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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1.아픔과 상처가 바로 해탈의 씨앗이다

등록 2007-06-12 18:52

禪의 원류를 찾아
 

▶1. 아픔과 상처가 해탈의 씨앗이다 2. 우상과 독선의 안경을 벗고 실상을 보라 3. 네 생긴 그대로가 바로 부처다 4. 집착을 벗어라. 지금 여기가 바로 극락이다 5. 종이 되지 말고 주인이 되라 

1. 아픔과 상처가 해탈의 씨앗이다

달마 “너의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너라”

역사적 달마는 1500여년 전의 인물이다. 그러나 달마는 살아 있다. 달마는 다르마(법·진리)다. 달마와 그의 법제자들의 다르마가 시공을 넘어서 우리를 깨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선(禪)이 아니라 구두선(口頭禪·실속 없는 말)일 뿐이다. 달마의 선은 혜가-승찬-도신-홍인-혜능, 또 조주, 임제, 운문 선사 등으로 이어져 동아시아에 화려한 꽃을 피웠다.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선의 원류’를 찾았다. 조계종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개발원이 지난 1년간 서울 조계종 총무원 청사에서 연 고우 스님의 ‘육조단경 강의’를 마치면서 수강생 등 70여명과 떠난 순례단과 함께였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선사들의 발자취를 찾아 중국 북쪽 베이징에서 최남단 광둥성까지 훑은 대장정이었다. 

선사들은 순례객을 때론 고함으로, 때론 방망이를 휘둘러 깨웠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사들은 상처와 스트레스로 고통 받는 현대인들을 위해 ‘자비의 죽비’를 내려치고 있다. 

고통에 울던 제자 외팔이 ‘혜가’·나환자 ‘승찬’ 스승의 물음에 내면 돌아보니 어느새 해탈 참선하던 소림사·삼조사에 옛 선사들의 메아리 

모진 삶의 현장을 더욱더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일까. 반팔과 반바지를 필참하라는 일기예보대로 얇은 옷을 걸치고 베이징공항에 내린 순례객을 맞은 것은 흰눈과 찬바람이었다. 

버스로 이틀간 남쪽으로 달려 정저우(정주)를 지나자 코끼리 형상을 한 산들이 숭산 소림사를 향하고 있다. 소림사가 가까워지자 화려하게 지어진 무술학교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무술을 연마하고 있다. 이제 달마의 소림사가 아니라 이연걸의 소림사인가. 소림사 인근에만 무려 20여개 무술학교에 2만명의 학생이 있다고 한다. 소림사엔 화려한 위용만큼이나 많은 관광객이 붐빈다. 그들은 과연 어디에서 달마를 찾고 있을까. 관광객이 없는 소림사 뒤를 돌아 숭산에 오른다. 어느 추운 겨울날 혜가가 올랐던 길이다. 소림사에서 한 시간 가량 경사진 산길을 오르니 달마 동굴이다. 달마가 9년간 벽만 바라보고 참선한 그 자리다. 천하의 산이 한눈에 보이는데, 동굴 안은 캄캄한 어둠 속이다. 

혜가는 유·불·도(교)에 통달해 학문적으로는 이미 당할 자가 없었다. 그는 불혹(不惑·마음이 흔들리지 않음)이라는 40살이 되었다. 그런데도 마음은 조금도 안정되지 않았다. 여전히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죽음이 두려울 뿐이었다. 그는 자신을 떠나지 않는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애타는 혜가의 부름에도 달마는 묵묵부답이었다. 초저녁부터 내린 눈은 새벽녘이 되자 무릎을 덮었다. 그러나 달마는 여전히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혜가는 ‘붉은 눈을 내리게 하는 자가 동굴 속 괴승의 첫 번째 제자가 될 것’이란 전설 같은 얘기를 듣고 있었다. 혜가는 칼을 빼어들었다. 그리고 왼팔을 단박에 내리쳤다. 팔이 잘려나간 어깨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붉은 눈이 내렸다. 자른 팔을 들고 동굴 안에 들어가 달마 앞에 내놓자 드디어 달마가 몸을 돌려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혜가가 구슬피 울며 말했다. 

“제 마음이 너무도 불안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사께서 제 마음을 편케 해주십시오.” 

우는 혜가에게 달마가 말했다.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러면 너를 편안케 해주겠다.” 

이 문답 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찾는데, 얼마나 치열했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팔을 잘랐던 그였으니 침식도, 자신도 잃어버릴 만큼 몰두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내’가 없는데, ‘불안’이 어디에 붙을 것인가. 혜가가 다시 달마 앞에 섰다. 

“아무리 찾아도 찾아도 그 마음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미 그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노라.” 

달마는 밖에서만 극락을 구하던 마음을 내면으로 돌리게 했다. 상황과 조건은 달라진 게 없었지만, 이제 혜가는 상황과 조건에 휘둘리는 노예가 아니었다. 달마 동굴 건너편 산을 케이블카로 오르니 혜가가 머물던 이조암이다. 암자 입구엔 불안을 벗고 활짝 웃은 혜가의 햇살 같은 마음을 보여주듯 포대화상이 여여히 웃고 있다. 

그러나 세속인에겐 어찌 세상에 웃을 일만 있으며 단맛만 보고 살 수 있을 것인가. 단맛만이 아니라 쓴맛, 신맛, 매운맛 등 네 가지 맛을 낸다는 이조암의 샘 사미정(四味井)이 마치 인간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이 심산의 암자에 머물던 혜가에게 어느 날 한 재가거사(출가하지 않은 남자 불자)가 찾아왔다. 그는 온몸이 썩어 들어가고 머리가 벗겨져버린 풍질(나병) 환자였다. 

