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당 없는 교회 창립합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있다./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디딤돌교회와 윤선주(38) 목사에게서 정호승 시인의 〈봄길〉의 이미지가 다가온다. 창립예배(27일)를 앞두고 지난 13일 창립설명회를 연 디딤돌교회는 요즘 대안이 없어 보이는 한국 교회에 대안을 제시하는 교회다.
서울 ‘디딤돌교회’ 윤선주 목사
일요일 비는 교회 빌려써
호화판 교회 건물이 곳곳에 지어지고 있지만 그리스도적 사랑과 화해 대신 건물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적지 않은 게 일부 교회의 현실이다.
그래서 건물을 소유하지 않기로 한 디딤돌교회의 선언이 더욱 눈에 띈다. 이 교회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 8호선 몽촌토성역 인근에 한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지역사회교육회관 건물을 일요일에만 사용료를 내고 빌려쓴다.
“교회란 신앙의 공동체인데, 요즘은 ‘건물’을 교회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교회에서 해야 할 가장 큰 일이 건물 짓고, 증축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윤 목사는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교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라며 “건물을 짓거나 유지하는 데 쓰는 돈만 줄여도 세상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윤 목사와 평신도들이 2년의 준비를 거쳐 소외된 계층을 섬기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며 이웃을 유익하게 한다는 목표를 세운 디딤돌교회는 현재 교인 30여명으로 재정 형편이 빠듯하면서도 헌금의 30% 이상을 장애인 가정 등을 돕는 데 쓰고 있다. 문화활동 같은 예배 외 활동은 교인의 학원을 빌려 하는 디딤돌교회는 앞으로 일요일이면 텅 비어 있는 구청 사회복지관과 문화센터 등을 임차해 구청은 유지비용을 벌고, 교회는 건물 비용을 줄이게 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또 이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목사와 평신도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동등한 지체’임을 ‘디딤돌의 신앙철학’에 못박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평신도”
목사와 장로, 안수집사 등은 모두 임기제이며, 교회 최고 의결기구인 사무처리회도 담임목사가 아닌 장로 중에서 선출하기로 했다. 길이 끊긴 곳에서 길을 놓는 돌이 되자는 뜻인 디딤돌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didimer.net)에서 그의 아이디는 돌하나(dolhana)다. 목사와 신자는 수직적 상하 관계가 아니라 목사도 많은 디딤돌 가운데 하나의 돌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대우’받는 목회자의 기득권을 버릴 수 있었을까?
“8년 동안 교회에서 목회를 했는데, 나도 그렇지만 신자들도 목사를 열심히 따르고 교회는 잘 나오는데, 삶이 변하지 않았다. 특히 목사가 영향을 주지 않으면 오히려 견디지 못하고, 뭐든 목사가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여기며 의존적이 되었다. 결코 홀로서기를 하려 하지 않았다.”
“교회가 이땅에 존재하는 것은 교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
그래서 이 교회에선 평신도들도 목사와 다름없는 권한과 함께 ‘그리스도를 닮은 성숙한 인격자와 신앙인’이 되어야 하는 사명도 동시에 지닌다.
“엄밀하게 보면 예수 그리스도도 평신도였다. 유대교 사제 중심주의와 그들의 잘못된 기득권을 비판했다.”
유 목사는 하나같이 정장 차림인 한국만의 독특한 권위주의적이고 경직된 예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립 예배 때는 참여자 모두 평상복을 입고 나와 줄 것을 당부했다. (02)6408-9101.
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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