동안의 변화보다 더욱 극심한 변화의 시대에 물질과 소비, 경쟁 위주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로 새로운 공동체를 가꾸는 이들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갈등을 넘어 상생하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세계의 공동체 현장을 찾아가 본다.

지난 15일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북동쪽으로 한나절을 달리자 정글 여기저기에 뛰노는 원숭이들과 야생 코끼리의 무리가 눈에 띄었다. 길 안내인은 타이거도 있다고 했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밀림을 주시하던 한참 뒤에야 그가 말한 타이거는 호랑이가 아니라 스리랑카의 반군인 타밀 타이거를 일컫는 것임을 알았다.

다시 한나절을 달려 분쟁지역인 북동쪽 끝 인도양변의 트링코 말리에 들어서자 완전무장한 군인들의 눈길이 싸늘하다. 지난달 스리랑카의 관문인 콜롬보 공항을 타밀반군이 점거하는 사태가 난 뒤 분위기가 더욱 살벌해진 듯하다.

길가엔 지붕이 성한 집이 별로 없다. 타밀반군을 소탕하기 위한 정규군의 폭격 때문이다. 평화의 사도일까. 철조망을 두른 난민학교엔 사슴 한마리가 찾아와 불안한 아이들을 위로하는 듯하다.

"아이보온!" 어린아이들이 검은 눈을 반짝이며 인사한 곳은 익발라유치원이다. 사르보다야 운동으로 생겨난 이 유치원이 아니었다면, 죽고 죽이는 살육이 되풀이되는 이곳에서, 더구나 비주류인 타밀족 이슬람교도 마을에서 38명의 아이들이 유아교육의 혜택을 받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방인에게 경계의 눈빛을 감추지 못하며 울음을 터뜨리고만 남자아이를 달래는 에 루피아 선생님은 사르보다야 운동본부에서 실시하는 한달 남짓의 교사 훈련을 받고 이 유치원에서 봉사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봉사하는 이유는 그저 아이가 좋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선 수입이 없는 그는 오전 8시30분부터 11시30분까지 아이들을 돌본 뒤 집에 돌아가 염소를 기른다. 사르보다야 운동으로 이 마을 주민들이 만든 마을금고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돈으로 염소를 사서 생계를 유지하며, 이렇게 봉사를 계속한다.

분쟁으로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가 온갖 상처를 안고 3년 전 이곳에 정착한 뒤부터 이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 마을 285가구 사람들은 부녀회, 농민회, 청년회 등을 조직해 사르보다야 공동체를 가꾸고 있다.

트링코 말리의 56개 마을을 비롯해 스리랑카 전체 촌락 가운데 절반이 넘는 1만3천여 마을이 이 운동에 동참한다. 해변에서 82가구가 사는 비란 촐렉 마을도 이 가운데 하나다. 언어와 종교, 문화까지 달라 잘 섞여 살지 않는 스리랑카의 다수족 싱할라족과 소수민족 타밀족이 이 마을에선 함께 산다. 이미 마을 공동의 양식어장을 꾸리고 있는 이 마을에서 2주일 뒤부터는 청소년들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도록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 분쟁지역 안이지만 정작 이들에겐 민족적 갈등보다는 공존이 더욱 익숙한 듯하다. 스리랑카 어디서고 가장 익숙한 것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내놓은 슈라마다나(노동의 선물)다.

"허이야, 허이야 .." 구릿빛 어부들이 함께 힘을 합쳐 그물을 건져올리며 내는 화음이 인도양의 물결과 더불어 춤춘다. 슈라마다나는 새로운 '공동체 운동'이 아니라 이기심과 경쟁심으로 잃어버렸던 원래의 우리 고향 모습을 되찾아가는 운동은 아닐까.

이 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자발적으로 노동력과 시간, 기술, 에너지를 서로 나눔으로써 함께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이들은 힘을 모아 하루아침에 풀밭을 학교 운동장으로 만들기도 하고, 평생 움막에서만 살던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집을 지어주기도 한다. 사르보다야 운동본부는 마을지도자와 유치원 교사를 교육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마을개발, 직업훈련, 마을금고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각 마을이 스스로 살길을 찾도록 돕고 있다.

의식주 등 기본적인 삶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돕는 것만이 사르보다야 운동의 목표는 아니다. 인근에 1600여명의 난민들이 1993년부터 470여가구의 집단캠프를 조성한 알리스 가든. 유엔난민기구의 지원을 받아 난민들의 의식주를 돕는 사르보다야 운동본부는 다민족, 다종교의 이들이 마음의 오염을 씻고 깨달음과 평화를 확산시키도록 평화프로그램을 펼친다. 난민들의 불행은 민족 간의 갈등에서 초래됐다. 이들은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일을 하고 어울리며,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3개월 전엔 이 캠프에서 불교와 이슬람교, 힌두교, 기독교 등 각기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세상을 밝혀가자'며 램프에 불을 켜고, 기도를 드렸다.