“대사시여. 제가 무슨 죄를 지어 이런 벌을 받습니까.” 

그윽하게 바라보던 혜가가 말했다. 

“네 죄를 가져오면 네 죄를 벗겨주겠다.” 

더는 갈 곳도 없던 그는 처절하게 그 ‘죄’를 찾았다. 죄인이라는 마음이나 복인이라는 마음은 물론 어떤 번뇌망상도, 관념도 붙을 수 없을 만큼 그의 마음이 순일해질 즈음 혜가가 물었다. 

“죄는 찾아냈느냐?” 

“아무리 찾고 또 찾아도 죄는 찾을 수 없습니다.” 

“이미 네 죄를 벗어나게 했도다.” 

선종의 3조 승찬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다시 버스로 하루를 달려 혜가의 법(진리)을 이어받은 승찬대사가 머물며, 불후의 명저 〈신심명〉(信心銘)을 쓴 우한(무한)의 천주산 삼조사에 이르니 벌써 어둠이 물들기 시작한다. 대웅전 뒤편으로 돌아가니, 승찬이 참선하던 토굴이 있다. 이곳에 한 어린 사미승이 당시 82살의 노승 승찬을 찾았다. 불과 일곱살에 출가해 불가에서 공부해 왔지만, 그는 승복도, 은사 스님도, 자기 자신조차 눈에 거슬리고, 속박으로 느껴지기만 했다. “대사님. 저는 자유를 원합니다. 부디 이 속박으로부터 해탈케 해주십시오.” 

“누가 너를 그렇게 구속했느냐. 그놈을 데려오면 해탈케 해주겠다.” 

그 후 오직 ‘그놈’을 찾느라 망념마저 잊어버린 도신이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다. ‘해박석’(解縛石·속박에서 해탈한 돌)이란 글귀가 선명하다. 

누가 나를 불안하게 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고, 구속했던가. 승찬의 신신명 첫 구절이 답한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오직 간택(취하고 버리는 것)을 꺼릴 뿐이니/단지 증오하지도, 애착하지도 않는다면/통연히 명백하리라.” 

승찬의 글귀를 보고 나니 날은 완연히 어두워졌다. 그러나 장애와 복을 분별하는 망상을 벗어난 선사의 죽비가 빛만을 구하는 마음을 다시 내리친다. 다시 밝아진 마음의 빛이 어두움을 두 팔 벌려 반긴다. ‘아, 어둠이다.’ 

정저우 우한/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한겨레신문 2007년 3월 13일자) 성전·허례 부순 달마의 혁명 140살이 넘은 고령의 달마가 3년의 여정 끝에 도착한 중국은 불교가 전래된 지 400년이 넘어 기복(복을 빔) 불교가 만연한 상태였다. 절과 성전을 짓는 게 종교의 본분인 양 여겨지는 오늘날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석가로부터 이어진 ‘다르마’(진리)는 잊혀진 지 오래였다. 인도에서 온 고승에게 양나라 황제 무제는 자신이 수많은 절을 짓고 경전을 번역했고, 승려를 배출한 것을 자랑했다. 그리고 자신의 공덕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달마는 단호하게 “아무 공덕이 없다”고 말하고 돌아서 버렸다. 달마의 9년 면벽은 진리가 들어갈 구멍이 없는 실상을 보여주는 상징일 수 있다. 달마의 선은 성전이나 허례허식과 같은 형식과 권위가 다르마를 대신해버린 거짓을 부수는 이단자였다. 종교 혁명이었다. 조현 기자 

6대선사 장애 딛고 깨달음 꽃피워

인도에서 건너온 달마(?~495, ?~436, 346~495, ?~528 등으로 생몰연대를 두고 이설 존재)에 의해 중국에서 선불교가 시작됐기에 달마는 선종의 초(일)조로 불린다. 달마에 이어 2조 혜가(487~593)-3조 승찬(?~606)-4조 도신(580~651)-5조 홍인(594~674)에 이어 6조 혜능(638~713) 때까지만 붓다로부터 이어온 가사와 발우가 전해졌다고 한다. 혜능 이후 만개된 선불교의 초석을 이들 6대 조사가 놓은 셈이다. ‘견성(깨달음)=성불’로 여기는 선불교에서 선의 조사(祖師)들은 붓다와 같은 참사람의 전형으로 존경받는다. 그러나 원래 이들은 큰 아픔과 상처를 지녔던 장애인들이었다. 

남인도에서 온 달마는 중국인들로선 마주하기조차 쉽지 않을 만큼 얼굴이 검은 털북숭이 괴승이었다. 혜가는 출가 전에 불안의 노이로제 속에 살았고,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팔은 베어버린 외팔이였다. 승찬은 천형을 받았다는 죄의식 속에 고통 받던 나환자였다. 도신의 출가 배경은 알려진 것이 없지만 불과 일곱 살에 절에 맡겨져 삼조사까지 이른 것에서 천애고아였거나 그와 유사한 환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신의 늙은 제자가 다시 몸을 받기 위해 성적인 접촉 없이 ‘입태’해 태어났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홍인은 이를테면 아버지 성조차 모르는 미혼모의 자식이었다. 혜능은 당시 당나라에서 가장 천대받던 소수민족 어머니를 두어 몸이 아주 작고, 검고 못생겨 오랑캐란 소리를 들었다. 

천년이 넘도록 찬란히 빛나는 선사들은 이처럼 상처 속에서 피어났다. 그 점이 아픔과 상처‘로 고통 받는 이들이 더욱 많은 오늘날 선사들의 삶과 깨달음이 더욱 절실히 다가서는 이유다.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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