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의 원류를 찾아
1. 아픔과 상처가 해탈의 씨앗이다 2. 우상과 독선의 안경을 벗고 실상을 보라 ▶3. 네 생긴 그대로가 바로 부처다 4. 집착을 벗어라. 지금 여기가 바로 극락이다 5. 종이 되지 말고 주인이 되라
3. 네 생긴 그대로가 바로 부처다
“오랑캐가 어찌 부처되나”에 “부처 성품 따로 있나” 현답 하늘의 비는 남녀노소와 빈부귀천, 아름답고 추함, 성스럽고 속스러움을 가리지 않고 차별 없이 내려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황메이현 빙무산 오조사에 들어서니,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한다. 10㎞ 떨어진 쌍봉산 사조사의 도신선사 조사전에 쓰인 ‘자운혜우’(慈雲慧雨·자비의 구름과 지혜의 비)란 글귀를 본 여운이 채 가시기 전이다.
오조사는 선종의 5조 홍인대사가 선풍을 휘날렸던 곳이다. 또한 선종의 기린아 6조 혜능이 찾아와 홍인으로부터 선종의 법통을 이어받은 곳이다. 그 혜능을 기리는 육조전엔 혜능의 체취가 묻은 방아가 남아있다. 원래 혜능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며 땔나무를 팔아 연명하던 가난한 나무꾼 소년이었다. 관직에 있던 아버지가 남쪽 변방으로 좌천돼 만난 혜능의 어머니는 키 작고 볼품없는 소수민족 사람이었다. 혜능은 그런 어머니를 닮았다고 한다. 혜능이 어느 날 지나던 스님이 금강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홀연히 마음이 밝아져 어머니를 떠나왔다. 그러자 홍인이 “너는 남쪽 오랑캐 사람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고 호통친다. 혜능은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어찌 부처의 성품에 남북이 있겠느냐”고 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혜능의 근기를 시험한 홍인 또한 그런 장애를 지녔던 사람이었다.
미혼모 아들 홍인대사, 못생긴 소수민족 혜능에게 법통 전수 ‘못났고 잘났고 형상은 차별 있지만 본질은 평등’ 가르침 절절
오조사의 대웅전 뒤로 돌아가니, 다른 절에선 찾아볼 수 없는 전각이 있다. 성모(聖母)전이다. 예수의 어머니를 모신 것은 아닐 터인데, 웬 성모전일까. 이 전각은 홍인의 어머니를 모신 곳이다. 홍인의 어머니 주씨는 처녀의 몸으로 홍인을 낳았다. 애초 4조 도신대사에게 출가를 원했던 늙은 수행자가 “너무 늙었으니 몸을 바꿔 오라”는 도신의 권유를 받고, 빨래하던 주씨 동정녀의 몸에 입태해 홍인을 낳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어찌됐든 홍인은 아버지도 없이, 미혼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니 성(姓)조차 알 길이 없었다.
그가 일곱살 때 길을 가던 도신대사의 눈에 뜨였다. 도신이 ‘성씨’를 묻자, 홍인은 “흔히 말하는 성은 아니다”라고 했다. 도신이 재차 묻자 홍인은 “불성(佛性)”이라고 답했다.
홍인의 스승 도신은 나병으로 일그러진 3조 승찬에게서 부처를 보았고, 승찬은 외팔 장애인 혜가에게서 부처를 보았다. 혜가는 이국의 털북숭이 괴승 달마에게서 부처를 보았다. 형상이 아닌 법신을 본 것이다. 이들의 정통을 이었다며 불성과 평등을 불교의 생명으로 내세우는 대한불교조계종은 신체적 장애인에겐 아예 출가를 허용치 않고 있다. 누구나 구족해 있는 불성을 도외시하고 형상으로 재단하는 것은 선의 정통인가, 자가당착인가.
만약 종족과 외모와 머리와 옷에 차별이 있다면 어떻게 홍인대사가 선과 교를 겸한 신수 등 쟁쟁한 스님들을 비롯한 1천여명의 대중들을 제쳐놓고 소수민족의 못생기고, 출가도 하지 않은 일자무식의 행자에게 법통을 전할 수 있었을 것인가. 5, 6조의 전법 현장을 뒤로하고 문을 나서니, 붓다가 깨달은 직후 ‘일체중생이 추호도 어긋남 없이 지혜와 덕성을 똑같이 갖추고 있다’고 한 깨달음이 더욱 절절히 느껴지는지 하나같이 숙연한 모습이다.
이때에 맞춰 고우 스님은 순례버스에서 “못생기고 잘생기고, 못났고, 잘났고, 잘살고, 못사는 등 형상은 차별이 있지만, 본질은 평등하다”며 사자후를 토한다. ‘이를 모르면 못 가진 자는 가진 자를 시기하고 싸워 뺏으려 들고,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무시하고 더 뺏으려 들지만, 지혜가 있으면 사주는 노동자의 덕으로 자신의 부를 이룬 줄 알게 되고, 노동자는 사주 덕으로 일자리를 마련해 가족이 먹고살 수 있음을 알게 돼 서로 은혜를 느끼며 상생하고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날 중국의 남단 광둥성 사오관의 조계산 남화선사에 들어섰다. 한국의 조계종은 혜능이 머물던 이 산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절에서 혜능의 등신불이 마치 살아있는 듯 마중한다. 그의 색신(몸)은 작고 못생겼다는 소문이 허언이 아니다. 혜능은 측천무후의 초빙마저 거부하고 당시 ‘변방의 오랑캐인들’이라고 멸시받던 고향 땅 사람들을 깨웠다. 육조전에서 작고 못생긴 부처에게 온갖 곳에서 온, 온갖 생김새의 사람들이 절을 한다. 부처님들이다. 천주산·사오관(중국)/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한겨레신문 2007년 3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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