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도 마을의 일부분이죠”
■ 행복한 교회만들기
동면감리교회 박순웅 목사
‘호박이 넝쿨째 들고 나네요.’
이 희한한 표현은 바로 행사 이름이다. 강원도 홍천군 동면 속초리 동면감리교회에서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4일 동안 펼쳐진 마을 잔치. 널찍한 마당에 펼쳐진 장마당에서 물건을 고르고 염색을 하는 아줌마도, “도자기 아저씨”와 야생화 화분을 빚거나 전통매듭을 만들어보는 아이들도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것처럼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다.
특히 거무스레한 얼굴에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을 잃지않는 박순웅(43) 목사야말로 넝쿨 속 호박마냥 넉넉한 모습이다. 3년마다 여는 이 행사는 교회 잔치라기보다는 이제 마을 잔치나, 면 잔치가 됐다. 음악제엔 아줌마 합창단이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 합창단 8명은 의도한 게 아니었는데도 모두 출석 교회가 달랐다. 각기 교단이 다른 8개 교회 아이들이 하모니를 내는 것이다. 다른 교단만이 하모니를 이루는 게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자기 집 잔치처럼 여기는 이 행사엔 ‘경쟁’ 관계일 법한 인근 교회는 물론 사찰의 승려들까지 와 축하한다. 그 비결이 뭘까.
“교회도 마을의 일부분이지요.”
박 목사는 신자들에게 가정이나 마을 등 무엇보다 무조건 ‘교회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런 목회자가 아니다. 마을에 급한 일이 있어도 ‘교회에 간다’며 얌체처럼 빠지지말고 교회에 늦더라도 더 앞장 서서 마을 일을 하라는 게 박 목사의 당부다. 자신부터 마을 일에 적극적이다. 이 교회 신자건 아니건 이 교회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연이 아닌 셈이다.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농사 수익으로 어려운 이들 도와
교회잔치 땐 승려들도 함께
박 목사는 첫 목회지인 강원도 영월에 3년간 머물면서 영월과 평창 일대에서 유기농을 하는 젊은 목사들과 어울리며 생명에 눈을 떴다. 1993년 이 교회로 옮겼으나 당시 교회 사정은 목사가 월급도 받을 수 없을 만큼 어려웠다. 그는 1500평의 땅을 빌려 감자와 옥수수, 밀, 보리, 콩, 배추 등을 심었다. 그렇게 자신과 마을 사람들이 거둔 채소들을 도시 소비자들과 직접 거래했다. 비지땀을 흘리면서 김을 메고, 농민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다니며 농산물을 파는 사이 농민들의 삶과 하나가 되어갔다.
이렇게 농산물을 팔고 바자회를 열어 그와 마을 사람들은 북한동포들을 돕기 위해 <한겨레>를 통해 수백만원을 내놓기도 했고, 혼자사는 마을 노인들에게 연탄을 사보내고, 할아버지·할머니의 손에 맡겨져 식사도 챙겨먹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생활비를 보태주기도 했다.
이곳에 올 때는 10여년만 머물 생각이었단다. 4남매나 둬 도시에선 양육 비용을 감당할래야 할 수도 없다고 너털웃음을 짓는 그는 “여기가 거기고, 거기가 여기지 어디 별난데가 있나요?”하고 되묻는다. 이 말은 늘 마을 노인들이 지나는 말로 해주던 얘기였다. 그는 이런 노인들의 말을 통해 오히려 ‘구원’을 얻었다. 천국이 어디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마음을 열고 자족할 때 지금 여기에 ‘호박이 넝쿨째 드나든다’고.
홍천/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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