슈라마다나를 통해 함께 만든 우물 6개 가운데 가장 낡고 오염된 한 우물의 보수를 위해 벽돌을 쌓아놓고 물을 퍼내 목욕하는 난민들 속에서 굳이 종족을 가르는 것은 쉽지 않다. 난민 실루리치는 "우리는 한 우물을 마시는 가족"이라며 웃는다.

갈등은 이들을 낙원에서 추방했지만, 다시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고 있다. 트링코 말리(스리랑카)/글.사진 조현 기자 cho@hani.co.kr (한겨레신문 2001년 8월 30일자)

스리랑카 민족분쟁 해결위한 '평화 행동계획' '폭력 사라질때까지 명상.실천을' 1999년 8월 콜롬보의 비하르 마하 데비 공원엔 무려 17만명이 모여 명상을 했다. 민족 분쟁의 와중에서 고통받는 '인도양의 눈물', 스리랑카에서 명상을 통한 민중의 '평화 창조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이다.

성직자 복장을 한 종교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화를 상징하는 하얀 옷을 입고 와선 아리야라트네 박사의 인도로 명상에 잠겼다. 이들은 먼저 마음을 자비심으로 채운 뒤 가족과 친구와 적에게까지 자비심을 보냈다.

99년 이래 지금까지 20여 차례의 대규모 명상 집회 참석자는 다수족이자 불교도인 싱할라족이 대부분이지만, 타밀족과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기독교도도 함께 했다. 이들은 스리랑카를 고통의 늪으로 몰아넣은 폭력적 마음을 자비심으로 바꾸었다.

16세기 초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침략을 받아 1815년 주권을 잃은 스리랑카는 19세기 중반 영국의 커피농장 개발로 남인도의 타밀족들이 대거 이주함으로써 민족 갈등이 시작됐다.

1948년 국권회복 이후 집권 자유당이 56년 싱할라어를 공용어로 정하고, 72년엔 불교에 준국교적인 지위를 부여하자 타밀족들이 타밀 이라무국으로의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나섰고, 83년 반타밀 폭동으로 타밀족들이 희생된 뒤 타밀족이 무장 투쟁에 나선 이래 6만여명이 죽고, 100여만명의 난민이 생겼다.

사르보다야 운동은 이런 민족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고 폭력 종식을 위해 '500년 평화 행동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500년 간 폭력의 그루터기를 완전히 뿌리뽑기 위한 이 계획은 원년인 올해 모든 전쟁관련 폭력을 즉각 종식하고, 2005년까지는 정부군과 타밀반군이 동시에 전국적인 재각성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들은 싱할라, 타밀, 이슬람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평화캠프, 상대방 언어교육, 마을교환방문 프로그램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100만명이 평화명상에 참여하고, 이 가운데 20만명이 매일 아침 저녁 한시간씩 명상을 통해 자비심을 모든 이에게 내보내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또 국민적 깨달음을 지도할 500명의 각성자를 배출할 원대한 꿈도 세워두고 있다.

아리야라트네 박사는 "'싱할라인들이 우리를 죽이려 한다'거나 '타밀 반군이 우리를 죽이려 한다'고 위기감과 전쟁을 부추기는 이들은 갈등을 기반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 지도자들과 언론 등 전체의 1%도 안 되는 수"라며 "싱할라군과 타밀군 간의 싸움이 아니라 이런 극소수의 폭력세력과 폭력에 반대하는 99%의 민중들과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조현 기자

사르보다야 운동이란일 생각 에너지 나눠 모두를 위한 깨달음 얻기 사르보다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모두의 깨달음'이란 의미로 간디가 붙인 이름이다. 슈라마다나는 '노동의 선물'이란 뜻이다.

'나'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일과 생각과 에너지를 나눔으로써 깨달음을 얻고, 행복한 공동체를 이뤄가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인위적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스리랑카 전통적 촌락에서 이상적인 사회를 가꾸어간다. 사르보다야 운동은 물질적 성공에 집착해 전통적인 공동체성과 행복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마을개발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는 셈이다.

간디와 비노바 바베의 비폭력 정신을 본받아 이 운동을 창시하고, 현재 세계종교회의(KCRP) 대표를 맡고 있는 아리야라트네 박사(사진)는 모두의 이익을 위해 함께 일할 때 깨달음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이 운동도 그가 콜롬보의 불교대학인 나란다대학 교수로 일하던 1958년 학생들과 함께 슈라마다나 캠프를 만들어 가난한 마을을 도우면서 비롯됐다.

사르보다야 운동은 5단계로 마을 개발을 실현해 간다. 먼저 슈라마다나 캠프를 만들어 공동체 정신을 공감하게 하고, 다음으로 부녀회, 청년회, 노인회, 어린이회, 농민회별로 훈련을 실시한다. 3단계는 마을위원회를 구성해 마을 단위의 사르보다야 공동체를 출범시켜 마을에서 시급한 일부터 함께 해간다. 4단계엔 수입을 올리기 위한 직업훈련을 하고, 마을신용금고를 만들어 자활을 도모한다. 5단계엔 마을 단위에서 벗어나 다른 마을과 협력하며 지역사회 운동을 벌이도록 한다. www.sarvodaya.org, ssmplan@sri.lanka.net 조현 기자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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