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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4.지금 여기가 바로 극락이다

등록 2007-06-12 18:56

禪의 원류를 찾아
 

1. 아픔과 상처가 해탈의 씨앗이다 2. 우상과 독선의 안경을 벗고 실상을 보라 3. 네 생긴 그대로가 바로 부처다 ▶4. 집착을 벗어라. 지금 여기가 바로 극락이다 5. 종이 되지 말고 주인이 되라 

4. 지금 여기가 바로 극락이다 

육조 혜능대사 열반한 국은사엔 서방정토 원 담은 향불 자욱 ‘욕망·집착 버리면 여기가 극락’ 설파 육조가 보면 뭐라 할까 

‘삶과 죽음은 어디에 있는가.’ 

광둥성 사오관시 외곽 조계산 남화선사에서 살아 있는 듯한 육조 혜능대사의 등신불이 생사의 화두를 던져준다. 남화선사를 빠져나올 때쯤이었다. 노란 승복의 중국 스님들이 대웅전으로 줄지어 간다. 큰 부자가 부모의 재를 성대히 지내는 모양이다. 대웅전 밖을 나와 보니 향을 사르며, 복을 빌고, 서방정토에 나게 해달라고 비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다. 

순례단은 다시 사오관 시내로 들어와 대감사로 향했다. 대감사는 육조가 단경을 설한 곳이다. 석가모니가 직접 설하지 않은 고승들의 불서가 ‘논’이나 ‘소’로 불리지만 육조단경만큼은 유일하게 ‘경’으로 불린다. 그만큼 석가의 진리와 호리도 다름이 없는 책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깨치면 서방정토 볼 것이요 깨치지 못하면 염불도 허사”

닫힌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내부에서 한창 죽은자의 왕생극락을 위한 천도재가 진행 중이다. 음식을 차려놓은 상 둘레로 7명의 스님이 둘러앉아 열심히 염불을 외며 망자의 극락왕생을 빌고, 곁에선 유족들이 지켜보고 있다. 

만약 육조가 이를 본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육조는 “깨치면 서방정토를 찰나에 볼 것이요, 만약 깨치지 못하면 염불을 해도 왕생할 길이 없으니, 어떻게 도달할 것이냐”고 했다. 이에 위사군이 서방정토를 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자 육조는 “서방정토를 찰나에 옮겨 눈앞에 바로 보게 하겠다”며 순식간에 사자가 포효하듯 ‘할’(외침)을 한 뒤 외쳤다. 

“보라, 지금 여기에서 서방 정토를!” 

그런데 대중들은 놀라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그러자 육조가 설했다. 

“깨달은 성품의 지혜 광명을 비추어 ‘여섯 문’(안의비설신의)을 청정히 하고 욕계의 모든 여섯 하늘들을 비추어 부수고, 아래에 비추어 삼독(탐냄, 화냄, 어리석음)을 제거하면 지옥이 일시에 사라지고 안팎으로 사무쳐 밝으면 서방정토와 다르지 않다.” 

육조의 고향이 있는 신싱현 국은사로 향하는 길에서 고우 스님은 “욕망과 집착을 떠난 그 자리가 바로 극락”이라며 미망을 다시 한번 깨웠다. 서방정토에 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원을 담은 향불로 자욱한 입구를 지나 국은사로 들어서니 육조의 자취가 배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육조가 여기서 열반을 예언하자 제자들이 구슬피 우는데 오직 사미인 신회만이 울지 않았다. 그러자 육조는 “너희가 내가 가는 곳을 몰라 그런다”며 “어린 신회는 생사의 도리를 알아 저리 의젓한데 어찌 우느냐”며 타이른 뒤 예고한 날이 되자 앉은 채로 몸을 벗었다. 

생사에 여여한 도리를 어찌 육조만이 보였던가. 초조 달마는 기복신앙이 아닌 깨침의 선법을 펼치면서 양무제와 기존의 승가로부터 온갖 음해를 받아 다섯 차례나 독약을 받았다. 매번 법력으로 이를 넘겼던 달마는 혜가에게 법을 전한 뒤엔 스스로 독을 받았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돌아오던 사신 송운이 파미르고원에서 신 한 짝을 지고 가는 달마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중국에 돌아와 이를 황제에게 전하니, 달마는 이미 15일 전에 죽어 묻었다고 했다. 황제는 믿기지 않아 달마의 무덤을 팠는데, 달마의 시체는 없고, 신발 한 짝만이 놓여 있었다고 전한다. 달마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던 양무제는 그제야 잘못을 뉘우치며 달마를 스승으로 모시며 추모했다. 예수의 ‘부활 사건’으로 오늘날 기독교가 탄생했다면, 선 또한 달마의 ‘부활설’로 인해 중국에서 힘을 얻게 된 셈이다. 걸림 없는 생사의 모습을 보여준 이는 달마만이 아니었다. 3조 승찬은 선 채로 열반에 들었다. 또 4조 도신은 당 태종이 세 차례나 청빙해도 가지 않아 관리가 와 칼을 내밀며 “이번에도 모셔오지 못하면 목이라도 잘라오라”고 했다는 황제의 칙명을 전하자, 그 자리에서 목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몸을 입어도 서방정토요, 몸을 벗어도 서방정토였던가. 그러니 서방정토가 어찌 육조의 내면에만 머물러 있었을까. 대부분의 중국 사찰들이 규모는 크지만, 급조되고 날림인 듯한 인상을 주는 데 반해 남화선사와 국은사 등 육조가 머물던 사찰들은 천년 고목들과 정원과 물이 어우러져 극락세계가 따로 없다. 인파는 많지만 그 속에서도 고요하기만 하다. 욕계를 텅 비워버린 육조의 법음 때문인가. “한마음이 청정하면 온 세상이 청정하다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한겨레신문 2007년 3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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