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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개신교 반석 위에 올려놓고 교회의 소금으로

등록 2011-03-24 10:35

[유럽 종교개혁지를 찾아서] <3> 개혁도 개혁한 칼뱅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좌우명

목사·교사·장로·집사 체계로 성직자 독단 차단 

 

 

국제적십자사, 국제노동기구, 세계보건기구, 국제연합 유럽본부 등 200여 기구의 본부들이 있어서 ‘국제기구의 수도’라 할 만한 제네바.  ‘가톨릭의 수도 로마’만큼이나 개신교에서 중요한 도시다. 

 

칼뱅이 제네바를 ‘프로테스탄트의 로마’로 만들기 위해 설교한 성피에르교회 아래쪽  바스티옹공원에 이르니 칼뱅의 석상이  ‘종교 개혁’의 세 동지와 서 있었다. 훤한 이마와 깊게 패인 눈, 흰 수염이 일상적 삶 속에서 경건한 영성을 구현하려 했던 ‘영성가이자 실천가’인 칼뱅의 풍모를 엿보게 한다. 바스티옹 공원 옆엔 칼뱅이 설립한 제네바아카데미(제네바대학)가 있다. 칼뱅의 종교개혁을 유럽에 전파한 사관학교다.

 

 

‘움직이는 종합병원’으로 병약하고 비사교적

 

암울한 시대 상황과 어두운 교회 현실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아는 칼뱅은 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칼뱅은 움직이는 종합병원으로 불릴 만큼 병약하고 비사교적이며 과묵했다. 그래서 사회적인 활동가로서보다는 홀로 학문하기를 좋아했다. 칼뱅은 그런 책상물림이었지만 시대의 어둠을 외면할 수 없어서 힘겨운 몸을 이끌고 세상 속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양심가였다.

 

칼뱅은 자신의 건강이나 성향으로 보아 실천적이기보다는 홀로 학문하기를 즐겼지만 그의 아우라를 감지한 지인들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주도하고 있던 파렐은 <기독교강요>라는 탁월한 저서를 쓴 이가 제네바를 지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찾아가 ‘제네바의 종교개혁에 동참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이라는 협박’을 하며 칼뱅을 끌어들인다. 훗날 스트라스부르에서 목회하며 한 미망인을 만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생애를 보내면서 조용히 살려던 칼뱅에게 “제네바의 돌들이 소리칠 때까지 거기에 있을 것이냐?”고 협박해 다시 끌어들인 것도 파렐이었다.

 

제네바에서 엄한 교회 규율과 제도를 정비한 칼뱅은 제네바 시민에게도 엄격한 신앙생활을 요구했다. 당시 가톨릭 교회의 부패상을 목도한 칼뱅이 성직자의 독단적 폐해를 막기 위해 목사·교사·장로·집사 등 4개 직분의 현 장로교 체계를 만든 것도 제네바였다. 이런 칼뱅을 통해 ‘종교 개혁 정신’은 마침내 개신교의 제도로 정착했다. 하지만 칼뱅은 개혁가였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cia semper reformanda)는 칼뱅의 구호는 부패하는 교회의 소금이 될 예언자들을 지금까지 깨우고 있다.

 

 

 

루소도 키워낸 제네바, 관용과 조화의 상징

 

칼뱅의 ‘개혁 요구’대로 제네바는 ‘칼뱅 시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개혁된 것일까. 레만호수 안쪽으로 몽블랑 다리를 건너니 루소섬이다. 제네바가 키워 프랑스 인권 혁명의 뿌리가 된 장자크 루소(1712~78)를 기리는 섬이다. ‘종교의 시대’를 깨운 계몽사상조차 날려버리고,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라던 홉스의 사상도 거부하며 ‘우정과 조화의 인간 회복’을 주창한 루소의 영향일까.

 

제네바는 다툼과 갈등으로 인해 140여개 교단으로 분열된 한국의 장로교단과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개신교인들 뿐만 아니라 가톨릭과 불교 등 다른 종교들과 150여개 나라 국민들과 200여개 국제기구 관계자 등 18만여 명이 관용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토록 평화로운 스위스 사람들이 몇백년 전까지만 해도 주변국의 전쟁에 ‘용병’으로 참여해 받은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싸움 선수들’이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제네바 시민들을 지배하는 건 500년 전 칼뱅의 ‘경건성’은 아니다. 마치 모든 거리가 유명 패션쇼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제네바인들의 옷차림은 세련미가 넘치면서도 어디서나 평화로운 미소를 마주할 수 있다. 세상도 교회도 때때로 개악되거나 개혁된다.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제네바 국제연합 유럽본부 안에서 만국기들이 평화롭게 나부끼고 있었다.

 

 

제네바/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프랑스 출신으로 망명한 ‘장로교의 아버지’

 

한국 개신교회와 신자 수의 70%의 이상을 차지하는 장로교의 아버지는 장 칼뱅(1509~64)이다. 우리에겐 ‘칼빈’(영·미권 호칭)으로 익숙한 인물이다. 그래서 칼뱅은 한국교회에서 예수 다음으로 유명하다고 할 정도다.

프랑스 출신으로 신학과 법학을 공부한 그는 불과 23살에 세네카의 <관용에 대하여>에 대한 해석을 발표해 인문주의자로서 학문적 재능을 인정받은 데 이어 25살에 복음주의 개신교의 고전 <기독교강요(綱要)>(Institute christianae religions)를 썼다.  <기독교강요>는‘ 가톨릭으로부터 모략당하고 박해받는 프로테스탄트 복음주의자들의 무고함을 프랑스 황제에게 탄원하는 서문에 이어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24살 때 종교개혁적 입장을 옹호한 니콜라스 콥의 파리대학 학장취임 연설의 작성자로 지목되자 생명의 위협을 느껴 조국을 떠나 스위스로 망명해 제네바에서 ‘개신교의 제도’를 정비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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