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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2.우상과 독선의 안경을 벗어라

등록 2007-06-12 18:54

禪의 원류를 찾아
 

1. 아픔과 상처가 해탈의 씨앗이다 ▶2. 우상과 독선의 안경을 벗고 실상을 보라 3. 네 생긴 그대로가 바로 부처다 4. 집착을 벗어라. 지금 여기가 바로 극락이다 5. 종이 되지 말고 주인이 되라 

2. 우상과 독선의 안경을 벗어라

대환영 나선 중국 스님에게“달마는 대체 어딨나” 일갈 

이레 동안 북쪽에서 최남단까지 중국을 관통하며 주요 선종 사찰을 훑는 대장정에 나선 순례단은 방문 사찰의 ‘환영’을 피했다. ‘의전’에 허비할 시간이 없기도 하려니와 문화혁명 이후 선불교 전통이 끊기다시피 한 중국 스님과 마주앉아도 선사들의 안목까지 엿보기가 어렵다고 본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7일 순례단이 우한 삼조사에 도착했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삼조사의 거대한 일주문 앞에 방장 스님을 비롯한 대중들이 가사 장삼까지 갖춰 입고, 악대까지 늘어세운 채 순례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조계종의 ‘큰스님’이 참선 불자들을 대거 이끌고 온다는 소문을 듣고 대환영에 나선 것이다. 

중국 사찰 관광지화 불상·예식 화려해져 본질 흐리는 허례허식 용납 않는 것이 ‘선’ 

순례단의 좌장 격인 고우 스님은 ‘권위’와 ‘허례허식’으로부터 자유로운 대표적인 선승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선승들의 모임인 선원수좌회 대표를 지냈으나 조실 자리를 마다하고 강원도 봉화 각화사 서암에서 오래 홀로 살았고, 지금도 봉화 금봉암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그다. 고우 스님은 “나는 ‘큰스님’이 아니다”라며 가사를 벗고 대중 속에 숨어버렸다. 대신 고우 스님의 도반인 상현 스님(경남 양산 천성산 조계암 한주)과 고우 스님을 모시고 각화사 선원장을 지냈던 철산 스님(경북 문경 대승사 선원장)이 총대를 멨다. 

문화혁명으로 파괴됐던 중국의 절들은 정부 당국의 불교 진흥책과 관광 정책으로 단시일 안에 복원돼 관광지화해 인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불상과 예식은 더욱 더 화려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형상 이전의 본래면목(본성품)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순례단이 절 곳곳을 돌아보고 나자, 삼조사 방장(한국에선 주지) 관롱 스님이 다실에서 다과를 베풀었다. 그러자 대승사에서 매년 21일 동안 한잠도 자지 않고 참선하는 용맹정진을 이끌 만큼 결기가 있는 철산 스님이 물었다. 

“달마와 승찬 선사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가?” 

이에 방장은 “여기에 계시기도 하고, 한국에 계시기도 하고, 극락세계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철산 스님이 다시 윽박질렀다. 

“그것 말고!” 

주워들은 말이나 생각으로 꾸며낸 말이 아니라 ‘언어 이전의 소식’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수박 맛을 보여주라면 수박을 입에 넣어주어야지 ‘수박 맛에 대한 온갖 서술’을 어디다 쓰겠느냐는 투다. 애초에 이런 허례허식으로 맞이하지 않고 평상심을 그대로 보여주었더라면 이런 화를 자초할 리 없었다. 그런데 스스로 자신을 ‘대화상’으로 칭하는 선종본찰의 방장이 외지의 선승을 맞이해 담석을 마련했다면 세속적 담소는 격에 맞지 않는다. 그가 살을 긁어 부스럼을 낼 생각이 없었다면 일찌감치 몽둥이를 들어 쫓아내거나, 입이 열린 뒤라도 입을 쥐어박아서라도 화근의 싹을 잘라야 했다. 아니면 형상이 아니라 법신을 맞이하며 공손히 일어나 합장만 했더라도 그런 수모를 면할 수는 있었지만, 그는 입을 열지도 닫지도 못했다. 

그가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스승 승찬(선종의 3조)은 나병으로 머리가 모두 벗겨져 빨간 살이 드러났기에 적두찬(赤頭璨)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그만큼 대중을 제접할 몰골이 아니었기에 동굴에 은거했다. 

선가에선 본질을 흐리는 어떤 것도 용납지 않는다. 사족은 과감히 절단해 버린다. 달을 직관하는 것을 방해한다면 비록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 할지라도 싹둑 잘라버린다. 만약 그가 집착하고 예배하는 것이 부처나 조사일지라도 다름 없다. 어떤 위대한 형상과 이데올로기의 탈을 썼더라도 본질을 볼 수 없게 한다면 마구니로 여기는 때문이다. 실은 자르고 죽이는 것은 사람이나 사물이 아니라 내면의 상(相)이자 집착이다. 

이틀을 남쪽으로 더 차를 타고 광저우 인근 운문사에 도착하니 운문선사(864~949)의 몸이 그대로 등신불로 남아 있다. 천년이 넘은 등신불이 참배객들을 바라보고 있다. 참배객 또한 감격에 젖은 모습으로 운문의 등신불을 바라본다. 그러나 운문이 정작 보여주고 싶은 것이 어찌 그런 형상이었을 것인가. 운문은 석가모니 가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한 것에 대해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방망이로 석가를 때려잡아 개에게 먹여 천하를 태평케 했을 것”이라고 했다. 운문에게 석가의 말은 사족일 뿐이며, 스스로 봐야 할 눈에 티를 넣은 짓일 뿐이다. 옛 부처를 잡는다는 소식을 듣고 법당문을 나서 운문의 숲길을 거니니 오히려 온갖 만물이 다 부처로 살아나지 않는가. 우한 광저우(중국)/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겨레신문 2007년 3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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